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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보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김홍님의 <말뚝들>.. 제목부터 흥미롭다. 말뚝들의 의미는 무엇을까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 본다.. 바다에서 시작된 그들은 처음엔 그저 기이한 현상이었다. 시랍화된 몸으로 썰물에 드러나는 말뚝들을 보며 사람들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뉴스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점점 우리 곁으로 다가올 때, 바다에서 해변으로, 해변에서 도심으로, 도심에서 우리 앞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깨달았다. 이것이 의미없는 현상이 아님을 알게된다.김홍의 <말뚝들>에서 말뚝은 죽음의 형상이지만, 동시에 기억의 형상이다. 그들은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것들, 외면하고 살아가는 것들의 구현체다. 소설 속 장이 트렁크에 납치당하는 사건부터 시작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과정은, 결국 우리 모두가 안고 살아가는 '빚'에 대한 이야기다. 빚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알았다. 그것은 경제적 부채나 도덕적 죄책감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에게,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에게, 그리고 개인이 공동체에게 지는 존재론적 빚 말이다.소설 속 정부는 말뚝들을 수거하고 숨기며,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으려 한다. 계엄령까지 선포하며 이 현상을 통제하려 하지만, 말뚝들은 오히려 더 가까이, 더 개인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이 장면들을 읽으며 나는 우리 사회가 애도를 다루는 방식을 떠올렸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침묵을 강요받았나. 슬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말들, 이제 그만 잊고 앞을 보라는 강요들. 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것들은 다른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말뚝처럼,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김홍은 이 소설에서 국가 권력이 개인의 슬픔마저 통제하려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말뚝들이 자아내는 눈물은 그 통제에 대한 몸의 저항이자, 감춰진 슬픔들의 분출이다. 우리는 모두 울어야 할 때가 있고, 그 권리마저 박탈당했을 때 더 큰 재난이 시작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장이 자신에게 찾아온 말뚝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그가 평생 져야 할 빚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이 이 소설에서 가장 뭉클한 대목이다. 그것은 어떤 죄책감이나 잘못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기억해야 할 의무,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한 책임감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무수한 빚을 지고 산다. 부모에게, 친구들에게, 스쳐 간 인연들에게. 때로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빚들이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는 마지막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유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 그 빚을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역설이다.소설 초반 장이 트렁크에 납치당하는 사건은 서스펜스만의 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평생 안고 갈 트라우마이자, 동시에 그를 변화시키는 계기였다. 납치라는 극한의 경험을 통해 그는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동시에 그 무력함 속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마지막 장면에서 장이 스스로 트렁크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상징적이다. 그것은 트라우마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껴안는 선택이다. 자신의 상처와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개인적인 것부터 집단적인 것까지.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김홍은 이 소설을 통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방법이 망각이 아니라 기억임을, 회피가 아니라 직면임을 보여준다.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말뚝들과 함께 우는 장면이다. 각자의 슬픔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 개인의 고통이 집단의 치유로 승화되는 순간. 이때 마스크를 벗은 수거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처음 보며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슬픔은 나누면 줄어든다고 하지만, 때로는 나누면 더 커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커진 슬픔은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연결시킨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끼리, 같은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위로하고 부축하게 만든다. 코로나 시국을 지나며, 집단적 트라우마를 경험하며 우리는 배웠다.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것들도 함께라면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게된다.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계속 물었다. 내 삶에 나타날 말뚝은 누구일까? 내가 기억해야 할 사람은 누구이고, 내가 져야 할 빚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말뚝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기억되고 싶어 하고,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존재가 의미 있었음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존재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를 기억하는 것, 서로에게 진 빚을 잊지 않는 것이다.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를 기억하고 있는가? 당신은 누구에게 빚을 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빚을 어떻게 갚으려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기억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완벽하게 갚을 수 없는 빚들을 안고 살아가는 것, 그 무게를 느끼며 조금 더 인간다워지는 것. 그것이 말뚝들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이 소설을 덮으며 나는 약속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스쳐 간 인연들을,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내 삶에 영향을 준 무수한 존재들을 기억하겠다고. 그들에게 진 빚을 잊지 않겠다고. 말뚝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보이지 않는 형태로, 느낄 수 있는 형태로. 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잊지 말라고, 기억하라고, 서로를 사랑하라고 이야기 한다. <말뚝들>은 죽음에 관한 소설이지만, 결국 삶에 관한 소설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누구와 함께 갈 것인가에 대한 소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져야 할 아름다운 빚에 대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