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서툴수록 좋다
이정훈 지음 / 책과강연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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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친구가 울고 있을 때, 나는 언제나 무언가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절한 조언이나, 경험담이나, 적어도 "괜찮아질 거야"라는 공허한 위로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정훈 작가의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를 읽으며 깨달았다. 가장 좋은 위로는 때로 말을 삼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작가가 친구에게 보내려다 말았던 문자 메시지처럼.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는 라디오 속 누군가의 말을 전하려다가, 결국 핸드폰을 내려놓았던 그 순간처럼. 그 망설임 속에 진짜 사랑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너무 쉽게 말한다. "다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이것도 지나갈 거야." 하지만 그 말들은 때로 아픈 사람을 더욱 고립시킨다. 마치 당신의 아픔은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라고, 당신이 지금 느끼는 이 절망은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침묵을 나이테에 비유한 작가의 표현이 가슴 깊이 박혔다. 나이를 먹으며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을 말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를 아는 것이라고 했던가. 침묵에도 온도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침묵은 차가웠다. 무관심처럼 느껴졌고, 소통의 단절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나도 누군가의 아버지가, 누군가의 어른이 되어 보니 안다. 침묵은 때로 가장 따뜻한 배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지켜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할 때, 성급한 조언보다는 그냥 곁에 있어 주는 것. 해답을 제시하려 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아픔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는 어린 나이에 "슬픔에도 순서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첫 번째 조건이 자신을 지우는 일이라고. 그 문장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슬픔을 안고 산다. 그런데 때로는 그 슬픔을 뒤로 밀어둬야 할 때가 있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있을 때, 나보다 더 절실한 사람이 있을 때. 그것은 내 슬픔이 작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지금은 다른 사람의 슬픔에 자리를 내어줄 때라는 것이다. 이런 양보는 때로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내 아픔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동시에 조심해야 할 것은, 너무 자주 자신을 지우다 보면 정말로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냉장고 속 찬밥 있잖아… 맛있어. 라면에 말아 먹으면." 작가가 친구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 말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찬밥. 어제의 밥, 식은 밥, 남은 밥. 그것도 맛있다고, 라면에 말아 먹으면 괜찮다고.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식었어도, 남은 것이라도. 조리법만 바꾸면 충분히 맛있을 수 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이 될 수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삼십 대에는 완벽하게 살려고 애썼다면, 사십 대에는 주어진 현실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며 산다는 작가의 고백이 와닿는다. 이것은 체념이 아니라 지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

"누군가를 견딘다는 것은 참는 것만이 아니다. 그 사람을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과연 나는 그들을 믿고 기다려 주었을까? 아니면 내 기준에 맞추려고 재촉하기만 했을까? 진정한 사랑은 기다림이다. 상대방이 완벽해질 때까지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채로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기에 가능한 삶의 기적이라는 작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십을 앞둔 작가는 말한다. 인생에서 무엇보다 큰 행운은 '함께 걸어갈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지혜로움을 갖는 것이라고.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었던가. 매일 보는 가족, 늘 그 자리에 있는 친구,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동료들. 그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함께한다는 것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길을 걷는 것이다. 완벽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가장 좋은 위로는 완벽하지 않다. 어설프고, 어색하고, 때로는 어긋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서툰 위로 속에 진심이 담겨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화려한 말솜씨로 포장된 위로보다는, 어색하게나마 곁에 있어 주는 것. 완벽한 조언을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냥 들어주는 것. 답을 주려고 하기보다는, 함께 모르겠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사실 현재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겠다는 말이다. 진정한 사랑은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함께함에 있다. 지금 곁에 있어 주는 것, 지금 들어주는 것, 지금 함께 웃고 울어주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무엇을 말할지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를 헤아리는 것. 누군가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보다는 불완전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는 내 안의 성급함을 돌아본다. 빨리 답을 찾으려 하는 조급함, 누군가를 내 기준에 맞추려는 오만함, 완벽하지 못한 것에 대한 조바심. 이 모든 것들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나이듦의 품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었다면, 이제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소중하게 여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 완벽하지 않아도 받아주는 사람, 서로의 서툼을 너그럽게 품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의 소중함을 말이다.


인생은 계속해서 마주하는 과정이다. 두려움을, 타자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그 마주함의 순간들이 쌓여 우리는 조금씩 더 온전한 존재가 되어간다. 복싱을 통해 배운 교훈처럼, 힘든 티 내지 말고, 등 돌리지 말고, 끝까지 마주하는 것. 그렇게 사는 사람만이 "내일은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툰 위로의 힘은 여기에 있다. 완벽한 답을 주지 못해도, 함께 마주해 주는 것.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해도, 그 문제와 함께 서 있어 주는 것. 길을 제시해 주지 못해도, 같이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위로, 완벽하지 않지만 따뜻한 동행,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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