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영문법 - 전지적 원어민 시점
주지후 지음 / 드림스쿨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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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학창시절 영문법 시간을 떠올리면 암울한 기억이 먼저 스쳐 지나간다. 칠판에 빼곡히 적힌 공식 같은 규칙들,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 없이 무조건 외우라던 선생님의 목소리, 그리고 시험을 위해 기계적으로 반복했던 문제 풀이들. 영어는 살아있는 언어인데, 우리는 마치 수학 공식을 다루듯 접근해왔던 것은 아닐까. '전지적 원어민 시점 보이는 영문법'이라는 제목 자체가 주는 임팩트는 강렬했다. 과연 무엇이 '보인다'는 것일까? 그리고 원어민의 시점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이런 호기심으로 시작한 독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깊이 있는 언어학적 여행이 되었다.

이 책의 가장 놀라운 점은 영어를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독립적인 언어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영어가 게르만어족 서게르만어군에 속한다는 언어학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독일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 다른 언어들과의 연관성을 통해 영문법의 근본 원리를 설명한다. 이는 마치 고고학자가 유물의 층위를 분석해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과 같은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will'과 'be going to'의 차이를 설명할 때도 '미래를 나타내는 두 가지 표현'이라고 끝내지 않는다. 'will'이 고대 게르만어에서 '원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였다는 역사적 배경부터 시작해서, 왜 현대 영어에서 'be going to'가 더 자주 사용되는지까지, 언어의 진화 과정을 통해 그 차이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인지언어학적 관점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문법 규칙을 암기해야 할 공식으로만 보지 않고, 원어민들이 세상을 인식하고 사고하는 패턴의 반영으로 해석한다. 이는 '전지적 원어민 시점'이라는 제목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는 부분이다. 분사를 다룰 때 '현재분사'와 '과거분사'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이를 '능동분사'와 '수동분사'로 이해하는 것이 원어민의 인식과 더 부합한다고 설명한다. 용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원어민이 실제로 어떤 개념적 틀로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책은 총 1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챕터는 마치 독립된 탐험 지역처럼 고유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시제에서 시작해 도치까지, 영문법의 거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고 있지만,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챕터인 시제 부분에서부터 저자의 독창적인 관점이 드러난다. '미래라는 거짓말'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챕터는 영어에 진정한 의미의 미래시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는 한국어 화자에게는 충격적인 발견일 수 있다. 우리가 미래시제라고 배운 'will'과 'be going to'는 사실 현재의 의지나 계획을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완료 챕터에서 다루는 현재완료의 기원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다. 현재완료가 'have'라는 소유 동사에서 발전했다는 설명은 언어의 진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I have a book written"에서 "I have written a book"으로의 변화 과정을 통해, 문법이 어떻게 자연스러운 언어 사용에서 발생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관계사 챕터는 한국 학습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를 다룬다. 하지만 저자는 'that'의 독재시대에서 시작해서 다양한 관계사의 등장 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함으로써, 복잡해 보이는 관계사 체계가 실은 매우 논리적인 발전 과정을 거쳤음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언어학습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지금까지의 문법 학습은 주로 '무엇을(What)' 외워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이 책은 '왜(Why)' 그래야 하는지를 명확히 설명한다. 예를 들어, 부정사를 '인류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to + 동사원형'이라는 형태가 실제로는 전치사 'to'와 명사형 동사의 결합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밝힌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 왜 부정사가 때로는 명사처럼, 때로는 형용사나 부사처럼 쓰이는지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영어를 20여년 이상 공부해 본 입장에서 이 책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지금까지의 입시 위주 교육에서는 '정답'을 빠르게 찾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 책이 제시하는 방법론은 학습자들이 언어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특히 조동사와 가정법을 다루는 챕터에서 '시간을 달리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가정법이 단순히 '사실과 반대되는 상황을 가정할 때 사용한다'는 암기식 설명을 넘어서, 화자의 심리적 거리감과 시간 인식의 변화를 통해 이해하도록 돕는다.

책의 편집과 구성 또한 주목할 만하다. 단조로운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박스 처리와 색상 활용을 통해 중요한 내용이 자연스럽게 부각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학습자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기억에 오래 남도록 돕는 효과적인 편집 전략이다. 각 챕터 말미의 리뷰 테스트와 단어 배열 문제들은 이론적 설명을 실제 적용으로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습자가 직접 체험하며 내재화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전지적 원어민 시점'이라는 표현이 마케팅 문구만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은 책 곳곳에 등장하는 문화적 맥락에 대한 설명들이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반영한다는 것을 이 책은 여러 사례를 통해 증명한다. 관사 챕터에서 'go to hospital'과 'go to the hospital'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문법적 차이만이 아니라, 병원을 하나의 기능적 공간으로 보는 시각과 구체적인 건물로 보는 시각의 차이라는 인식론적 차이를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영어교육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그려볼 수 있다. 점수 위주의 평가에서 벗어나 진정한 언어 능력을 기르는 교육, 암기 위주의 학습에서 탈피하여 이해 기반의 학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 핵심이다. 도치 구문까지 포함하여 영문법의 고급 영역까지 다루면서도, 각각을 독립된 규칙이 아닌 언어 체계의 유기적 부분으로 설명하는 이 책의 접근법은 향후 영어교육 방법론에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보이는 영문법'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정말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여준다. 영문법이 단순히 규칙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인식이 언어로 구현된 결과물이라는 것,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깊이 있는 원리들을 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언어학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깊이 있는 언어 체험으로의 초대장과 같다. 영어를 공부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영어를 가르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문법은 더 이상 암기해야 할 부담이 아니라, 탐험해야 할 흥미로운 영역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선사하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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