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박사 평전 석주명
이병철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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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르네상스를 이야기 하면서, 천재들의 시대라고 이야기 합니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한분야 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기존의 오래된 관념을 깨고 인류 역사상 새로운 문화를 불러일으킨 시대의 천재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천재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나비 박사 평전 석주명>... 그는 우리나라의 르네상스형 천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비의 날갯짓으로 시대를 가로지른 학자의 초상이라 할 수 있는 석주명 선생의 삶과 정신을 잘 알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차가운 붓 대신 따스한 햇살 아래 피어나는 꽃처럼, 단단한 흙 대신 유연한 날갯짓으로 하늘을 유영하는 나비처럼, 어떤 이들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궤적을 남깁니다. 그중 한 분이 바로 우리가 '나비 박사'라 부르는 석주명 선생님이다. 박사 학위를 받지 않았음에도, 그의 이름 앞에 붙은 '박사'라는 칭호는 한 분야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헌신과 열정,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통찰력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거대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 효과'처럼, 한 인간의 순수한 열정이 어 떻게 한 시대의 지평을 넓히고 후대에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1908년 평양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석주명 선생은, 비록 당시의 시대상은 암울한 식민지였지만, 그의 가족은 아들의 교육과 민족의식 함양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서당에서 한학을 익히고 근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청년 석주명은, 예술과 학문을 넘나드는 깊이 있는 사색가로 피어났습니다. 숭실학교에서는 안익태 선생과 교류하며 음악에 심취 하기도 했으나, 숭실학교의 동맹휴학 사태로 전학하게 된 송도고보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바로 조류학자 원홍구 선생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인생의 항로를 생물학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그는 그렇게 나비의 매혹적인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일본 유학길에서 만난 오카지마 긴지 교수는 석주명 선생의 비범한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조선 나비를 10년만 연구하면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격려로 그의 길을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스승에 대한 깊은 존경심은 훗날 그가 발견한 나비의 신아종에 스승의 이름을 딴 학명을 붙인데서도 잘 드러납니다. 석주명 선생은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자연과 인문학을 아우르며, 시대를 앞서간 융복합 학문의 선구자였습니다. 그의 나비 연구는 생물학 적 분류에 그치지 않고, 제주도 방언 연구, 세계 공용어 에스페란토 보급에 대한 그의 노력과도 맞닿아 있었으니, 이는 그가 가진 넓은 시야와 인류애를 증명하는 귀한 흔적들입니다.

일제 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 속에서, 그는 조국의 자연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기록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뜨거운 민족의식을 품었습니다. 당시 일본 학자들이 무분별하게 분류해놓았던921종의 한국 나비를 250여 종으로 재정리하고, 그 특성에 맞는 우리말 이름을 부여한 것은 우리의 자연과 정체성을 지키고자 한 불굴의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70만 마리가 넘는 나비를 채집하고, 20만 마리가 넘는 나비를 일일이 정밀 관찰하며, 심지어 배추나비16만 마리의 날개 길이를 측정하여 개체 변이 이론을 증명하는 경이로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치열한 연구는 그가 얼마나 완벽을 추구하고 진리에 목말라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나비 한 마리에서 그는 생명의 신비와 우주의 질서를 보았고, 그 작은 날갯짓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노력은 국경을 넘어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이릅니다. 우연한 기회에 미국 엔드루스 탐험대와의 만남은 그의 연구가 해외로 알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영국 왕립아시아협회의 지원을 받아 영문으로 발간한 <조선산 류(나비류) 목록>은 식민지 시기 한국인 과학자가 영문으로 집필한 유일한 책으로 기록됩니다. 이는 그의 학문적 역량이 얼마나 세계적 수준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특히 책 서문에 그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를 남긴 것은, 학자로서의 성공 뒤에 언제나 그를 지지하고 격려했던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음을 시사하며, 그의 따뜻한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선생님의 짧은 생애는 안타깝게도 6.25 전쟁의 비극 속에서 마감됩니다. 그러나 그의 정신과 업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4 후퇴의 혼란 속에서도 누이동생 석주선 선생님이 피난길에 오빠의 원고 배낭을 메고 대피하여 소중한 유고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기적 같은 이야기는, 가족들의 깊은 사랑과 더불어 그의 학문이 얼마나 귀중하게 여겨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유고집들이 그의 서거 이후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세상에 빛을 보았다는 사실은, 시간의 간격을 넘어 그의 연구의 가치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증명합니다. 그가 생전에 마무리하지 못한 <한국산 나비의 연구>나 <한국 나비 분포도>등의 귀한 저술들은 1968년 이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공개되며, 그의 업적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는지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석주명 선생님은 42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92편의 학술 논문과 9편의 단행본을 남겼고, 수많은 유고집을 통해 오늘날 까지도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나비의 아름다움과 신비만을 가르쳐준 것이 아닙니다. 그는 혼란과 암흑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고, 끊임없는 탐구를 통해 진리에 다가가고자 한 진정한 학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석주명 선생님의 삶은 바로 이 진리를 온몸으로 보여준 증거입니다. 그의 나비 연구는 자연과의 깊은 교감, 생명의 존엄성, 그리고 학문적 독립을 향한 열망을 담고 있었습니다. 석주명 선생님의 삶은 단지 '나비 박사'의 이야기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한 시대를 온전히 사랑하고, 그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오직 진리를 탐구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위대한 자연과학자이자,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자 했던 참된 지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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