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의 시대 - 치열하게 살았는데 왜 이토록 허무한가
조남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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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렇게 허전할까? 분명 할 일은 다 했고,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데,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감정이 나만의 것일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조차 "뭔가 부족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조남호님의 <공허의 시대>를 읽으며 그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하나의 공식을 주입받으며 자랐다. 꿈을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성공이야말로 의미 있는 삶의 증거라는 생각. 이것이 바로 현대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목적주의'의 정체다. 목적주의는 겉으로는 매우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인다. 목표가 있어야 방향을 잃지 않고, 계획이 있어야 효율적으로 살 수 있으며, 성취가 있어야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공식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있다. 첫째, 목적은 끊임없이 변한다. 어제의 꿈이 오늘은 시시해 보이고, 오늘의 목표가 내일은 달라진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은 생각보다 불안정하다. 둘째, 계획은 현실 앞에서 무력하다. 아무리 치밀하게 세운 계획도 예상치 못한 변수들 앞에서는 종이조각이 된다. 팬데믹이 온 세상의 계획을 한순간에 바꿔놓은 것처럼. 셋째, 의지만으로는 지속할 수 없다. 처음에는 불타오르던 열정도 시간이 지나면 식어간다. 외적 동기로 시작한 일들은 결국 의무와 부담으로 변한다. 넷째, 성취의 순간은 생각보다 짧다. 그토록 원하던 것을 얻는 순간의 기쁨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목표를 찾아 헤매게 된다.

우리 사회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들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동시에, 은밀한 압박감도 함께 전달한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왜 나는 안 될까'라는 자책감이 공존한다. 하지만 이런 성공 스토리들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다. 성공에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수많은 우연과 운,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성공한 사람들조차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우리는 이를 간과하고 오직 노력과 의지의 결과로만 바라본다. 더 큰 문제는 성공의 기준 자체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성공을 정의하는 순간, 우리는 끝없는 경쟁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누군가보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하고, 더 빨리 달성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뇌과학자들이 밝혀낸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우리가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이다. 문제는 이 도파민의 분비가 매우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마치 마약과 같아서, 순간적인 쾌감을 주지만 곧바로 더 큰 허무함으로 떨어뜨린다. 그래서 성공을 경험한 사람들이 "성공해봤자 별거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들이 허영을 떠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취의 순간이 생각보다 공허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취 후에 찾아오는 '이게 전부야?'라는 감정이 더 강렬할 수 있다. 이런 메커니즘을 모른 채 우리는 계속해서 다음 목표, 더 큰 성취를 향해 달려간다. 마치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열심히 뛰지만 실제로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목적도 계획도 성취도 의미가 없다면,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바로 '충만주의'라는 사고방식이다. 충만주의는 미래의 목적이 아니라 현재의 경험에 집중한다.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를 중요하게 여긴다. 결과보다는 과정, 성취보다는 경험, 목표보다는 현재의 충실함을 추구한다. 이것이 단순한 현재 중심주의나 쾌락주의와 다른 점은, 현재를 더 깊이 있게, 더 온전히 경험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100% 살아내려는 적극적인 태도다.

충만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사소하다고 여겼던 일상의 순간들이 새롭게 보인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 동료와 나누는 대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들. 이 모든 것들이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목적주의에 갇혀 있을 때는 이런 순간들을 그냥 지나쳤다. '이런 걸로 뭐가 달라지겠어?'라고 생각하며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들만 찾았다. 하지만 충만주의는 바로 이런 순간들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운동을 예로 들어보자. 목적주의적 운동은 살을 빼거나 근육을 키우거나 건강을 위한 수단이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목표에 도달하면 동기가 떨어진다. 반면 충만주의적 운동은 몸을 움직이는 그 자체의 즐거움, 근육이 반응하는 느낌, 땀이 나는 감각을 중요하게 여긴다. 결과와 상관없이 운동하는 그 시간 자체가 충만하다.

공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표나 더 완벽한 계획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더 깊이 있게, 더 온전히 경험하려는 태도의 전환이다. 오늘 밤, 다시 천장을 바라보며 공허함을 느낄 때, 이렇게 질문해보자. "나는 오늘을 얼마나 충만하게 살았는가?" 거창한 성취나 완벽한 하루가 아니더라도, 작은 순간들 속에서 발견한 의미와 경험들을 떠올려보고자 한다. 공허의 시대에서 충만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은 외부 세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같은 현실이라도 다른 렌즈로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우리가 찾아 헤매던 의미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었다. 단지 우리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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