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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 북 - 일본 유명 도넛 전문점의 대표 레시피와 가게 창업기
시바타쇼텐 엮음, 김유미 옮김 / 시그마북스 / 2025년 6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음식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비워둘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도넛의 가운데 뚫린 구멍을 바라보며 나는 종종 이런 생각에 잠긴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도넛은 당당히 불완전함을 드러낸다. 그 비어있음이야말로 도넛의 정체성이다. 아이들이 처음 도넛을 만날 때 그들의 눈빛을 본 적이 있는가. 반짝이는 눈으로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그 너머로 세상을 들여다본다. 어른들은 그저 달콤한 간식으로 여기지만, 아이들에게 도넛은 하나의 장난감이자 신비로운 물체다. 그 순수한 호기심 앞에서 나는 도넛이 단순한 빵이 아님을 깨닫는다. 비어있는 공간이 때로는 채워진 공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넛의 구멍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채우고 싶은 갈증,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상징한다. 그래서일까, 바쁜 일상 중에 문득 도넛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책은 이 도넛에 대해 다시 행복을 생각하게 한다.
도넛 전문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 반죽을 치대고, 발효시키고, 모양을 만들고, 기름에 지지는 모든 과정에는 기다림이 있다.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음식들 사이에서 도넛은 여전히 시간을 들여 만들어진다. 새벽 이른 시간, 베이커리에서 첫 도넛 반죽을 만드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아직 세상이 잠들어 있을 때, 그들은 이미 내일의 달콤함을 준비하고 있다. 이스트가 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동안, 케이크 도넛이 폭신한 질감을 만들어가는 동안, 시간은 맛의 일부가 된다. 급하게 먹는 도넛은 없다. 뜨거운 기름에서 갓 나온 도넛은 너무 뜨겁고, 차가운 도넛은 맛이 덜하다. 적당히 식어서 입에 넣었을 때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 온도, 그것이 도넛의 최적기다. 마치 인생의 순간들처럼 타이밍이 중요하다. 일본의 도넛 문화를 들여다보면 놀라운 것은 그 다양성이다. 전통적인 글레이즈드 도넛에서 시작해 피스타치오, 프랑부아즈, 심지어 군고구마 마스카르포네까지. 각각의 도넛은 하나의 작은 예술작품 같다. 비건 도넛, 쌀가루 도넛, 케이크 도넛, 크루아상 도넛... 이 모든 변주들이 보여주는 것은 창의력의 무한함이다. 누군가는 건강을 생각해 비건 재료로 만들고, 누군가는 전통적인 맛을 추구해 올드패션을 고집한다. 그 모든 선택들이 존중받는 곳이 도넛의 세계다. 특히 일본 특유의 섬세함이 도넛에 스며든 모습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말차 레몬, 화이트초코 얼그레이, 콩가루 라벤더... 이런 조합들을 생각해낸 사람들의 상상력이 부럽다. 그들은 도넛을 디저트가 아닌 미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창업 일지들이다. 도넛모리, SUNDAY VEGAN, HUGSY DOUGHNUT... 각각의 이름 뒤에는 누군가의 간절한 꿈이 있다. 작은 가게를 열어 사람들에게 맛있는 도넛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위대한 꿈. 창업이라는 것은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과연 사람들이 내 도넛을 좋아할까, 가게가 문을 닫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이런 걱정들을 안고도 용기 내어 시작하는 사람들. 그들의 첫 번째 손님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들의 도넛을 처음 맛본 사람은 무슨 말을 했을까. 작은 가게의 진열장에 정성스럽게 놓인 도넛들을 보면, 그 하나하나에 주인의 마음이 담겨있음을 느낀다. 대량생산된 도넛과는 다른, 손의 온기가 남아있는 도넛들. 그것이 동네 도넛 가게의 매력이다.도넛은 혼자 먹기보다 함께 먹을 때 더 맛있다. 상자에 든 여러 개의 도넛을 앞에 두고 "이거 어때?", "이것도 맛있어!" 하며 나누어 먹는 즐거움. 각자 다른 맛을 선택하고, 한 입씩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취향을 발견하는 순간들. 아침 일찍 회사에 도넛 한 상자를 들고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의 얼굴에는 동료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도넛 하나가 만들어내는 작은 행복의 연쇄반응을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카페에서 친구와 만나 도넛을 나누어 먹으며 나누는 대화들. 도넛의 달콤함이 마음을 열어주는 듯하다. 딱딱한 비즈니스 미팅도 도넛 하나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이것이 도넛의 마법이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도넛 가게에 갔던 기억이 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도넛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떤 것을 고를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가장 예쁜 것을 선택했다. 첫 한 입의 달콤함,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성인이 된 지금도 가끔 그 맛을 찾아 헤맨다. 정확히 같은 맛은 아니더라도, 그 때의 설렘을 느끼고 싶어서. 도넛에는 그런 힘이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마법. 생일날 케이크 대신 도넛 타워를 만들어준 친구가 있었다. 여러 종류의 도넛을 층층이 쌓아 만든 특별한 생일 선물. 그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정성이 감동적이었다. 촛불을 끄고 소원을 빌며 먹은 도넛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책을 읽으며 도넛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더 건강한 재료들, 더 창의적인 맛의 조합, 더 아름다운 디자인. 기술의 발전으로 3D 프린터로 만든 도넛도 나올 수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의 손으로 만든 도넛의 온기는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환경을 생각한 포장재,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재료,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맛... 도넛도 시대와 함께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사람들의 도넛에 대한 사랑이다. 언젠가 나도 나만의 도넛을 만들어보고 싶다. 어떤 맛일까, 어떤 모양일까. 그 도넛을 먹는 사람들이 행복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도넛처럼, 우리 삶의 빈 공간들도 나름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오후, 도넛 가게에 들러야겠다. 어떤 맛을 고를지 벌써부터 설렌다. 그 작은 행복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도넛 하나로 시작되는 소소한 행복,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