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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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둠이 세상을 덮을 때, 인간은 어디서 빛을 찾는가? 전쟁이라는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 정신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메리 앤 섀퍼와 애니 베로스가 함께 완성한 소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과 이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영화는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이야기 한다.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서 보는 기쁨도 흥미로웠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영국 해협의 작은 섬 건지에서 벌어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과 치유, 그리고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편지 형식의 서간체 소설이다. 즉, 줄리엣과 건지 섬 주민들이 주고받는 편지들만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편지 속에 담긴 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등장인물의 성격, 감정, 관계, 그리고 전쟁의 영향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은 등장인물들이 직접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마치 그들의 삶을 엿보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또한 편지 형식은 사실적인 요소와 문학적인 표현을 결합하여 전쟁 후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을 연결하는 힘을 강조한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건지섬은 독일군의 철저한 통제 하에 놓여 있었다. 식량은 부족했고, 자유는 제한되었으며,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버텨나가야 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탄생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그 우연이 가져온 변화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문학이 인간에게 주는 위안은 현실 도피의 수단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적 존재다. 그녀는 북클럽의 창립자이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던 용기의 화신이다. 폴란드 출신 강제 노동자를 숨겨준 것이 발각되어 프랑스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면서도, 그녀는 끝까지 타인을 위한 연민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의 선택은 개인의 안전을 포기하고 타인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숭고한 결단이었다. 그녀의 행동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빛나는 사례다. 더 나아가 그녀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그녀가 남긴 정신적 유산은 건지섬 주민들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 되었다. 강제수용소에서 엘리자베스와 함께 있었던 레미 지로가 전해주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들은 독자의 가슴을 깊이 울린다. 죽음 앞에서도 다른 수용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는 증언은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가 바로 타인을 사랑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빅터 프랭클이 말했듯이, 외부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그 상황에 대한 우리의 태도만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런던의 작가 줄리엣, 전쟁이 끝났지만 여전히 그 상처와 공허함에 시달리던 그녀에게 건지섬 주민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제시해준다. 그들의 따뜻한 환대와 진실한 우정 속에서 줄리엣은 자신도 모르게 메말라가고 있던 마음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다. 영화와 소설이 모두 강조하는 것은 치유가 일방향적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줄리엣이 건지섬 주민들로부터 위로를 받는 동시에, 그녀 역시 그들에게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가져다준다. 특히 엘리자베스의 딸 키트를 돌보는 과정에서 줄리엣은 관찰자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변모한다. 진정한 치유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소설에서 편지는 희망과 연대의 매개체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상처 입은 마음과 피폐해진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문학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위로를 받는다. 줄리엣이 건지 섬 주민들과 나눈 편지는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교감하는 도구가 된다. 또한 편지를 통해 주민들은 자신들의 아픔과 극복 과정을 기록하며 과거를 되돌아보고,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된다. 결국 편지는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고 치유되는 과정의 중심에 자리한다.

​책이 현대 독자들에게 특별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 시대 역시 나름의 위기와 고통 속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팬데믹, 경제적 불안, 사회적 갈등, 환경 파괴 등 현대인들이 직면한 문제들은 형태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건지섬 주민들이 겪었던 불안과 두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건지섬 주민들이 보여준 연대와 상호부조의 정신은 더욱 의미가 깊다. 그들은 각자의 생존에만 급급하지 않고 서로를 돌보며 공동체를 유지해나갔다. 물질적으로는 궁핍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웠던 그들의 삶은 현대 사회의 물질적 풍요 속 정신적 빈곤과 대비된다. 특히 독서와 토론을 통한 소통의 중요성은 SNS와 짧은 메시지가 지배하는 현대 소통 문화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건지섬 주민들의 독서 모임은 깊이 있는 대화와 진심어린 경청이 어떻게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유대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빠르고 피상적인 소통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느리지만 깊이 있는 소통의 가치를 되새기게 해준다.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은 희망을 찾을 수 있으며, 그 희망은 혼자의 힘으로가 아니라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다. 문학은 그러한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매개체이며, 독서는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수적 영양소라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편지라는 소통 방식도 의미심장하다. 직접 대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편지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줄리엣과 건지섬 주민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은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는 진심의 그릇이었다. 이는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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