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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책읽기에서 글쓰기까지 나를 발견하는 시간, 10주년 개정증보판
장석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생성형 AI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이번에 장석주 작가의 글쓰기론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독서와 글쓰기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글을 잘 쓰고 싶어 하지만, 정작 책을 멀리한다. 마치 수영을 배우고 싶으면서 물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작가는 3만여 권의 책을 읽은 독서광이다. 그는 작가가 되려고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책을 읽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순서의 전복이 중요하다. 책 읽기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의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며, 이 능력 없이는 어떤 글도 쓸 수 없다. 뇌과학은 이를 뒷받침한다. 독서를 거듭할수록 뇌의 시각 피질이 변화하고, 문자 패턴을 처리하는 신경망이 촘촘해진다. 숙련된 독서가의 뇌는 엄청난 속도로 정보를 처리하는 네트워크를 가동시킨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뇌를 재구조화하는 작업이다.
글쓰기의 세계로 들어서는 입구는 생각보다 험난하다. 작가는 허기진 삶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없다면 애초에 글쓰기를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글쓰기가 요구하는 헌신의 깊이를 보여준다. 바바라 애버크롬비가 제시한 글 잘 쓰는 기술은 이러한 고독과 인내를 구체화한다. 계속 집중하고, 신비주의를 고수하며, 조용히 사냥하듯 기록하고, 독립적으로 사유하며, 가만히 말없이 오랜 시간을 버티는 것. 이 모든 것은 자기만의 지하 동굴에서 글쓰기에 전념하는 과정이다. 진짜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글쓰기의 고통을 견뎌내며, 그 속에서도 열정이 고갈되지 않는 것이 재능이다. 실패하고, 다시 실패하고, 또 실패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본질이다. 강철이 뜨겁게 달궈지고 차가운 물에 식혀지며 망치질을 당하듯, 글도 오랜 담금질을 거쳐야 단단해진다.
백지의 공포는 모든 글 쓰는 이들이 마주하는 적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단 하나, 계속 쓰는 것이다. 나탈리 골드버그가 제안한 글쓰기 연습의 지침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손을 계속 움직이고, 마음 닿는 대로 쓰며, 구체적으로 표현하되,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고, 구두점과 문법은 나중에 걱정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다. 글쓰기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노동이다. 영감을 기다리지 말고, 정해진 시각에 책상 앞에 앉아 정해진 분량을 써내는 것. 그것이 현실과 이상 속에서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힘이다. 일기는 이러한 훈련에 좋은 도구가 된다. 하지만 큰일이나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하찮은 것,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일들, 찰나에 스쳐 지나가 의미가 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써보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그 안에 자기 이야기를 숨기고 있다. 그 이야기를 물고 늘어져 풀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글쓰기에서 마주치는 가장 큰 문제는 과장과 허식이다. 작가는 꾸미지 말고 느낀 대로 쓰라고 강조한다. 내면 깊은 곳, 무의식에서 꿈틀거리는 언어들을 끌어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사실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애둘러 말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풀어놓아야 한다. 문장에서 형용사나 부사를 피하고, 접속사도 빼버리라는 조언은 간결함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스티븐 킹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뒤덮여 있다고 말했다. 확실하고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 독자를 사로잡는 글쓰기의 제1원칙이다. 언제든 졸작을 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칭찬받기 위해서도 글을 쓰지 말라. 오직 피를 흘리기 위해 써야 한다. 자신의 치부, 결점, 상처,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 자기에게 치명적인 바로 그것을 쓰라. 무의식 속에 웅크리고 있는 상처받은 용을 바깥으로 끌어내는 것. 그것이 글쓰기를 통한 자기 치유이자 자기 정화다.
좋은 글은 리듬을 탄다. 말은 의미와 함께 소리를 전달한다. 좋은 문장은 음악적이고 인상적인 말의 결합이다. 말들이 내는 생생하고 가지런하고 유려하고 강인하고 아름다운 소리들은 문장을 훨씬 더 윤택하게 만든다. 문장은 간결할수록 좋아진다. 거기에 힘을 불어넣으면 문장에 생기가 돈다. 그런 문장을 만드는 힘은 진실에서 나온다. 누구나 훈련을 쌓고 연습을 하면 좋은 문장 쓰는 법을 익힐 수 있다. 글쓰기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공부이며, 평생 그것을 배울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일이다. 글의 흐름이 달라지는 곳에서 문단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독자가 보다 편하게 읽도록 하기 위함이다. 글의 흐름과 문맥을 고려해서 적당한 간격으로 문단을 바꿔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상을 순진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과 사물, 자연을 낯설고 눈부신 것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독창성은 사물이나 대상을 관습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벗어나 다르게 보기, 엉뚱하게 보기, 낯설게 보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려면 먼저 다양한 책 읽기와 다양한 경험을 통한 폭넓은 정보의 감각 입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창의성이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특성으로, 무언가에 깊이 몰입하는 동안 커지고 풍부한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열린 마음에서 풍부한 상상력이 배양된다. 열린 생각에서 창의성이 반짝반짝 빛난다. 겉치레 병, 남을 속이는 병, 위장하는 병이 깨져야 진정으로 무언가 있는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글쓰기의 1차 재료는 작가 자신의 경험이다. 특히 실패와 시련과 같은 경험이야말로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된다. 에세이는 바로 이러한 작고 하찮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다룬다. 첨벙 뛰어든 인생에 대한 글쓰기, 알려지지 않은 나, 아직 무명인 존재의 비밀을 누설하는 것이 에세이다. 에세이는 자기의 내밀한 경험을 쓴다는 점에서 고백의 내러티브다. 책을 통해 우리는 유한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몇 겹의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가보지 않은 여행지, 맛보지 못한 음식, 만나보지 않은 사람도 책을 통해 경험한다.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시련을 넘어왔는지 관찰하면서 내 삶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다.
글은 삶을 문자로 나타낸 것이요, 글쓰기는 운명이다. 사나우면서도 아름다운 운명. 생각지도 못한 많은 우연들이 뭉쳐서 운명을 만든다. 쓰는 자로서 피에 녹아 있는 불가결한 기질과 정체성이 문체 속에서 나타난다. 한강 작가의 경우를 보면, 그의 소설이 주는 가장 큰 매혹은 시적 문체를 통해 드러난다. 시적 문체란 진부한 서술을 뛰어넘는 감수성의 발현이자 함축된 목소리이고, 시를 품은 문체를 가리킨다. 그것은 서사를 품은 채 흐르며, 모음과 자음이 만나 이루는 교향이자 자유로운 숨결이며, 응축과 뜻밖의 도약을 품은 시적 스타일을 이룬다. 결국 글쓰기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도중에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재능이다. 무수한 실패를 되풀이하면서도 계속 쓰는 것.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 자신만의 스타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천부의 재능이라는 것은 거짓 신화에 불과하다. 쓰다와 살다는 동의어다. 글쓰기는 바로 삶 그 자체이며, 자신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