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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자본론 - 풍요의 이름으로 우리가 놓친 모든 것에 대하여
임승수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랜만에 읽어본 자본론.. 스토리 라인이 재미있다. 책은 의대 진학을 앞둔 자녀가 마르크스 강의를 듣고 사회학과로 진로를 바꾸겠다고 선언하자, 화가 난 아버지가 강사인 임승수 작가를 찾아가 따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들의 만남은 격렬한 논쟁이 아닌 깊이 있는 대화로 발전한다. 작가 임승수는 자수성가한 자본가와 마주 앉아 와인을 마시며 『자본론』을 논한다. 이 아이러니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대화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학술적 이론이 아닌 생생한 현실 문제로 끌어온다. 책은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 쉽고, 복잡한 경제 이론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다. 더불어 와인 이야기, 자녀 교육 문제, 인생 철학까지 다양한 주제가 자연스럽게 엮여 있어 독자는 지루할 틈이 없다.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마르크스를 악마화하거나 신화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자본론』이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이지 사회주의 선전물이 아니라고 명확히 구분한다. 또한 개별 자본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모순을 지적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참으로 묘한 지점이다. 젊음의 패기는 사라졌지만 아직 노년의 여유는 오지 않았다. 사회적으로는 한창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점점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아이들은 독립을 준비하고, 부모님은 나이가 들어가신다. 나 자신은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이 시기에 『자본론』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충족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자, 앞으로 살아갈 방향에 대한 성찰이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불안한가? 왜 더 많이 가져야 안전하다고 느끼는가? 왜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가? 오십에 이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거나, 새로운 취미를 찾거나, 종교에 귀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임승수 작가는 다른 제안을 한다. 마르크스를 읽어보라고 말이다.
『자본론』의 핵심은 시간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시간을 사서 그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판다. 그 과정에서 창출된 가치 중 일부만 임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는 이윤으로 가져간다. 이것이 바로 착취의 메커니즘이다. 오십이 되어 돌아보니, 우리는 평생 누군가에게 시간을 팔아왔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도 일 생각을 하며, 휴가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렇게 판 시간의 대가로 받은 돈으로 집을 사고, 아이를 키우고, 노후를 준비했다. 하지만 언제나 부족했다. 더 많이 벌어야 했고, 더 오래 일해야 했다. 그런데 문득 깨닫는다. 나는 시간을 파는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내가 판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부를 안겨주었구나.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말한 현실이다.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학습한다. 경쟁이 당연하고, 성장이 필수이며, 효율이 최고의 가치라고 여긴다. 개인의 성공과 실패는 모두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고, 부자는 노력한 결과라고 믿는다. 하지만 오십이 되어 뒤돌아보면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일면적인지 알 수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집값은 내 노력과 상관없이 오르고, 일자리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사라진다. 경제 위기가 오면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모두가 어려워진다. 마르크스는 이런 현상들이 우연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의 필연적 결과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를 문제 삼는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지적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때 기계가 인간의 팔다리를 대신했다면, 이제는 인간의 두뇌까지 대체하려 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오십대인 우리는 이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젊은 세대처럼 새로운 기술에 쉽게 적응할 수도 없고, 기성세대처럼 변화를 외면할 수도 없다. 우리는 과도기를 살아가는 세대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보면, 인공지능과 로봇은 새로운 생산력이다. 문제는 이 생산력을 누가 소유하느냐다. 소수의 자본가가 독점한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사라질 것이다. 반면 사회 전체가 공유한다면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개인적인 적응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 전체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오십이면 대략 44만 시간을 살았다. 깨어 있는 시간만 해도 30만 시간이 넘는다. 이 모든 시간 동안 축적된 경험과 생각과 감정들이 나를 만들었다. 그런데 두세 시간의 강의나 며칠간의 독서로 그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을까? 임승수 작가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상대방이 살아온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오십에 『자본론』을 읽는 의미다.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해보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혁명가였지만, 그의 분석은 매우 차분하고 과학적이다. 그는 자본주의를 감정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냉정하게 해부한다. 그리고 그 모순과 한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이런 접근 방식이 오십대에게는 더 적합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경험했고, 충분히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것들을 새로운 틀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그런 틀을 제공한다.
오십에 『자본론』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우리는 인간이기보다는 노동력이고, 소비자이고, 경쟁자다. 내 가치는 시장에서 매겨지고, 내 행복은 소유의 정도로 측정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말한다. 인간의 가치는 시장에서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고. 인간은 본래 창조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라고. 노동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십이라는 나이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시스템의 요구에 맞춰 살았다면, 이제는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더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더 창조적인 일을 하고,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그런 조건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물론 그의 모든 처방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분석 틀과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조선시대 노비가 '양반도 없고 상놈도 없는 세상'을 꿈꿨다면 몽상가로 여겨졌겠지만,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꿈꾸는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도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십에 『자본론』을 읽는다는 것은 그런 미래를 꿈꾸면서도 현재를 냉정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삶을 더 인간답게 만들어가는 작은 실천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