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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의 탄생 대한제국
서영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5년 3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미는 13년의 짧은 기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제국은 근대화의 과정을 겪으며,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시도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외적인 모습의 변화뿐만 아니라, 국민의식과 정체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고종 황제의 커피 사랑이나 덕혜옹주의 일본 유학 등은 대한제국의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삶과 국가의 운명이 얽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간판만 바꿔 단' 조선왕조로 기억되고 있다. 이는 대한제국의 역사적 맥락과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대한제국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그 속에서 현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번에 대한제국과 우리나라의 탄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역사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서영희님의 <근대 한국의 탄생 대한제국>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역사란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해 본다. 대학 때 읽은 E.H. 카(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생각 난다. E.H. 카의<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학의 본질과 역사 연구의 방법론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한 책으로, 역사학계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카는 역사를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역사가의 해석과 선택이 개입된 것으로 본다. 그는 역사적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가가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주장하며,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역사가의 주관적 견해가 역사를 해석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만, 동시에 역사가들은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역사는 사실의 선택과 해석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 지며, 에 따르면, 역사는 항상 해석의 여지가 있으며,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게 때문에 같은 역사적 사실이라도 시대적 변화와 시기에 따라서 그 해석이 달라진 것이다.
대한제국은 근대 한국의 출발을 알리는 장엄한 서곡이었다. 조선의 유구한 전통 위에서, 그러나 조선이었던 과거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이 짧은 제국의 꿈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근대적 국가 형성의 기원을 담고 있었다. 대한제국의 성립은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조선이 중국의 번속국이 아니라 대등한 주권국가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선언한 사건이었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던 날의 하늘은 어땠을까. 환구단에 울려 퍼진 의식의 소리 속에서, 황금빛의 장엄한 의장물 사이로 선 고종의 마음속에는 어떤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했을까. 대한제국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질서를 거부하며 근대적인 만국공법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도전이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이 제국을 선포한 것처럼, 대한제국 역시 ‘황제국’을 자처하며 조선이 지나온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려 했다. 이는 지난 수백 년간 지속된 외교적 관계와 국가 운영 방식에서의 본질적인 변혁을 의미했다.
국호 ‘대한’의 선택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했다. ‘조선’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중국이 하사한 명칭이었고, 이는 명·청과의 외교 질서 속에서 조선이 자리했던 위치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며 새로운 이름을 내세웠다. 이는 외교적이고 법적인 선언인 동시에, 한국인이 더 이상 기존의 세계 질서에 머물기를 거부한다는 결단이었다. 대한제국이 출범한 순간, 한국은 단순히 조선의 연장이 아니라, 근대적 주권국가로 나아가려는 몸짓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한성이 전통과 단절한 공간이었을까. 독일인 궁중 의전관 엠마 크뢰벨이 바라본 한성은 전통과 근대가 격렬하게 충돌하는 공간이었다. 거리에는 전깃불이 켜졌고, 전화선이 연결되었으며, 전차가 다녔다. 그러나 동시에 한성 곳곳에는 여전히 조선의 유교적 관습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근대 문명의 첨단과 전통적인 생활 방식이 한 공간에서 부딪히며, 대한제국의 짧은 시간 동안 한국인들은 이 변화를 온몸으로 겪었다. 대한제국은 국가 체제만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 자체를 변화시키는 시기였다.
대한제국의 황제정은 역설적이었다. 그들이 쫓던 것은 서구의 근대적 국가 체제였으나, 고종과 황실이 선택한 모습은 여전히 전통적인 군주제의 위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환구단에서의 황제 즉위식, 서구식 연회 문화의 도입, 화려한 황금빛 장식물들은 동양적 황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하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처한 현실은 서구의 열강들이 지배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자주와 독립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였다. 황제정은 근대 국가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지만, 그 내부는 여전히 조선의 질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이 대한제국의 가장 큰 한계이자, 그 운명을 가른 지점이었다. 그러나 대한제국이 남긴 흔적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3.1운동에서 대한제국의 유산은 다시 깨어났고, 독립운동가들은 ‘대한민국’을 수립하며 그 기억을 이어갔다.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나는 대한국인이다’라고 외친 순간, 대한제국은 단순한 과거의 나라가 아니라, 근대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뿌리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태극기를 보며 대한민국을 떠올릴 때, 그것이 대한제국 시기부터 국가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한제국의 짧은 역사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 유산은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는 이 역사를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대한제국이 이루려 했던 근대 국가의 꿈은 완전히 좌절되었지만, 그 꿈의 불씨는 이후 대한민국 건국과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그렇기에 대한제국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탐구가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되새기는 과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