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의 알프스, 로포텐을 걷다 - 하얀 밤의 한가운데서 보낸 스무날의 기록
김규호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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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곳들은 그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로포텐'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그 음성 자체가 주는 신비로움에 빠져들었다. 노르웨이 북서쪽 끝자락, 북극권에 자리한 이 작은 제도는 마치 지구가 감춰둔 비밀 같은 존재였다. 6개의 큰 섬과 무수한 작은 섬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했다. 그곳에서는 여름이면 해가 지지 않는다고 했다. 백야라는 현상, 24시간 내내 이어지는 환한 대낮을 상상해보니 일상의 시간 개념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반대로 겨울이면 오로라가 춤추는 하늘을 만날 수 있다니, 자연이 선사하는 극과 극의 체험이 그곳에서는 당연한 일상인 것이다. <바다 위의 알프스, 로포텐을 걷다>를 처음 접했을 때의 설렘을 잊을 수 없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사진들은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다. 마치 누군가 가장 완벽한 색감으로 그려낸 그림 같았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풍경이었다. 김규호 작가가 두 번에 걸쳐 경험한 로포텐의 이야기는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선 무언가였다. 학생 시절 경제적 여유 없이 떠났던 첫 번째 여행과, 시간이 흘러 다시 찾은 두 번째 여행 사이의 간격이 주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작가가 극한의 날씨를 경험하는 장면이었다. 태풍 같은 바람과 영하의 기온, 비에서 싸락눈으로 변하는 날씨 속에서 텐트 안에 웅크린 채 버티던 그 밤의 이야기는 자연과의 진정한 만남처럼 다가왔다. 그런 시련 뒤에 맞이한 맑은 날의 풍경은 더욱 특별했을 것이다. 오후 7시가 넘었지만 백야 속에서 여전히 한낮처럼 밝은 하늘, 파릇파릇한 산 뒤로 눈 덮인 봉우리들이 겹쳐진 모습, 그리고 드넓은 초원 위에 자리한 작은 집들의 평화로운 풍경까지. 모든 고생이 보상받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자연의 거칠음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곳, 그것이 바로 로포텐이었다.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여행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모험이 기다리는 곳이었다.

로포텐의 인구가 고작 2만 5천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대부분의 지역이 우리나라의 작은 리 단위 마을 같다니, 그 소박함 속에 담긴 진짜 삶의 모습이 궁금했다. 어업이 주된 생계 수단이고, 여름이면 대구가 여기저기 널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묘사에서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누스피오르 마을의 이야기는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기원전 425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그 오래된 역사, 20세기 초 황금기에는 한 번에 60만 마리 이상의 대구가 바위 절벽 곳곳에 널렸다던 풍경, 그리고 현재는 고작 20명 남짓한 주민만이 살고 있다는 현실까지. 마을 전체가 박물관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말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그곳의 정적함이 상상되었다. 세계에서 이름이 가장 짧다는 땅끝 마을 '오'도 매력적이었다. 단 한 글자로 이루어진 지명이라니, 그 간결함 속에 담긴 북유럽의 독특한 감성이 느껴졌다.

"사진은 여행의 과정과 풍경의 규모를 담아내지 못했다"에서 깊은 공감을 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진이라도 그 순간의 감동과 압도감, 그리고 그곳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망망대해에 우람하게 뻗은 산맥,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허물어진 아득한 풍경, 그리고 온몸을 에워싸는 듯한 압도감까지. 그렇기에 더욱 직접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사진으로만 봐도 이렇게 감동적인데, 실제로 그 앞에 서면 어떤 기분일까.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그 풍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을 상상하니 설렘이 멈추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막연히 동경했던 북유럽이 이렇게 구체적인 목적지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오슬로라는 도시명 정도만 알고 있던 노르웨이에 이런 환상적인 곳이 있다니, 세상에는 아직도 모르는 아름다운 곳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었다. 작가가 말했듯이 로포텐은 관광 인프라나 시설이 넉넉하지 않고, 상당한 여행 거리와 이동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조차 여행의 일부가 되어줄 것 같았다. 편리함을 포기하고 얻는 것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기대되었다. 북극권의 고요함 속에서, 백야의 신비로움 속에서, 그리고 오로라의 경이로움 속에서 일상에 묻혀 잊고 지낸 나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시의 번잡함에 지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곳을 늘 찾고 있었다. 화려한 도심보다는 고즈넉한 자연, 그리고 모험 한 조각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로포텐은 바로 그런 나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하는 곳이었다. 인구 2만 5천 명의 작은 제도에서 만날 수 있는 진정한 여유, 대구가 널린 소박한 일상, 그리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느끼는 겸손함까지. 모든 것이 일상의 무게를 덜어주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해줄 것 같았다. 아직 실제로 가보지는 못했지만, 이미 마음속으로는 수십 번도 더 로포텐을 여행했다. 책 속 사진들을 보며 상상 속으로 그곳의 바람을 맞고, 그곳의 공기를 마시고, 그곳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가리라는 다짐과 함께, 지금 당장이라도 배낭을 메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교차한다. <바다 위의 알프스, 로포텐을 걷다>는 하나의 꿈을 심어준 책이었다. 나만의 로포텐을 찾아 떠나는 그날까지, 이 설렘을 고스란히 간직해두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그곳에서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며,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을 만끽하고 싶다. 바다 위의 알프스, 로포텐이 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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