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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 나이듦과 죽음에 관한 로마인의 지혜
피터 존스 지음, 홍정인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Antoine Wiertz의 작품 중, Two Young Girls 또는 The Beautiful Rosine을 좋아한다. 이 작품은 1847년에 그린 그의 작품 중 하나로, 아름다운 누드 여성과 해골이 마주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골은 의학생이나 예술가들이 사용했을 수 있는 것으로, 두개골에서 철사로 매달려 있다. 해골의 발 아래에는 돌로 만든 머리와 발이 몇 개 놓여 있으며. 두개골에 붙어 있는 라벨에는 "La Belle Rosine"이라고 적혀 있다. 반대편에 서 있는 누드 여성은 머리에 화환을 쓰고 있고, 그녀의 눈은 해골의 빈 눈동자를 향해 올려다보고 있다. 그녀의 생각에 잠긴 표정은 그녀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녀의 왼손에는 옷을 느슨하게 잡고 있는데, 이는 아름다움과 삶의 일시성을 고민하도록 초대하는 죽음과 죽음에 관한 그림이다. 모멘토 모리의 또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유한하며, 이 유한함은 우리 존재의 근본적인 진리 중 하나이다. "Memento Mori"는 이러한 진리를 상기시키며, 우리가 죽음을 잊지 않고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성찰하게 만든다. 고대 로마인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그들은 죽음과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삶의 덧없음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고자 했다. 오늘날 우리는 의학의 발전과 함께 평균 수명이 크게 늘어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노화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힌다. 로마 시대 사람들은 죽음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그들은 세네카, 키케로, 플루타르코스와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 노년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었고, 이러한 사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저자가 이야기 해 주는 고대 로마인들이 어떻게 죽음과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고대 로마인들은 생의 유한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는 그들의 철학과 문화 전반에 걸쳐 뚜렷하게 드러난다. '메멘토 모리'라는 개념은 이러한 인식의 핵심을 이루며,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로마 사회에서 사람들은 짧은 생애 속에서 최대한의 성취를 이루고자 했다. 젊은 시절부터 사회에 진출하고, 권력을 쥐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그들이 죽음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지배층은 젊은이들이 빠르게 성공할 수 있도록 체제를 설계했으며, 이는 그들이 생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키케로와 같은 인물은 자식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감추려 했지만, 결국 그 슬픔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그는 사회가 요구하는 강인함과는 반대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표현했다.고대 로마인들은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메멘토 모리'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로마의 철학자들은 죽음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통해 삶의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들의 철학, 문학, 그리고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세네카와 같은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살을 상황에 따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신체가 더 이상 기능하지 않을 때, 영혼을 해방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고통스러운 삶을 지속하는 것보다 조기에 생을 마감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관점이다. 어떻게 보면, 현대의 존엄사 논쟁과도 연결되며, 개인의 선택과 권리에 대한 논의에 대한 화두다. 로마인들은 죽음을 종말이 아니라, 삶의 연속선상에서 중요한 선택으로 여겼다. 로마 사회에서는 자살을 통해 명예를 지키는 사례도 많았다. 소크라테스, 소 카토, 페트로니우스와 같은 인물들은 자신의 신념이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특히 페트로니우스는 네로 황제의 압박 속에서 자결하며, 자신의 유언장을 통해 황제의 부도덕함을 폭로했다. 로마인들은 죽음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삼았다.고대 로마인들은 죽음으로 삶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 형태로 이행하거나 전환된다고 생각했고, 무덤과 장례의식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또 이들은 산자가 계속 기억해 준다면 망자는 영원히 산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가족 뿐만 아니라 행인들이 죽은 이의 이름을 읽고 새겨진 형상을 보고 그를 기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서, 무덤의 위치를 길에서 가깝게 하고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도록 호화롭게 꾸몄다. 유골함과 석관에도 글과 이미지를 새겨 죽은 이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로마의 장례 문화와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도 '메멘토 모리'의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로마 귀족들은 상속 문제로 인해 자식 수를 제한하려 했고, 이는 유산 사냥꾼과 같은 사회적 현상을 낳았다. 또한, 장례식 비용이 증가하면서 상조회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조직이 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죽음을 둘러싼 로마 사회의 복잡한 구조를 반영하며, 죽음이 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고대 로마인들은 죽음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키케로는 노년의 죽음을 여행의 끝으로 비유하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삶의 덧없음을 강조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삶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갈지를 고민했다. 로마인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더욱 품위 있는 삶을 추구한 것이다.우리는 매일매일의 소중함을 깨닫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