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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ㅣ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5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다. 눈을 뜨면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손끝 하나로 세계의 모든 일에 반응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그 속에서 정작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자주 막막해진다. 빠른 속도, 끊임없는 경쟁, 남의 시선에 맞춘 삶 속에서 우리는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바로 이때, 2,000년 전의 고전 <중용>이 우리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넨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지은 이 책은,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일’에서 출발한다. 외부의 화려함보다 내면의 성실을, 순간의 감정보다 지속되는 절제를 강조하며, 인간이 본래 지닌 ‘도(道)’를 일상 속에서 구현하는 법을 가르친다. 하지만 이 고전이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울림을 주는 이유는 단지 ‘옛것의 지혜’ 때문이 아니다. <중용>은 21세기의 우리에게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는 방법을 알려준다. 변화가 일상이고, 유혹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중용’은 균형과 절제의 언어로 ‘진정한 나’를 다시 일깨운다.이번에 박찬근님의 <중용>을 읽으며 그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중용>은 말한다.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다.” 종교적 교리나 추상적 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란 곧 인간이 본래부터 지닌 올바름의 길, 즉 ‘양심의 방향’을 뜻한다. 주자는 이 구절에 대해, “사람은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하늘에서 비롯되었음을 모른다”고 해석했다. 이는 곧 우리가 타고난 ‘본성의 선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외부의 기준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고 있음을 비판한 말이다. 21세기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선택지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중심을 잃기도 쉽다. SNS의 피드 한 줄, 익명의 댓글 하나가 우리의 판단과 감정을 쉽게 흔든다. ‘좋아요’의 숫자가 나의 가치가 되고, 타인의 시선이 나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그러나 ‘도’는 언제나 내 안에 존재하며, 외부의 자극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다’는 말은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원칙을 잃지 않는 삶을 뜻한다. 그것은 완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흔들리는 순간에도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시 중심을 세우려는 끊임없는 노력 그 자체가 ‘중용의 길’이다.
<중용>의 핵심 덕목 중 하나는 ‘신독(愼獨)’, 즉 ‘홀로 있을 때를 삼가라’는 가르침이다. 이 말은 공자의 제자들이 늘 곁에 있을 때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진짜 나를 성찰하라는 뜻이다. 오늘날 이 말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디지털 시대의 우리는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산다. 오프라인에서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온라인 익명 공간에서는 공격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주자는 “군자는 보지 않는 곳에서도 삼가고, 듣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한다”고 했다. 이는 감시가 없을 때 비로소 윤리가 시험된다는 말이다. 익명 뒤에 숨은 말 한마디, 감정적인 댓글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시대, ‘신독’은 단순한 자기 절제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됨의 기준이 된다. ‘신독’을 21세기의 시선으로 읽는다는 것은,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용기’를 갖는 일이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윤리이자, 나의 내면을 지키는 방패다.
<중용>은 ‘몸을 닦는 일(修身)’에서 시작해 ‘하늘의 이치를 아는 일(知天)’에 이르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제시한다. 자신을 바르게 세우지 않으면 부모를 공경할 수 없고,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타인을 이해할 수 없으며, 타인을 알지 못하면 하늘의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21세기의 인간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의 우리는 ‘세상을 바꾸자’는 거대한 구호에 익숙하지만, 정작 ‘나를 바꾸는 일’에는 서툴다. 그러나 중용은 말한다. 모든 변화는 자기로부터 시작된다. ‘수신’은 자신을 들여다보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진정한 성찰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부모를, 타인을,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다. ‘수신에서 지천으로’ 이어지는 중용의 단계는, 개인의 내면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우주의 질서를 하나로 엮는다. 즉, 나의 작은 성찰 하나가 결국 세상 전체의 조화를 이루는 씨앗이 된다는 것이다.
중용이 가장 강조하는 덕목은 ‘성(誠)’, 곧 ‘진실함’이다. 주자는 말한다. “성실함은 하늘의 도이고, 성실히 행함은 사람의 도이다.” 하늘은 거짓이 없고, 인간은 그 하늘을 본받아 ‘진정성’을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는 겉으로 꾸미는 것에 익숙하지만, 내면의 진실함을 유지하는 일에는 서툴다. SNS의 세계에서는 꾸며진 삶, 연출된 행복이 넘쳐난다. 그러나 진정한 ‘성’은 보여주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정직한 태도다. 성실함은 단순히 노력의 의미를 넘어, 존재의 깊은 진정성을 뜻한다. 내가 진심으로 나 자신에게 정직할 때, 비로소 타인에게도 진정한 신뢰를 줄 수 있다. ‘성’은 하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다리다.
<중용>은 완벽한 삶의 기술서를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혜의 지도다. 21세기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중용』은, 균형 잡힌 마음으로 살아가는 법,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법,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진실하게 존재하는 법을 일깨운다. ‘중(中)’은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뜻하고, ‘용(庸)’은 그것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삶의 지속성을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중용’의 길이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마음의 기술이다. 명절을 맞이하면서 고전을 읽는 기쁨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