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틈이다
차이유린 지음, 김경숙 옮김 / 밀리언서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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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거대한 다리를 지을 때 건축가들은 의도적으로 틈을 만든다. 이 틈은 다리가 온도 변화로 팽창하고 수축할 때 필요한 여유 공간이 된다. 틈이 없다면, 다리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균열이 생기고 결국 무너질 것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틈을 두지 않은 관계는 압박과 기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균열이 생기며 결국 파괴된다. 우리는 종종 관계에서 '가까움'을 미덕으로 여긴다. 거리가 생기면 불안해하고, 틈을 메우려 애쓴다. 하지만 진정한 관계의 기술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틈을 만드는 데 있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숨 쉴 수 있는 여백이 있을 때 비로소 관계는 단단해진다.

관계의 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기란 불가능하다. 노자의 말처럼 "타인을 아는 것은 지혜요, 자신을 아는 것은 밝음이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때로 고통스럽고 불편하지만, 이 과정을 회피하면 결국 반복되는 관계의 패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나는 오랫동안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았다. 거절하지 못하고, 늘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타인의 기대만 충족시키려 했다는 것을. 이는 결국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고, 관계 속에서도 진정한 나를 보여주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내 의견과 감정을 인정하고,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할 때 비로소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을 속이며 맺는 관계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인간의 본능은 소중한 것을 단단히 붙잡으려 한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가까이, 더 단단히 붙잡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기에 관계의 역설이 있다. 붙잡으려 할수록 오히려 관계는 멀어진다. 사랑의 감정도 계산의 대상이 되곤 한다. 내가 얼마나 주었고, 상대는 얼마나 받았는지 저울질하게 된다. "나는 이만큼 노력했는데, 너는 왜 그만큼 하지 않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이미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진정한 관계의 기술은 '놓아버림'에 있다. 상대를 소유하거나 통제하려는 욕구를 내려놓을 때, 역설적으로 관계는 더 단단해진다. 상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적절한 거리와 공간을 허용할 때 비로소 건강한 관계가 형성된다. 적절한 틈, 즉 각자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할 때 오히려 만남의 순간은 더 풍요로워진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때로는 말이 필요 없어진다. 함께 침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관계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불편해하고, 그 공백을 채우려 애쓴다. 관계 속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소통이다. 모든 순간을 대화로 채우지 않아도,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침묵의 틈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것 역시 관계의 기술이다. 사회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 동료나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모든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는 부담감, 항상 연락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은 오히려 관계를 피곤하게 만든다. 때로는 거리를 두고, 다시 만났을 때 더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장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관계 속에서 상처는 불가피하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서로 다른 두 인간이 모든 순간 완벽하게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는 종종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 완전히 단절하거나, 혹은 상처를 무시하고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진정한 관계의 성숙은 상처를 통해 오히려 더 깊어질 수 있다. 상처는 관계의 틈을 만들지만, 이 틈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관계의 질이 결정된다. 상처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서로의 감정을 인정하며, 함께 해결책 을 모색할 때 관계는 더 단단해진다. 물론 모든 관계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건강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틈'을 통한 성찰과 결정이어야 한다. 충동적인 단절이 아니라, 충분한 성 찰과 대화를 통한 결정이어야 진정한 치유와 성장이 가능하다.

관계의 틈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다. 외부 관계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종종 자신을 돌보는 것을 잊게 된다. 일에 파묻혀 지내다 보면 중요한 관계들이 소원해지고, 때로는 자신의 건강과 행복까지 희생하게 된다. 진정한 관계의 기술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스스로에게 충분한 휴식과 여백을 허용하고,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 자신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과의 관계는 결핍과 의존으로 이어지기 쉽다. 자기돌봄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건강한 관계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내 잔이 채워져 있을 때, 비로소 타인에게도 진정한 사랑과 배려를 베풀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울 때,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한 사랑과 존중이 가능해진다.

관계는 틈이다. 이 역설적인 명제는 우리 삶의 많은 영역에 적용된다. 틈이 있어야 숨을 쉴 수 있고, 틈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으며, 틈이 있어야 진정한 만남이 가능하다. 단단한 나로 서기 위해서는 자신을 알고, 자신의 감정과 필요를 인정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진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변화하기에 완벽한 타이밍이란 없다. 중요한 건 용기를 내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스스로를 굳게 믿는 것이다. 관계의 틈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틈은 실패나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연결과 이해를 위한 필요한 공간이다. 틈을 통해 우리는 숨쉬고, 성찰하며, 더 진정한 모습으로 서로를 만날 수 있다. 애써 붙잡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관계,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관계의 모습이다.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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