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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두꺼비가 지키는 전통 사찰 이야기 - 천년을 지켜온 사찰 공간과 건축의 비밀
권오만 지음 / 밥북 / 2025년 7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산속 깊은 곳에서 마주하는 전통 사찰들은 종교 시설만의 의미를 넘어선 존재이다.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이 건축물들은 우리 조상들의 깊은 철학과 뛰어난 건축 기술이 응축된 문화유산이자, 자연과 인공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공간 예술의 걸작이다. 그동안 사찰을 방문할 기회는 많았으나, 그 속에 담긴 의미와 특징 등에 대해서는 몰랐던 것 같다. 이번에 우리 전통 사찰에 대해 상세히 알아 볼 수 있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신선 두꺼비가 지키는 전통 사찰 이야기>였다. 제목이 재미있다. ^.^
한국의 전통 사찰이 갖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연에 대한 깊은 존중과 순응이다. 서양의 웅장한 성당이나 중국의 화려하고 대칭적인 건축물과는 달리, 우리의 사찰은 주변 산세와 지형에 몸을 맡기며 마치 그 자리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자연의 일부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라, 자연을 정복하거나 압도하려 하지 않고 그 안에서 조화를 찾으려 한 우리 민족의 세계관이 건축에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스러움 뒤에는 놀랍도록 치밀한 계산과 고도의 건축 기술이 숨어 있다.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는 구조물 하나하나가 실제로는 깊은 사유와 정교한 설계를 통해 탄생한 것이다. 예를 들어, 주춧돌과 기둥을 연결하는 '그랭이질' 기법은 단순히 자연스러운 외관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울퉁불퉁한 주춧돌에 맞춰 기둥을 깎아 세우는 이 방법은 접촉면을 넓히고 표면을 거칠게 만들어 기둥의 안정성을 크게 높인다. 동시에 평평하게 깎인 주춧돌이 빗물을 고여 나무 기둥을 썩게 만드는 문제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한국의 전통 사찰은 단순히 불상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아니라, 방문자의 마음을 단계적으로 정화하고 변화시키는 정교한 심리적 장치이기도 하다. 일주문부터 시작해서 경내에 이르기까지의 동선은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산세를 따라 자연스럽게 굽이치며 이어지는 진입로는 방문자로 하여금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점진적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게 만든다. 이 오르막길을 돌고 돌아 오르는 과정은 수행과 인내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불교의 수행 철학을 공간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목적지가 한눈에 보이지 않고 구불구불한 길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진리 또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정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몸소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누하진입법'이라는 독특한 공간 설계이다. 누각 아래의 낮은 공간을 통과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든 이 방법은 여러 차원에서 의미를 갖는다. 우선 종교적 측면에서는 극적인 명암 변화를 통해 공간 전환의 경험을 극대화한다. 어두운 누각 아래를 지나 밝고 탁 트인 공간으로 나오는 순간, 방문자는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동한 듯한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동시에 이는 매우 현실적인 기능도 수행했다.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 하에서 양반들이 말을 타고 사찰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는 일이 잦았는데, 낮은 누각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가 말에서 내려 겸손한 자세로 걸어 들어오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제어 장치 역할을 했다. 이처럼 종교적 의미와 실용적 기능이 절묘하게 결합된 것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사고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불교 건축이 갖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고정된 형태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성과 포용성이다. 인도에서 시작된 스투파가 각 지역의 문화와 환경에 따라 중국의 전탑, 일본의 목탑, 한국의 석탑으로 다르게 발전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불교가 근본적으로 외형보다는 본질적 의미를 중시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한국 불교 건축에서 이러한 포용성은 토착 신앙과의 조화에서도 나타난다. 산신각, 칠성각 같은 공간들은 전통적인 불교 교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민중의 신앙과 욕구를 수용하여 자연스럽게 사찰 공간에 편입되었다. 이는 불교가 한국 땅에 뿌리내리면서 보인 현실적 적응력과 포용력의 결과이다. 또한 건축 자재의 활용에서도 이러한 철학이 드러난다. 인공적으로 가공된 획일적인 자재보다는 자연이 만들어낸 고유한 형태를 그대로 살려 사용하는 전통은, 자연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존중하는 우리 문화의 특성을 보여준다. 구부러진 나무는 그 굽음을 살려 곡선미를 표현하고, 각기 다른 모양의 돌들은 서로 맞물리며 견고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구조를 만들어낸다.
