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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주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의 제목부터 쉽게 다가가기는 힘들었다. 파사주... 무슨 뜻일까 생각하게 한다. 한문을 보아야 그 뜻을 유추할 수 있다. 책에서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주제는 무엇일지 궁금해지게 한다. <파사주>는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탈출한 두 청소년, 유림과 해수의 이야기다. 8살과 12살부터 그곳에 갇혀 지낸 이들이 17살이 되어 마침내 벽돌집을 탈출하며 시작되는 여정을 통해 순례가 되는 과정을 이야히 한다.
보육원은 겉으로는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보호시설이지만, 실상은 군대식 위계질서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감옥과 다름없다. '아버지 선생님'으로 불리는 교주가 신도들과 원생들을 지배하며,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착취가 자행된다. 특히 의심 많고 반항적인 해수는 이런 체제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가장 가혹한 처벌의 대상이 된다. 두 아이의 탈출 여정은 황천길과 명도로 표현되는 상징적 공간들을 거쳐간다. 이 과정에서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난다. 해수는 사실 보육원에서 당한 폭력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고, 유림과 함께하는 여행은 애도와 치유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소설을 통해서 드러나는 진실에 있다....
책의 제목인 파사주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파사주(破四柱)', 즉 주어진 운명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또한 파사주는 사주를 볼 때 쓰는 용어로서 나와 주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운명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이는 소설의 핵심 메시지와 정확히 부합한다. 해수의 "구원이란 누가 해주는 게 아니거든. 우리 스스로 해야 하는 거지"라는 말은 운명론적 체념을 거부하고 자기 결정권을 되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동시에 유림과 해수의 관계는 홀로서는 불가능한 구원이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가능해짐을 보여준다. "둘이 아닌 혼자서는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는 유림의 깨달음이 바로 그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말하기'와 '침묵'의 대조다. '하나의말씀'이라는 종교 단체명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그곳에서는 오직 교주의 '말씀'만이 허용되고, 아이들은 복창과 침묵만 강요당한다. "하나님은 말을 안 해, 말씀만 하시지"라며 판단을 금지하는 교주의 논리는 사고 자체를 마비시키려는 전형적인 세뇌 기법이다. 반면 해수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한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나?" "너희도 인간으로 살고 싶어?"와 같은 그의 물음들은 체제의 근본을 흔드는 위험한 말들이다. 그리고 이런 '말하기'야말로 진정한 구원의 시작점이 된다. 소설 속 "이야기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것만은 피하기 위해서"라는 문장이 특히 울림을 준다. 침묵 속에서는 삶도 죽음도 아닌 무기력한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말하고, 기억하고, 증언해야만 진정한 삶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다.
이 소설은 종교를 가장한 권력의 폭력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고, 성폭력을 자행하면서도 종교적 수사로 포장하는 모습은 현실의 여러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소문은 호기심과 비겁함, 그리고 적극적인 침묵 속에서 몸집을 불린다" 이런 폭력이 지속될 수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방관과 침묵이 폭력의 공범이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절망적 현실 고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유림과 해수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적 연대의 가능성이다. 서로를 지켜주고, 함께 기억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관계야말로 가장 강력한 저항의 형태라는 것이다. 해수가 유림과 함께 여행하는 설정은 환상적이면서도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진정한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며,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해 울면서 살 거야"라는 유림의 다짐은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며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소설은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대화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서술, 그리고 복층적 의미를 담은 공간 설정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특히 각 장의 제목들(서, 물, 황천, 길, 명도, 들, 묘지, 뫼, 망산 숲, 신림, 늪, 윤해, 종)이 만들어내는 운율감과 함께 독자들로 하여금 잠시 멈춰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만이 그들의 집이자 길이었다"는 표현처럼, 작가는 관계의 본질을 시적 언어로 풀어낸다. 이런 서정적 문체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힘이 된다.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 권력은 언제나 침묵을 강요하고, 피해자들은 입을 다물게 된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고, 상처를 증언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치유의 시작이라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주는 것 같다. 구원이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스스로'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타인과의 연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 속에서만 진정한 자유와 해방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