마음을 움직이는 단 하나의 질문 - 뇌과학과 심리학으로 풀어낸 실전 소통법
이수경 지음 / 지니의서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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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말을 잘하는 것'이 곧 '대화를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논리적으로 조리 있게 설명하고, 내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면 상대방도 이해해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일들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분명 좋은 의도로 건넨 말이었는데 상대는 표정을 굳혔고, 도움이 되려고 했던 조언은 오히려 거리감을 만들었다. "왜 내 말을 이해 못 하지?"라는 답답함이 쌓여갈 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나였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마주한 문장은 충격에 가까웠다. "우리는 말은 배웠지만, 대화는 배운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랬다. 학창 시절 내내 발표를 잘하는 법, 논리적으로 글 쓰는 법,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법은 배웠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듣는 법, 상처 주지 않고 물어보는 법, 감정을 존중하며 대화하는 법은 배운 적이 없었다. 오히려 "울지 마", "참아", "네 생각은 틀렸어"라는 말들로 감정을 억누르는 법만 학습했다. 그렇게 자란 우리가 어른이 되어 관계 속에서 부딪히고, 상처 주고, 오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에서 가장 깊이 와닿았던 부분은 '듣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내가 꽤 잘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말할 때 끼어들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맞추며 들었으니까. 하지만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는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다"고. 상대의 말을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대답할지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지난 대화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친구가 힘든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래도 괜찮을 거야"라는 위로를 준비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걱정을 표현할 때, 나는 "괜찮다니까요"라는 반박을 머릿속에서 다듬고 있었다. 연인이 속상함을 토로할 때, 나는 "내 입장에서는..."이라는 변명을 조립하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진짜로 들은 적이 없었다. 상대의 감정이 어떤 색인지, 그 말 뒤에 어떤 마음이 숨어 있는지 느껴보려 하지 않았다. 저자가 말하는 '공감하며 듣기'는 단순히 말의 내용을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 말 속에 숨은 감정의 결을 느끼고, 말하지 못한 마음까지 함께 짊어지는 것이다. 이는 마치 상대의 감정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방을 내 안에 마련해주는 일과 같다. 나는 그동안 그 방을 만들어본 적이 있었을까? 오히려 내 논리로, 내 경험으로, 내 판단으로 가득 찬 공간만 제시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 그랬어?"와 "그때 어떤 마음이었어?"는 겨우 몇 글자 차이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연다. 전자는 추궁이고, 후자는 초대다. 전자는 상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지만, 후자는 마음을 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한다. 같은 질문이라도 그 안에 담긴 온도에 따라 관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왜'를 날카롭게 던졌던가. "왜 이렇게 했어?", "왜 말을 안 해?", "왜 이해를 못 해?" 그 질문들은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는 듯했지만, 실은 내 기준에 맞추라는 압박이었다. 질문의 형태를 빌린 명령이자, 물음표를 단 비난이었다. 당연히 상대는 방어 모드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좋은 질문의 조건으로 '탐색, 이해, 선택권'을 제시한다. 탐색이란 진짜 궁금해서 묻는 것이고, 이해란 상대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려는 노력이며, 선택권이란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존중이다. 나는 이 세 가지를 얼마나 지켰을까? 질문을 던지면서도 이미 내 안에 정답을 정해두고, 상대가 그 답을 말하기를 강요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특히 '대답하지 않을 권리까지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질문이란 상대에게서 답을 빼앗는 도구가 아니라, 상대가 말하고 싶은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다리여야 한다. 좋은 질문은 답을 구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듣기 위한 준비다. 질문은 말의 시작이 아니라 듣기의 시작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뜨끔했던 건 '말투'에 관한 부분이었다. 사람들은 말의 내용 때문에 상처받는 게 아니라, 그 말을 전하는 방식 때문에 더 크게 다친다는 것. 같은 "괜찮아?"라는 질문도 어떤 억양으로, 어떤 표정으로, 어떤 속도로 건네느냐에 따라 위로가 될 수도, 형식적인 인사가 될 수도 있다. 뇌는 놀랍도록 예민해서 말의 온도를 즉시 감지한다. 공격적인 말투는 편도체를 자극해 방어 회로를 작동시키지만, 존중과 배려가 담긴 말투는 안전감을 주고 마음의 문을 연다. 나는 그동안 내용에만 집중한 나머지 전달 방식을 간과했다. "내 말이 맞잖아"라고 생각하며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답답해했지만, 정작 내 말투가 얼마나 날카로웠는지는 돌아보지 못했다. 특히 가족 간의 대화에서 이 문제는 더 심각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조심스러움을 잃기 쉽다. "내가 너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명분 아래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는가. 책을 읽고 나서 아이들과 남편에게 질문하는 방식을 바꿔보았다. "왜 숙제 안 했어?" 대신 "오늘 어떤 일이 있었어?", "빨리 하면 안 돼?" 대신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어?"라고. 처음엔 어색하고 말도 꼬였지만, 신기하게도 대화의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얼굴이 덜 굳었고, 남편의 대답이 길어졌다.

책을 덮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떤 온도의 말로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있을까?" 이 질문은 매일 아침 나를 깨우는 알람이 되었다. 출근길에, 회의실에서, 저녁 식탁에서, 나는 이 질문을 되새긴다. 대화는 정보를 교환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연결하는 일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마음과 마음을 잇는 이 따뜻한 언어일 것이다. 정보는 AI에게 맡기고, 마음은 인간이 묻자. 이 책이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다. 나는 이제 안다. 관계가 어려운 건 상대방 탓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대화가 막힌 건 상대가 말을 안 해서가 아니라, 내가 안전한 공간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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