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 건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외 기획, 이은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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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빌딩들, 우리가 다니는 도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공간은 누군가의 손으로 지어졌다. 그 손은 이름 없는 건설 노동자들의 것이다. '노가다'라는 비하적 표현으로 불리며 사회의 주변부에 머물러 온 이들의 삶과 투쟁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세상의 기반을 닦는 이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두려워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가다'라는 말은 건설 노동자를 뜻하는 일본어에서 비롯되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비하의 의미가 크게 자리 잡았다. 이 용어는 '인생 막장'이나 '거칠고 험한 일'이라는 부정적 선입견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건설 노동자들의 전문성과 기술을 평가절하하고, 그들의 노동이 갖는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건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을 '노가다'가 아닌 '건설 노동'으로 불러주길 바란다. 이는 호칭의 문제가 아니라 존중과 인정의 문제다. 그들의 노동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향한 경멸적 시선을 당연시했다. 이러한 인식의 왜곡은 건설 노동자들의 권리 투쟁을 더욱 어렵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건설 산업의 구조는 본질적으로 착취적이다. 원청사에서 시공사로, 다시 크고 작은 건설업체들로, 그 밑에 각 공정별 팀장들로 이어지는 하도급 구조는 결국 노동자들의 임금을 갉아먹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갈등하고 싸우며, 불법 재하도급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한 이런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건설 현장은 위험의 연속이다.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가장 많은 업종이 바로 건설업이다. 노동자들은 "현장이 안전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며 "개인의 부주의 탓이 아니라 공사비가 올라가다 보니 안전 관리비에 들이는 돈이 줄었고, 공기 단축으로 이익을 남기려고 서두르다 사고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임금 체불 문제는 수십 년 동안 건설 현장의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 잡았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9~2023년 건설업계 임금 체불 규모는 약 1조 5850억 원, 임금 체불 피해자는 40만 2584명에 이른다. 한 노동자는 "이 일 하면서 한 번도 체불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건설 노동자들은 값싼 노임에도 감지덕지해야 했고,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견디며 주말도 없이 일해야 했다. 일이 있다면 어디든 집과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고, 체불된 임금의 반쪽이라도 받으면 오히려 감사해야 했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2007년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탄생했다. 건설노조는 정부도 바꾸지 못한 부당한 노동 여건과 현장 곳곳에 만연한 부조리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임금 체불과 단가 후려치기 등을 단결된 투쟁으로 막아내고, 하청에 하청으로 이어지는 임금 착취 구조 속에서도 단체 교섭을 통해 정당한 대가를 얻고자 노력했다. 한 노동자는 "무엇보다 근무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며 "8시간 외에 추가로 일하는 부분은 수당으로 받을 수 있고, 노조는 일자리 창출도 많이 했으며, 건설사 갑질도 줄었다"고 증언한다. 노조의 활동은 현장의 안전도 향상시켰다. 3~4톤 되는 호퍼 작업은 매우 위험한데, CPB(콘크리트 펌프카)를 도입하면 이 위험한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노조의 요구로 22곳의 현장에서 CPB 도입이 이루어졌다. 복지 측면에서도 "50분 일하면 10분은 쉴 수 있고, 점심시간이랑 간식 시간도 생겼다"는 증언처럼 노동 환경이 개선되었다. 건설 노동자에게 노조 활동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투쟁이었고, 노동조합은 스스로 인간임을 선언한 건설 노동자의 자부심이었다. 한 노조원은 "임금 체불 줄이고 유급 휴일수당까지 만들면서 젊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며 "사랑하는 이 일을 누군가 이어서 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노조 활동을 했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안위보다 가족과 친지들 걱정이 앞섰다. 한 노동자는 소환장을 받은 후 아내와 자녀들이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자신과 아들이 같은 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된 상황을 말하며 "한 방에서는 아비가, 옆방에서 아들이 조사받는 게 말이 되냐"고 울분을 토했다. 가족들의 시선 또한 건설 노동자들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가족들은 제 노조 활동을 안 좋게 생각했거든요. 형들이 빨갱이 아니냐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3년 정도 인연을 끊고 살기도 했어요." 그러나 구속된 후 면회를 온 형이 "너만 당당하면 됐다"며 위로하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줬다. 여성 건설 노동자들은 이중적인 차별에 맞서야 했다. "초보라 속도를 못 따라가니 사장한테도 많이 혼났죠. 집에서 밥이나 하지 뭐 하러 왔느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노래방 도우미나 하지 이런 거 왜 하냐고 말하는 사장도 있었죠." 이주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은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운 일을 맡아서 하고 있어요. 한국말이 익숙지 않다 보니까 많이 당해요."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로 인해 정작 이주 노동자들은 일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했다.

건설 노동자들이 짓는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그들은 피와 땀과 눈물로 삶의 희망을 이어간다. 이들의 노동이 없다면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공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이들의 노동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노가다'라는 비하적인 용어로 부르며 그들의 존엄을 훼손해 왔다. 건설 노동자들은 정당한 대가를 받을 권리, 안전하게 일할 환경을 요구했을 뿐이다. 그것이 어떻게 '공갈'과 '협박'이 될 수 있는가? 그들의 요구가 '폭력'이 될 수 있는가? 이 땅의 건설 노동자들은 여전히 투쟁 중이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이 인정받고, 노동의 대가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며, 가족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싶다는 지극히 당연한 소망을 품고 있다. 조금은 무거운 주제지만 사회의 일원으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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