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 저널리즘/리얼리즘 -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저널리즘의 첫발, 20여 년 기자 경력의 현직 사회부장이 들려주는 저널리즘의 생생한 속사정
김정훈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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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골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언론과 뉴스의 역할은 갈수록 그 의미가 왜곡되고 소외되고 있는 현실이다. ICT 기술과 소프트웨어의 발전, 모바일 폰의 대중화는 정보의 생산과 소비 방식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특히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는 전통적인 언론 매체를 넘어 누구나 정보의 발신자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정보의 양과 접근성을 크게 증가시켰지만, 동시에 정보의 질과 신뢰성에 대한 우려도 증대시켰다.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건과 이슈에 대한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해야 할까? 미디어 리터러시, 즉 미디어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의 중요성이 날로 증가하는 이유다. 특히 젊은 세대는 언론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으며, 이는 언론에 대한 신뢰도 감소와 직결되고 있다. 그야말로 언론의 위기다. 언론의 위기는 담론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다. 포퓰리즘과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인해 전통적인 언론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그 결과로 뉴스는 불신과 회피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언론은 사회적 소통의 기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현재의 위기 상황은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에 현 시점에서의 우리 언론과 뉴스 생성의 진정상과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보여주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김정훈님의<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 저널리즘/리얼리즘>이었다. 직접 현장에서 뛰면 서 자신이 경험한 저널리즘과 리얼리즘에 대해 솔직한 담론이 좋았다.

2024년 12월의 그 밤을 기억한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속보가 휴대폰을 통해 전해졌을 때, 나는 먼저 언론사 웹사이트들을 뒤져보았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언론사마다 다른 온도의 헤드라인이 눈에 띄었다. 어떤 매체는 '비상계엄 선포'라는 팩트를 담담히 전했고, 어떤 곳은 '민주주의 위기'라는 해석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언론이 사실만을 전달하는 창구가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거대한 프리즘이라는 것을, 언론학자들이 말하는 ' 팩트와 해석 '의 경계선이 이토록 모호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계엄령이라는 하나의 사실 앞에서도 언론은 각기 다른 프레임을 씌웠고, 시민들은 같은 현실을 놓고도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반응했다. 보수 성향의 지인은 " 질서 회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 " 이라 했고, 진보 성향의 동료는 " 독재의 부활 " 이라 규정했다. 둘 다 같은 뉴스를 보고 내린 판단이었다.

탄핵 정국이 본격화되면서 언론의 역할은 더욱 복잡해졌다. 각 언론사의 논조는 마치 정치적 스펙트럼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선명하게 갈렸다. 같은 증거, 같은 증언을 놓고도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나는 여러 매체의 기사를 교차 검증하며 읽는 습관을 키웠지만, 그럴수록 혼란만 가중되었다. 인지 편향이라는 개념이 이토록 절실하게 다가온 때는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존 믿음을 확인해주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거부하거나 왜곡한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자들 역시 자신만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진 인간이며, 그들이 생산하는 뉴스 역시 완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이처럼 명확하게 드러난 시기는 드물었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현상을 더욱 증폭시켰다.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에코챔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의 의견만 접하게 되었다. 언론의 보도조차 이런 필터를 거쳐 소비되면서, 같은 사회에 살면서도 완전히 다른 현실 인식을 갖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리얼리즘'이란 무엇일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인가. 한 언론인이 말했듯이, '리얼리즘'이 현실의 수동적 반영이 아닌 적극적 개입이라면, 그 개입의 방향과 정도를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탄핵 과정에서 나는 언론이 직면한 근본적 딜레마를 목격했다. 객관성을 추구하면서도 공익을 실현해야 하고, 사실을 전달하면서도 맥락을 제공해야 하며, 중립성을 유지하면서도 부정의에 맞서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대통령의 헌법적 지위와 민주주의의 원칙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언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권력을 감시한다는 언론의 기본 기능과 사회 통합이라는 또 다른 역합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 균형점을 찾는 것은 각 언론사의 편집진이 내리는 주관적 판단에 달려 있었고, 그 결과는 사회의 분열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단서들이 있었다. 젊은 기자들이 새로운 형태의 저널리즘을 실험하고 있고, 팩트 체킹과 같은 검증 저널리즘이 주목받고 있으며, 시민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수준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언론인들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언론의 '리얼리즘'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이상이다.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현실을 시민들에게 충실히 전달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언론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리얼리즘이 아닐까. 2024년의 격동을 겪으며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언론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언론의 회복은 우리 모두의 노력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언론을 비판하되 건설적으로, 언론을 지지하되 맹목적이지 않게,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현명한 시민 독자가 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아직도 일선에서 저널리즘과 리얼리즘의 공정한 보도를 위해서 노력하는 기자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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