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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생공부 - 천하를 움직인 심리전략 ㅣ 인생공부 시리즈
김태현 지음, 나관중 원작 / PASCAL / 2025년 10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가에서 먼지 쌓인 삼국지를 꺼내 들 때마다, 나는 이 오래된 이야기가 왜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영웅들의 화려한 전투나 지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본질적 딜레마들이다. 권력을 향한 욕망, 신뢰와 배신 사이의 줄타기, 이상과 현실의 간극. 이 모든 것이 1800년 전 중원의 땅에서 벌어졌던 일이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이번에 김태현님의 <삼국지 인생공부>를 읽으며 다시한번 삼국지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조조가 여백사의 집에서 벌인 참극을 떠올리면, 나는 여전히 불편함을 느낀다. 그가 오해로 인해 무고한 이들을 죽이고 남긴 말, "차라리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리게 하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생존주의의 선언이다. 이 장면을 현대의 리더십 교본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가? 조조의 선택이 냉혹했다면, 그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냉혹함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황건적의 난 이후 중원은 무법천지가 되었고, 신뢰는 사치품이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조조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극단적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선택이 정당화될 수는 없어도, 우리는 그로부터 배울 수 있다. 바로 모든 결정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 그리고 그 대가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선다. 직장에서의 윤리적 딜레마, 인간관계에서의 신뢰 문제, 커리어의 방향성 등. 이때 필요한 것은 조조식의 무자비한 결단이 아니라, 결단의 결과를 예측하고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함이다. 조조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을 선택하느냐'보다 '선택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느냐'에 가깝다.
유비는 삼국지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 하나다. 그를 위선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진정으로 덕을 갖춘 군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유비가 가진 한 가지 탁월한 능력이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힘이다. 그는 무력으로나 지략으로는 조조나 손권에 미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같은 인재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도원결의라는 유명한 장면을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신분도, 출신도 다른 세 남자가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의형제를 맺는다. 이것은 우정의 맹세만이 아니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의 선언이며, 서로의 삶을 걸고 함께 가겠다는 약속이다. 이런 관계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는 삼국지 전체를 통해 증명된다. 관우가 조조의 후한 대접을 뿌리치고 유비에게 돌아간 것, 장비가 수많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유비 곁을 지킨 것, 이 모든 것이 도원결의의 신뢰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관계는 점점 더 거래적으로 변해간다. SNS는 수천 명의 '친구'를 만들어주지만, 정작 어려울 때 진심으로 손을 내밀어줄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유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군가와 진정한 신뢰를 쌓고 있는가? 당신은 누군가에게 함께 가고 싶은 리더인가? 물론 유비의 방식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때로 지나치게 감정적이었고, 관우의 죽음 이후 보여준 복수심은 결국 촉한의 몰락을 앞당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준 '사람에 대한 진심'은 리더십의 본질을 일깨운다. 사람들은 결국 진심에 움직인다. 아무리 화려한 비전이나 전략이 있어도, 그것을 함께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제갈량은 삼국지에서 신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적벽대전에서의 동남풍, 공성계에서의 허장성세, 수많은 전투에서의 기묘한 전략들. 하지만 그 역시 완벽하지 않았다. 북벌은 여섯 차례나 실패했고, 결국 그는 오장원에서 병으로 쓰러졌다. "계획은 인간의 몫이지만, 성패는 하늘에 달려 있다"는 표현이 그의 삶을 정확히 요약한다. 제갈량의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의 완벽함이 아니라 그의 한계다. 그는 모든 것을 계산하고 예측하려 했지만, 결국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이다. 우리는 종종 완벽을 추구하며 자신을 몰아붙인다.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모든 결과를 예측하려 한다. 하지만 삶은 우리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제갈량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실패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실패를 알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북벌이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그 역시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유비에게 받은 신임과 촉한에 대한 책임감으로 끝까지 싸웠다. 이런 자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삼국지를 읽으며 깨닫게 되는 것은, 이 이야기가 결국 '불완전한 인간들의 분투기'라는 점이다. 조조는 현실주의자였지만 지나치게 냉혹했고, 유비는 인자했지만 때로 우유부단했다. 제갈량은 지혜로웠지만 완벽주의에 사로잡혔고, 관우는 의리로웠지만 교만했다. 손권은 신중했지만 때로 기회를 놓쳤고, 사마의는 인내심이 있었지만 냉소적이었다. 이들 모두는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가진 채 격동의 시대를 살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과 실수, 성공과 실패가 모여 거대한 역사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삼국지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완벽한 선택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선택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각자의 삼국지를 쓰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애쓰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를 찾으며,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때로는 조조처럼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고, 때로는 유비처럼 사람을 끌어안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삼국지는 그 선택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거대한 교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