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전 시집 : 진달래꽃, 초혼 - 한글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
김소월 지음 / 스타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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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장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진달래꽃>을 꺼내드는 순간,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했다. 표지에 새겨진 '김소월'이라는 세 글자가 내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렸다. 그 이름을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국어시간이 떠올랐다. 선생님의 낭독 소리에 교실 전체가 숨을 죽였던 그 순간들, 칠판에 적힌 시구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100년 전 출간된 시집이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650종이 넘게 출간되었다는데, 한 시인의 작품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는지를 보여주는 증명서였다. 나 역시 그 수많은 독자 중 하나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의 시어 앞에서 가슴이 뛰는 사람 중 하나였다.

중학교 3학년 봄이었을까. 담임선생님이 <진달래꽃>을 낭독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나 보기를 돌같이 하라"로 시작하는 그 시구가 교실을 가득 채웠을 때, 나는 처음으로 시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글자들의 나열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어떤 진동 같은 것. 그것이 바로 소월의 힘이었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그 절절함과 아름다움은 어린 내게 충격이었다. 이별의 아픔을 이토록 우아하게, 이토록 애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때부터 나는 소월의 시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등하교길에, 잠들기 전에, 혼자 있는 시간마다 그의 시구들을 되뇌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초혼>을 배울 때는 더욱 깊은 감동을 받았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라는 외침에서 느껴지는 그 절망과 간절함이 사춘기 소년의 마음에 강렬하게 박혔다. 비록 연인을 잃은 아픔은 아직 모르는 나이였지만, 그 절절한 부름 속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그리움을 엿볼 수 있었다.

대학 시절, 나는 항상 가방 속에 소월의 시집을 넣고 다녔다. 도서관에서 공부에 지칠 때면 몰래 시집을 꺼내 읽었다. 특히 시험 기간의 스트레스로 마음이 답답할 때, 소월의 시는 내게 위로가 되었다.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같은 시를 읽으며 인생의 덧없음과 동시에 그 안에서 찾아야 할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첫사랑을 했을 때도, 그 사랑이 끝났을 때도 소월의 시가 곁에 있었다. "님에게"를 읽으며 사랑의 아픔을 달랬고, "꿈으로 오는 한 사람"에서 그리움의 본질을 배웠다. 소월의 사랑 시들은 단순히 로맨틱한 감정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외로움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군대에서도 소월의 시집을 들고 갔다. 훈련소에서는 가져갈 수 없었지만, 부대에 배치된 후에는 늘 침대 맡에 두고 읽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소월의 시어로 달랬다. "엄마야 누나야"를 읽으며 고향의 푸근함을 떠올리고, "개여울"에서 고향 강물의 소리를 들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바쁘게 살다 보니 시를 읽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소월의 시집도 책장 깊숙한 곳으로 밀려났다. 그러다 이번에 김소월 전 시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그의 시를 다시 읽게 되었다. 40대가 된 지금 읽는 소월의 시는 20대에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울림을 주었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어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라는 구절에서 젊음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불운에 우는 그대여"에서 인생의 고난을 견뎌내야 하는 성인의 무게를 느꼈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읽는 "엄마야 누나야"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이제는 불러지는 입장이 아니라 불리는 입장에서 그 시를 읽게 되었다. 아이의 목소리에서 소월이 그려낸 그 순수하고 애틋한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월의 시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받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의 시에는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 감정이 담겨 있다. 사랑과 이별, 그리움과 아픔, 희망과 절망. 이런 감정들은 일제강점기에도, 현재에도 변하지 않는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애모"에서 느껴지는 간절한 기다림은 오늘날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에서 노래하는 그림자 같은 벗에 대한 그리움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100년의 시간차를 뛰어넘어 소월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소월의 언어가 주는 음악성도 빼놓을 수 없다.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이나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같은 표현들은 소리 내어 읽을 때 그 진정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우리말의 음성적 특성을 완벽하게 살린 이런 시어들은 읽는 이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소월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그가 얼마나 우리말을 사랑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답게 우리말을 구사했는지 하는 점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우리말로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써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저항이었을 것이다. "님과 벗"에서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라고 노래할 때, 그 간결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담은 표현에 감탄하게 된다. 복잡한 감정을 이처럼 단순하고 아름다운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또한 소월이 번역한 중국 고전 시들을 읽어보니, 그가 단순히 문자를 옮긴 것이 아니라 원작의 정신을 우리말의 정서로 완전히 재창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창작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두보나 이백의 시가 소월의 손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우리 시로 탄생한 것이다.

바쁜 일상에 지쳐 메마른 감성으로 살아가던 내게 소월의 시는 다시 한 번 위로가 되었다. 특히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소월의 시에서 더욱 깊은 위안을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시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와 희망이 담겨 있다. "봄"이라는 시에서 "이 나라 나라는 부서졌는데 이 산천 여태 산천은 남아 있더냐"라고 노래할 때,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자연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다.


김소월 전 시집을 다 읽고 나니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소월은 나에게 영원한 청춘의 시인이라는 것이다. 중학생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시인이라는 확신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좋아하는 음악도, 즐겨 보는 영화도, 관심사도 모두 달라졌다. 하지만 소월의 시만큼은 변함없이 내 마음을 움직인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내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소월의 시를 함께 읽고 싶다. 내가 그랬듯이 아이도 소월의 시어에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감정들을 배웠으면 좋겠다. 요즘 아이들은 영상 세대라고 한다. 빠르게 변하는 이미지들에 익숙해져 있어서 시 같은 정적인 문학에는 관심이 적다고 한다. 하지만 소월의 시는 다를 것이라고 믿는다. 진정한 아름다움과 진실은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김소월 전 시집 출간 100주년을 맞아 다시 읽은 그의 시들은 내게 청춘을 되돌려 주었다. 나이 든다는 것이 반드시 메마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좋은 시 한 편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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