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혀 - 황교익의 본격 정치 시식기
황교익 지음 / 시공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녁 식탁에 앉아 "오늘 뭐 먹지?"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이미 작은 정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한다.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 투표와 닮았다는 황교익의 통찰은 깊은 울림을 준다. 개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선택의 순간, 그 작은 결정들이 모여 한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고, 나아가 한 나라의 권력자가 되었을 때는 국가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언론의 취재만을 통해서 청와대 회담 테이블 위의 한우갈비와 비빔밥, 판문점에서 나누어 먹은 냉면 한 그릇. 이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한다. 이 음식들은 시대정신과 외교적 메시지가 담긴 상징이었다. 권력자의 혀끝에서 시작된 선택이 어떻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놀랍도록 흥미롭다. 흥미로운 책이다 <대통령의 혀>

대통령은 본질적으로 혼밥을 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지적이 가슴에 와 닿는다. 권력이란 혼자서는 행사할 수 없는 것이고, 소통과 설득의 과정에서 비로소 그 정당성을 얻는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가 혼자 밥을 먹었다는 사실은 상징성을 갖는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도 누구와 의논하지 않고, 누구의 조언도 구하지 않은 채 홀로 식사를 하는 지도자. 그 모습에서 우리는 소통 부재의 참혹한 결과를 예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연대 행위인데, 그마저 거부한 권력자가 어떻게 국민과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었을까. 혼밥의 정치학은 현재진행형이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의 예술이고, 그 시작은 언제나 함께하는 식탁에서 시작된다. 권력자가 혼자 먹는 밥은 외로운 것이 아니라 위험한 것이다.

4월에 수박이 나온 이기붕의 집. 이 한 문장이 담고 있는 시대의 분노와 절망을 생각해본다. 계절을 거스르는 사치, 그것은 부의 과시가 아니라 민심과 동떨어진 권력의 오만을 상징했다. 권력자의 식탁이 일반 국민의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반면 김영삼의 칼국수는 어떨까. 조선시대 반가의 격조 있는 음식이었던 칼국수가 서민 음식의 대표로 자리 잡은 시점과 그의 정치 여정이 겹친다. 품격을 갖추되 서민적인 음식, 그것은 그가 추구했던 정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음식의 계급성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정치인은 어떤 위치를 점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노무현의 라면은 또 다른 상징성을 갖는다. 공군1호기라는 권위적 공간에서 어울리지 않게 보이는 라면 한 그릇. 하지만 그 부조화가 오히려 진정성으로 다가온다. 권력의 공간을 비트는 서민적 음식, 그 안에서 우리는 진짜 인간 노무현을 발견한다.

음식만큼 강력한 외교적 도구가 또 있을까. 독도새우 메뉴에 발끈하는 일본의 반응을 보면, 음식이 정치적 메시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작은 새우 한 마리가 담고 있는 영토 주권의 의지, 그것을 읽어내는 외교관들의 예민함이 때로는 코믹하기도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판문점 냉면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분단 70년의 세월을 견뎌온 한민족의 음식이 다시 한반도에서 함께 나누어 먹어지는 순간. 냉면 그 자체가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메시지였다는 해석이 깊은 울림을 준다. 중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세계 어디에서든 한민족이 있는 곳에는 냉면이 있다. 그 냉면을 남과 북의 정상이 함께 먹는 모습에서 우리는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감동도 잠시, 현실은 다시 냉혹해졌다. 음식이 담고 있는 메시지의 진정성은 그것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의 진심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1972년 이전의 음식은 배고파서 먹는 것이고, 1987년 이후의 음식은 즐기기 위해 먹는 것이라는 구분이 흥미롭다. 정치인 먹방의 시작점을 1987년으로 보는 시각도 날카롭다. 민주화 이후 정치인들이 시장을 누비며 서민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모습이 일종의 의례가 되었다. 하지만 그 먹방들을 지켜보며 느끼는 어색함은 무엇일까. 진정성의 문제일 것이다. 선거철에만 나타나는 일회성 퍼포먼스인지, 아니면 평소에도 서민들과 함께하는 진정한 소통의 한 방식인지를 국민들은 예리하게 구분해낸다. 김대중을 '정치 먹방의 원조'라고 부르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의 먹방에는 계산된 전략보다는 자연스러운 친화력이 있었다. 음식을 매개로 한 소통의 달인이었던 셈이다. 반면 어떤 정치인들의 먹방은 왜 그리 어색해 보이는 걸까. 아마도 음식 너머의 진심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음식에서 '왕의 냄새'를 맡았다는 표현이 충격적이다. 국가권력을 자기 것으로 착각한 대통령들의 음식에서 나는 그 냄새. 반면 공화국의 선출된 공무원이고자 했던 대통령의 음식에서는 보통 인간이 먹는 음식 냄새가 났다고 한다. 권력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다. 왕은 신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민이 왕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화국의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복이어야 한다. 그 차이가 식탁 위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권력자의 식탁이 국민들의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그들이 누구를 위해 밥을 먹고 있는지는 결국 그들의 정치 철학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

책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다음 대통령은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그의 식탁에는 누가 함께 앉을까. 그가 즐겨 찾는 식당은 어디일까.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의 음식에서 왕의 냄새가 날까, 아니면 평범한 인간의 냄새가 날까. 대통령의 혀는 한 개인의 취향을 넘어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그들이 선택하는 음식, 그들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 방식, 그들이 음식에 담는 메시지는 모두 정치가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권력자의 식탁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음식이 정치이고 정치가 음식이라는 명제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내 앞의 밥그릇이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더 나은 정치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모든 국민이 굶지 않고, 안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함께 나누어 먹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