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권력, 미식 경제학 - 음식이 바꾼 부와 권력의 결정적 순간들
쑤친 지음, 김가경 옮김 / 이든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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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 역사를 바꾼 것은 철학자의 사유나 정치가의 웅변이 아니라, 어쩌면 배고픈 인간의 탐욕스러운 입맛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경제 시스템, 국제 무역, 심지어 산업혁명까지도 그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한다. 미식 경제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음식은 생존 수단을 넘어 권력의 상징이자 부의 원천이며, 때로는 전쟁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향신료 한 알이 대륙을 연결하고, 감자 한 알이 산업혁명을 촉발했으며, 설탕 한 스푼이 노예제도를 확산시켰다. 이것이 바로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권력 게임의 실체다. 인류 역사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던 사례들이 재미있었다.

​인류의 진화사를 다시 살펴보면,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미식선택설'을 추가해야 할지도 모른다.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인류의 직립보행은 도구 사용이나 뇌 용량 증가를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더 높은 나무 위의 달콤한 열매를 따기 위해, 더 멀리 있는 사냥감을 찾기 위해 인간은 두 발로 서게 되었다. 특히 불의 발견은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미식 혁명'이었다. 번개에 맞아 죽은 동물들이 내뿜는 전례 없는 향기에 매료된 초기 인류는 이때부터 요리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불에 익힌 고기는 소화가 용이했고, 더 많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뇌 용량 증가로 이어졌고, 결국 현생 인류로의 진화를 가속화시켰다. 농업혁명 역시 마찬가지다. 채집과 수렵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간은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곡물 재배는 잉여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계급 사회의 출현과 초기 문명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결국 먹는 것에 대한 욕구가 인간을 동물에서 문명인으로 만든 셈이다.

중세 유럽에서 후추 한 알의 가치는 때로 은화 한 닢과 맞먹었다. 이것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향신료는 당시 유럽 귀족들에게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을 뿐만 아니라, 의학적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다. 특히 성적 능력 향상과 전염병 예방 효과에 대한 믿음은 향신료에 대한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문제는 공급 구조였다. 아랍 상인들이 인도양과 홍해를 장악하며 향신료 유통을 독점했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향신료의 원산지를 숨기고 유통 경로를 복잡하게 만들어 정보 비대칭을 극대화했다. 유럽 상인들은 중간 거래업체를 거쳐 몇 배, 때로는 몇십 배의 마진을 지불해야 했다. 이러한 '향신료 디플레이션'은 유럽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금과 은이 향신료와 교환되어 동방으로 유출되면서 유럽 내 화폐 공급량이 급감했다. 이는 경제 침체로 이어졌고, 결국 유럽 각국은 향신료 직수입 경로를 찾기 위해 대항해시대를 열게 되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 모두 후추와 계피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설립은 단순한 무역회사의 탄생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의 출현을 의미했다. 향신료 무역의 엄청난 수익성과 동시에 존재하는 높은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인류는 주식회사라는 혁신적인 제도를 만들어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주식의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해진 것이다. 기존의 영국 동인도회사는 투자 회수를 위해 회사를 청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주식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를 위해 1609년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주식 거래소가 설립되었다. 이는 금융 기법의 발전을 넘어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했다. 자본의 유동성이 확보되면서 대규모 장기 투자가 가능해졌고, 이는 산업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결국 작은 향신료 씨앗 하나가 현대 자본주의의 기초를 놓은 셈이다.

16세기 남미에서 발견된 포토시 은광은 당시 세계 경제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은 함량 50%에 달하는 고순도 은광석은 스페인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전 세계적인 경제 불균형을 초래했다. 흥미롭게도 이 은의 최종 목적지는 중국이었다. 명나라는 은을 화폐로 사용했는데, 유럽인들은 중국의 비단, 차, 도자기를 사기 위해 대량의 은을 유입시켰다. 이는 중국 경제에 일시적인 번영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위험한 의존성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17세기 말부터 은 공급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포토시 광산의 생산량 감소와 함께 유럽 각국이 은 유출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중국 내 은 가격이 폭등했고, 화폐 공급량 부족으로 인한 디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농민들은 세금을 낼 은이 부족해졌고, 이는 사회 불안으로 이어져 결국 명나라 멸망의 한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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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발전사를 되돌아보면,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거시경제 이론이나 무역 정책보다 더 강력한 동력이 있었다. 바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먹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이 욕망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 구조를 바꾸고, 경제 시스템을 재편하며, 때로는 국가의 흥망성쇠까지 좌우했다. 향신료 한 알이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감자 한 알이 산업혁명을 촉발했으며, 설탕 한 스푼이 노예제도를 확산시켰다. 은 한 덩이가 명나라를 멸망시켰고, 대구 한 마리가 국제법을 바꿨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인간의 입맛에서 시작된 거대한 변화들이었다. 21세기 오늘날에도 이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생산성 변화, 대체 단백질 산업의 부상, 푸드테크의 발전은 모두 새로운 형태의 미식 경제학을 만들어가고 있다. 배양육과 식물성 대체육 산업에 쏟아지는 투자, 수직농장과 스마트팜 기술의 발전, 푸드딜리버리 플랫폼의 성장 모두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에서 시작된 경제적 혁신이다. 미래의 경제학자들은 어쩌면 21세기를 '푸드테크 혁명'의 시대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는 여전히 더 맛있고, 더 건강하고, 더 지속가능한 음식을 찾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식탁 위의 권력 게임은 계속될 것이고, 그 게임의 룰을 이해하는 자가 미래 경제의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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