동아시아 불교 문화권에서 한국 사찰 건축의 독특함은 중국,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명확해진다. 중국의 불교 건축이 황실의 후원 하에 웅장함과 화려함을 추구하며 권력을 시각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면, 한국의 사찰은 권력보다는 수행과 명상에 중점을 둔 공간으로 발전했다. 일본의 경우 자연을 인공적으로 모방하고 재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교토 료안지의 석정으로 대표되는 가레산스이 정원은 자연을 고도로 추상화하고 양식화한 결과물이다. 반면 한국의 사찰은 자연을 모방하기보다는 자연 그 자체와 하나가 되려 한다. 정원을 별도로 조성하기보다는 주변의 산과 계곡, 숲 자체를 정원으로 삼는 접근법이 이를 잘 보여준다. 선종의 수용 과정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에서는 선종의 도입과 함께 도시를 떠나 깊은 산중에 수행 도량을 마련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지형에 순응하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건물 배치가 자리 잡았다. 반면 일본에서는 선종이 하나의 문화적 충격으로 작용하면서 정형화된 참선 공간과 관상용 정원 문화가 발달했다.
한국 전통 사찰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곳곳에 숨겨진 상징과 의미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공포불'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지붕을 떠받치는 공포라는 구조재들 사이의 어두운 공간이 우연히도 부처가 좌선하는 모습을 형상화한다는 것이다. 이는 직접적인 조각이나 회화가 아닌, 건축 구조 자체가 만들어내는 음影의 공간을 통해 종교적 상징을 구현한 놀라운 사례이다. 이처럼 '비움을 통한 채움'이라는 철학은 불교의 핵심 사상인 '공(空)'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 물질적 실체가 아닌 빈 공간이 오히려 가장 중요한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다. 이는 서양의 건축이 주로 '무엇을 세울 것인가'에 집중한다면, 우리 전통 건축은 '무엇을 비울 것인가'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처마 끝의 용 조각이나 벽면의 도깨비 문양 같은 장식적 요소들도 단순한 미적 장식이 아니다. 이들은 원래 화재나 악령을 물리치는 우리 고유의 토착 신앙에서 비롯된 것들로, 불교와 전통 신앙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결과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상징들이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그 의미가 왜곡되어 악귀의 형상으로 변화했고, 일제강점기에 다시 우리나라로 역수입되어 본래 의미를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오늘날 우리가 전통 사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치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로서의 의미를 넘어선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 철학, 인간의 심리를 고려한 공간 설계, 지역 환경과 문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포용력 등은 현대 건축과 도시계획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지속가능한 발전이 화두가 된 현시점에서, 자연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고 환경에 최소한의 부담을 주면서도 기능적이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낸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새롭게 조명받을 필요가 있다. 또한 공간을 통해 인간의 정서와 의식을 정화하고 승화시키려 한 접근법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 빈곤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통 사찰들이 우리에게 '아는 만큼 보인다'는 깨달음을 준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 너머에 숨겨진 깊은 철학과 지혜를 이해할 때, 비로소 이 공간들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책은 우리 문화의 정수가 응축된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서 사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전통 사찰은 결국 우리 민족이 천년 이상에 걸쳐 쌓아온 자연관, 세계관, 미학이 종합적으로 구현된 문화적 보고이다. 기둥 하나, 돌 하나에도 담긴 선조들의 지혜를 읽어내고, 그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위한 영감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고 계승하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