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 - 창의성은 어떻게 현대사회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가
새뮤얼 W. 프랭클린 지음, 고현석 옮김 / 해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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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창의성의 시대'라고 불린다. 교육에서 비즈니스까지, 개인의 성장에서 국가 경쟁력까지, 모든 영역에서 창의성이 만능 열쇠처럼 여겨지고 있다. 창의성이라는 용어가 갑작스럽게 폭발적으로 확산된 배경에는 언어적 진화 이상의 복잡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맥락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창의성에 대한 집착이 과연 자연스러운 것일까? 사실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일상 언어로 등장한 것은 20세기 중반, 그것도 1950년대에 들어서부터의 일이다. 이는 인류 역사에서 보면 극히 최근의 현상이다. 이번에 창의성과 관련해 종합적으로 분석 설명해 주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새뮤얼 프랭클린의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였다.

창의성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1950년대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전례 없는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전후 경제 호황으로 중산층이 확대되었고, 대기업들이 급성장하면서 화이트칼라 직업군이 크게 늘어났다.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수는 급격히 증가했고, 1956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화이트칼라 노동자 수가 블루칼라 노동자 수를 넘어섰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안정 뒤에는 깊은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대기업 시스템이 개인을 영혼 없는 톱니바퀴로 만들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획일화된 교외 주택가, 표준화된 소비 패턴, 그리고 무엇보다 조직 내에서의 순응 압력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추구해온 개인주의 전통이 위기에 처했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이 시대의 지식인들과 사회 비평가들은 한목소리로 '획일성'을 현대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윌리엄 화이트는 미국 전통의 개인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고 경고했고, 데이비드 리스먼은 내면 지향적 개인이 타자 지향적 사회적 존재로 대체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우려는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공유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획일성에 대한 비판은 좌우를 막론하고 나타났다. 우파는 뉴딜 정책과 집단주의를 비난했고, 좌파는 기업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를 비판했다. 중도층 역시 획일성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위기감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했다.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이유는 그것이 기존의 어떤 용어로도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재성은 너무 배타적이고 거창했으며, 독창성은 영혼이 부족해 보였다. 상상력은 현실성이 떨어졌고, 영리함은 너무 평범했다. 반면 창의성은 정신적이면서 동시에 물질적이고, 예술적이면서 기술적이며, 비범하면서도 평범한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특히 창의성은 예술가의 이미지와 과학자의 이미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 냉전 시대에 과학 기술의 발전은 국가적 과제였지만, 동시에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도덕적 문제들도 우려의 대상이었다. 이때 예술가의 자율성과 도덕적 감수성을 과학 기술 분야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나타났고, 창의성은 이 두 영역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개념으로 기능했다. 1958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과학 혁신을 다루는 특집호 표지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종교화를 실은 것은 상징적이다. 첨단 과학 기술을 다루는 잡지가 500년 된 예술 작품을 표지로 선택한 이유는 다빈치야말로 과학과 예술의 자연스러운 통합을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다빈치는 창의성이 추구하는 이상적 인간형의 원형으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당시 과학 기술이 직면한 이미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과학 기술을 단순한 기능적 도구가 아니라 인간 상상력의 산물로 재구성함으로써, 그것이 갖는 잠재적 위험성이나 비인간적 측면을 완화할 수 있었다.

냉전 시대의 기업들, 특히 국방 관련 기업들은 창의성을 전면에 내세운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알코아의 미사일 광고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추상적이고 예술적인 이미지로 표현함으로써, 파괴적 무기를 인간 상상력의 아름다운 결과물로 재구성하려 했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무기의 위험성을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기술 개발 자체를 예술적 창조 행위로 승화시키려는 시도였다. 보는 사람의 시선을 결과물(무기)에서 과정(창조적 사고)으로 이동시킴으로써, 기술 발전의 도덕적 의미를 재구성하려 했다. 기업들은 직원 채용과 유지를 위해 창의적 환경을 강조하는 광고를 대거 게재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자사를 "창의적인 과학 인재를 가장 열렬하게 지지하는 기업"이라고 홍보했고, 제너럴 일렉트릭은 "경직된 지시", "과학적 도전이 부족한 과제", "개인 아이디어에 대한 무관심" 같은 창의성의 장애물들이 자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이는 당시 화이트칼라 직업군이 직면한 정체성 위기를 반영한다. 전문성이나 급여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았고, 개인적 표현과 자율성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었다.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창의성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창의성에 대한 현대 사회의 집착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등장한 사회적 구성물이다. 1950년대 미국의 대중사회와 냉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태어난 이 개념은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오늘날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창의성 개념의 역사적 기원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을 재검토할 기회를 제공한다. 창의성이 과연 해방적 가치인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통제 메커니즘인지, 그것이 진정한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 시스템의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는 것인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이는 창의성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다양한 사회적 압력과 기대들을 걸러내고, 진정으로 인간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창의성 신화에서 벗어나 보다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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