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의심하라, 그 끝에 답이 있다 - 데카르트편 세계철학전집 1
르네 데카르트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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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데카르트를 다시 꺼내든 이유는 철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복잡한 삶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마다, 나는 과연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 어떤 기준 위에서 내 생각을 세울 수 있는가를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질문은 데카르트가 던진 오래된 질문과 마주했다. "우리는 무엇을 의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의심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이번에 그의 철학에 대해 조금은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일단 의심하라, 그 끝에 답이 있다>였다. <병법서설>로 익히 알고 있었던 데카르트의 사상에 좀더 다가가고 싶다.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묻곤 한다. 나는 누구이며, 왜 살아가고 있으며, 이 삶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 질문들은 때때로 두려움으로, 때로는 깊은 고독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러한 고요하고 불안한 물음 속에서 만난 철학자가 있었다. 르네 데카르트,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 사상가는 나에게 ‘생각하는 나’를 다시금 바라보게 해주었다. 그의 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문장이지만, 그것은 단 하나의 의심할 수 없는 진리로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말이 되었다. 의심을 밀고 밀어 결국 도달한 이 한 줄은, 세상의 모든 불확실함 속에서 내가 붙들 수 있는 하나의 닻이 되었고, 그 닻을 통해 나는 내 존재를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데카르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되, 스스로 의심하는 주체는 남겨두었다. 그것이 바로 생각하는 나 자신, 즉 존재의 확신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진정한 자유를 처음 마주했다. 그 누구의 말도, 그 어떤 기준도 아닌, 내가 사유하고 의심함으로써 내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자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철학을 시작했다. 믿어왔던 세계, 지각, 감정, 심지어 수학적 진리마저도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급진적인 회의의 끝에서 그가 붙잡은 단 하나의 진실은 바로, "의심하고 있는 나, 곧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외부의 어떤 것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 안에서 발견한 확실성이었다. 나는 이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세상이 얼마나 흔들리든, 타인의 말이 얼마나 혼란을 일으키든, 내 안에서 생각하는 내가 있다는 이 단단한 출발점. 어쩌면 그것이 진짜 철학의 힘인지도 모른다. 지식을 쌓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혼란한 세계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한 나침반. 데카르트는 이성과 합리성으로 그 나침반을 세웠고, 나는 오늘 그 방향을 다시 들여다본다.

의심은 불안을 낳지만, 동시에 성찰을 낳는다. 데카르트가 제안한 방법적 회의는 회의주의가 아니다. 그는 의심을 파괴가 아닌 재건의 도구로 사용했다. 어쩌면 우리 삶 속의 모든 불안과 혼란 역시도 그런 식으로 새로운 나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때로 내가 쓸모없다고 느끼고, 감정에 휘둘리며, 선택 앞에서 길을 잃는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말한다. 감정은 억눌러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것이며, 진정한 평온은 감정 위에 세워진다고. 생각의 힘이 삶을 분명하게 만든다고.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거울을 통해 이성을 비추고 다시 삶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사유일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성적인 사고에 필요한 네 가지 원칙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단지 논리적인 절차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내면의 태도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 나는 나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할 존재였다. 왜 나는 늘 생각이 많을까. 나는 왜 이렇게 자주 흔들릴까. 데카르트는 이 질문들을 나 자신에게 정직하게 던지는 것에서부터 삶의 방향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나를 속이는 것은 때로 나 자신이었고, 타인의 시선이었다. 타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데카르트는 타인의 인정이나 평가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더 깊은 시선을 두라고 말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결국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오해는 우리의 판단과 감정의 뒤엉킴에서 비롯된다. 미움받을 용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경계를 세우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그것은 이성의 힘으로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며, 동시에 나를 진실하게 바라보는 용기이기도 하다.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고, 우리는 늘 기준 앞에 서게 된다. 데카르트는 말한다. 세상을 정복하려 하기보다는, 먼저 나 자신을 정복하라고. 이 말은 나를 부끄럽게 하면서도 다시 일으켜 세운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새로운 질문도 할 수 없으며, 삶은 같은 곳을 계속 맴돌 뿐이다. 그는 도덕과 윤리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말한다. 실천적 지혜란 단지 앎이 아니라 살아내는 방식이며, 그것은 곧 선택의 기준이 된다. 그 기준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 타인의 기준에 휩쓸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종종 확신 없이 나아갈 수밖에 없는 순간들 앞에서 주저하지만, 데카르트는 그런 나에게 말한다. 확신이 없어도 나아가야 할 때가 있으며, 그때야말로 삶의 진짜 용기가 발휘되는 순간이라고. 그리고 나는 다시 고독을 떠올린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혼자가 되는 경험, 그것은 내가 나를 가장 깊이 만나는 시간이었다. 데카르트의 철학도 깊은 고독 속에서 피어났다. 혼자 견뎌야 했던 사유의 시간은, 그에게 진리를 향한 길을 열어주었고, 우리에게는 혼자 있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남겨주었다. 멈춤을 기회로 삼으라는 그의 말처럼, 나 또한 멈춘 시간 속에서 나의 감정, 나의 존재, 나의 삶을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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