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고 - 대항해 시대와 우연의 역사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4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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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바다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 15세기 말, 대서양을 가로지르던 범선들의 돛에 스며든 소금기, 갑판 위에서 밤하늘의 별자리를 그리던 항해사들의 떨리는 손끝, 그리고 미지의 땅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갈망까지도. 그 바다 위에서 한 남자가 펜을 들어 편지를 썼다. 그는 자신이 쓰는 그 글자들이 훗날 대륙 전체의 이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아메리고>를 읽으며, 나는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 위에서 만들어지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이름 석 자가 신대륙 전체를 대표하게 된 과정은, 마치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불러일으킨다는 카오스 이론을 보는 듯하다. 작은 편지 한 장, 지도 한 장이 어떻게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두 대륙의 이름으로 굳어질 수 있었을까.

콜럼버스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인도에 닿았다고 믿었다. 그의 고집스러운 확신은 어쩌면 탐험가의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자는 언제나 자신만의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고, 그 지도가 현실과 다를 때조차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베스푸치는 달랐다. 그는 콜럼버스가 발견한 땅이 아시아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대륙임을 직감했다. '문두스 노부스', 신세계라는 그의 표현에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경이로움이 스며 있었다. 베스푸치의 시선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는 단순히 금과 향료를 찾아 나선 탐험가가 아니라, 세계의 참모습을 이해하려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의 편지들을 읽다 보면, 새로운 땅의 원주민들을 관찰하는 그의 눈빛이 느껴진다. 호기심 가득한,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따뜻함이 담긴 시선 말이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베스푸치 자신은 신대륙의 발견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콜럼버스를 존경했고, 자신은 단지 그의 뒤를 이어 항해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유럽에 새로 등장한 인쇄술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인쇄업자들은 베스푸치의 편지를 팸플릿으로 만들어 유럽 전역에 퍼뜨렸고, 그 과정에서 내용이 과장되고 왜곡되었다. 마르틴 발트제뮐러라는 지도 제작자가 <지리학 입문>에서 신대륙을 '아메리카'라고 명명한 순간, 역사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 제뮐러는 나중에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인쇄된 지도들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아메리카'라는 이름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베스푸치는 철저히 수동적인 존재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대륙의 이름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아마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동시에 콜럼버스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베스푸치를 둘러싼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갔다. 처음에는 위대한 탐험가로 추앙받았다가, 17세기에는 라스카사스 주교에 의해 사기꾼으로 매도당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야 마냐기의 연구를 통해 그의 명예가 회복되었다. 이 모든 논쟁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인 베스푸치와 콜럼버스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역사란 참으로 잔인한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진실을 말할 수 있지만, 죽은 자들은 후대의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베스푸치는 자신이 역사의 법정에서 수백 년간 재판을 받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그는 단지 자신이 본 것을 솔직하게 기록했을 뿐이었다.

츠바이크는 이 모든 과정을 '역사적 오류와 우연'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여기서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한다.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굳어진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과 욕망이 만들어낸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15-16세기 유럽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영웅을 원했고, 이야기를 원했다. 베스푸치의 편지는 그런 욕망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콜럼버스의 이름은 이미 스페인 왕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베스푸치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였다. 그의 이름은 어떤 특정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어쩌면 신대륙은 누구의 것도 아닌 새로운 땅이었기에, 누구의 것도 아닌 베스푸치의 이름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베스푸치라는 한 개인의 이름이 두 대륙을 대표하게 된 것은, 어쩌면 그 시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콜럼버스는 발견자였지만, 베스푸치는 이해자였다. 사람들은 단순히 새로운 땅을 찾은 사람보다는, 그 땅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의 이름을 택했던 것일까.

베스푸치의 이야기에서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부분은 그의 선량함이다. 그는 명예욕이나 야망보다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바다를 향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의도하지 않게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마치 잘못 배달된 편지가 운명을 바꾼 로맨스 소설 같다. 인쇄업자들의 상업적 계산, 지도 제작자의 실수, 학자들의 논쟁 -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우연의 사슬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사슬의 끝에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있었다. 베스푸치는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수동적인 존재였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존재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우리는 베스푸치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먼저, 진실이란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지를 알 수 있다. 베스푸치가 사기꾼인지 영웅인지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처한 상황과 그 시대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다. 또한 정보의 힘과 위험성도 깨달을 수 있다. 인쇄술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어떻게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꿨는지를 보면, 오늘날의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보는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의 의도와 받아들이는 사람의 욕망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다.

베스푸치의 이야기는 인간다움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완벽한 영웅도, 철저한 악역도 아닌, 그저 자신의 시대를 살아간 한 사람이었다. 그의 편지들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한 인간의 순수한 경이로움이다.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탄생한 과정은 우연의 연속이었지만...아메리고 베스푸치. 그는 자신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던 그 순수한 시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용기와 호기심,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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