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경성 2 - 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뚫고 피어난 불멸의 예술혼 살롱 드 경성 2
김인혜 지음 / 해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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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 아침,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것은 박생광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몸무게 40킬로그램의 작은 체구로 화폭 위를 굴러가며 그림을 그렸다는 그 사나이. 후두암 판정을 받은 후에도 하루 10시간씩 붓을 잡았던 그의 마지막 몇 해가 자꾸만 머릿속에 맴돈다. 경면주사를 아끼려고 입으로 빨아서 다시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읽을 때, 나는 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졌을까. 최근 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미술에 대해 많은 전시회 관람과 서적을 읽으며 그 예술적 깊이와 의미를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 또 하나의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김인혜님의 <살롱 드 경성 2 - 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뚫고 피어난 불멸의 예술혼>이었다.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인생과 작품 그리고 그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리는 흔히 예술을 낭만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영감이 떠오르면 붓을 들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대로 캔버스에 옮기는 그런 우아한 작업이라고. 하지만 한국 근대미술사를 들여다보면 그런 낭만은 사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들에게 예술은 생존의 다른 이름이었고, 때로는 저항의 언어였으며, 무엇보다 자신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 예술가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경술국치 이후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도 고문헌을 정리하고 금석학을 연구하던 오세창. 그의 시간들은 얼마나 절절했을까. 겉으로는 한가로이 노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열심히 일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1919년 3·1운동의 한복판에 서서 2년 8개월의 옥살이를 감내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나는 자꾸만 그들의 손을 떠올리게 된다. 붓을 잡은 손, 먹을 갈던 손, 감옥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근질거렸을 손들. 그 손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들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고희동이 일본에서 석고상 앞에서 받았던 충격도 마찬가지다. "이게 무슨 색인가?"라는 일본인 교수의 질문에 단순히 "백색입니다"라고 답했던 그가, 음영법을 깨달으며 느꼈던 부끄러움. 수천 년간 지속되었던 동양화의 시각과는 철저히 다른 접근법을 받아들이면서, 그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또 얻었을까.

변관식이 평생 금강을 그리며 전국을 떠돌았던 이야기를 읽을 때면, 나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고 싶어진다. 금강처럼 고집 센 상남자가 그려낸 웅대한 한국의 산들. 그가 화폭에 담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산의 형태가 아니라, 그 산이 품고 있는 우리의 정신이었을 것이다. 전혁림의 이야기는 더욱 절절하다. 가장 가난했던 화가가 그려낸 가장 찬란한 보물들. 통영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평생을 보내며, 그는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지역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낸 그의 의지력을 생각하면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원계홍. 2023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탄생 100주년 전시가 MZ세대들에게 입소문을 타고 대성황을 이루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묘한 전율을 느꼈다. 100여 년 전에 태어나 전쟁과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화가의 정신세계가 우리 세대에게도 통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힘이 아닐까. 남관의 파리 생활을 떠올리면 복잡한 감정이 든다. <살롱 드 메>에 초청되고, 유럽 유수의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마침내 1966년 프랑스 망통 <국제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기까지. 외국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이면에는 "지독한 외로움"이 있었다. "나는 할 일을 하고 돌아왔다"던 그의 말 속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압축되어 있었을까. 이응노의 삶은 더욱 극적이다. 동백림 사건으로 법정에 서서 "우리 모두 같은 민족 아닙니까?"를 외치며 꺼이꺼이 울었던 그.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을 때 허무하게 웃었던 그. 울고 웃던 그의 모든 순간들이 사진으로 찍혀 시대의 기록으로 남았다. 그런 질곡의 삶 끝에 그가 그린 것은 '공생'이었다는 것이 더욱 가슴을 울린다.

천경자의 1960년대 작품들을 생각하면, 나는 항상 어떤 떨림을 느낀다. 불안과 행복이 뒤엉킨 상태에서 그려진 그 그림들의 독창적인 아름다움. "여성적 감수성"이 솔직하게 표현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작품들. 연약함, 불안감, 헛된 희망 같은 것들이 본격적인 주제로 등장했던 것은 얼마나 혁명적인 일이었을까. "절망을 여행한 뒤 화가는 자신의 22페이지를 펼쳤다"는 표현이 마음에 깊이 남는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22페이지가 있을 것이다. 절망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펼쳐지는 자신만의 페이지들. 천경자는 그 페이지들을 마르크 샤갈 못지않은 환상적인 작품으로 채워냈다. 유강열의 마지막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죽기 하루 전날 밤, 신촌 길거리에서 제자와 우연히 만나 나눈 대화. "너는 열심히 해서 작가가 돼라.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다"라는 격려의 말을 남기면서, 스스로 "나도 이제는 작품을 하려고 한다"고 되뇌었다는 그. 56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마음에 품고 있었을까. 이건희 컬렉션에만 70여 점의 작품이 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유강열은 다재다능했던 한국 공예의 개척자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작품을 할 시간은 늘 미뤄두고 살았던 것이 아닐까. 그런 그가 마지막 밤에 "나도 이제는 작품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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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감동도 바로 그것이었다. 어떤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던 화가들의 삶. 그 사랑이 모여서 오늘 우리가 볼 수 있는 작품들이 탄생했다. 근대미술관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현실을 한탄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나는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리라고 믿는다. 그 믿음의 근거 역시 사랑이다. 사람들의 애정이 모이면 힘이 되고, 그 힘이 무언가를 움직이고 가공할 것이다. 오늘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붓을 들고 있을 것이다. 그 손이 떨리더라도, 그 마음이 불안하더라도, 붓끝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결국 사랑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예술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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