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주술에 빠졌나? - 풍수학자 김두규 교수가 파헤친 한반도 천년 주술 전쟁
김두규 지음 / 해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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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혁신적인 기술들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미신과 주술이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흥미이나 취미에 그치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에서는 주술과 관련된 논쟁이 뜨겁게 일어났다. 이는 단순히 개인이 점을 보거나 주술을 의지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의 운영과 통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비화되었다. 20대 대통령 선거 이후 불거진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은 주술적 요소가 개입되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며 합리적 판단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상황은 한반도 역사 속에서 정치 권력과 주술의 결탁이 얼마나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런 측면에서 풍수와 미신, 주술과 관련된 역사적 고찰과 과학적인 분석은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 줄 것이다. 특히,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 무속 관련 콘텐츠가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주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호기심을 넘어,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 사회에서 미신과 주술이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실은 비판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비합리적인 믿음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개인의 삶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에 우리의 역사속에서의 역사적 사실들과 현대 사회에서 미신과 주술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탐구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김두규님의 <그들은 왜 주술에 빠졌나?>였다. 미신과 주술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아쉬웠는데, 관련해서 좋은 책을 볼 수 있었다.

인류 역사에서 미신과 주술은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믿음은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대처 방안을 제공해왔다. 특히, 권력과의 결탁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주술은 역사적으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주술과 권력의 관계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살펴보고, 현대 사회에서 미신과 주술이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논의하고 있다. 주술의 기원은 고대 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말의 승려 도선은 한국 풍수의 비조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비보술은 권력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비보술은 지형지세를 점쳐 길흉을 정하고, 주술적 목적을 위해 궁궐과 정자 신축, 비보 사탑 조성 등을 통해 병든 땅을 다스리는 밀교의 택지법이다. 이는 풍수와는 구별되며, 권력자들의 욕망과 필요에 의해 형성된 주술적 관행으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비보술은 도참사상과 결합하여 권력자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주술적 관행은 권력자들이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고,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유교가 국교로 자리 잡으면서 비보술의 존재감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권력자들은 주술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광해군과 고종, 명성왕후의 사례는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먼저 하버마스의 반론과 현대 사회의 주술적 요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위르겐하버마스는 현대 사회가 탈주술화 되었다는 베버의 주장을 반박하며, 오히려 현대 사회가 종교적 믿음의 유령에 쫓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탈마법화와 재마법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으며, 현대 사회는 과거의 주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형태의 주술에 지배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주술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스스로 만들어낸 불행한 의식의 결과로 간주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고려 시대의 비보술이 폐기되고 풍수술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조선 태종 때부터 시작되며, 세종, 세조, 성종 등도 풍수에 관심을 기울였다. 성종 16년(1485년)에는 비보술이 잠깐 등장하지만 곧 폐기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의 전통사상에 대한 무시와 무식이 결합된 결과로, 무속인들이 그 틈을 파고들어 비보술을 부활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몇년 전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었던대선 후보들이 비보술을 믿는 것은 그들의 자신감 결여와 카리스마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지적된다. 윤석열 정부가 의료 개혁과 관련한 대학입학 인원 수에 있어서, 특정 숫자(2,000)를 고집하는 것은 집단적으로 주술에 걸리게 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고려시대에도 숫자와 색을 통해 주술적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검정색은 수(水)에 해당하는 색으로 사용되었다. 고려 공민왕 시절, 풍수관리자가 검정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가의 풍속과 의복에 대한 규정을 제정한 사례가 있다. 이는 국가의 번영과 재난을 연결짓는 주술적 사고를 반영한다. 고려시대에는 비결 위조가 문제시되었으며, 숙종 시절에 음양서를 거짓으로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가난한 지식인들이 생계를 위해 저지른 범죄로, 위조된 비결들이 사회에 혼란을 초래했다. 예종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결과 풍수에 관한 책들을 비교하고 정리하여 『해동비록』을 편찬하게 된다. 이는 비결의 신뢰성을 높이고 사회적 혼란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또한 조선 시대 예종의 부왕인 숙종 시절, 김위제가 남경(한양) 천도를 주장하며 기존의 공인 풍수서를 인용하지 않고 새로운 비결을 제시함으로써 풍수계를 흔들어 놓았다. 이는 전통적인 풍수 사상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예종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결과 풍수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를 추진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주술적 요소가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 이 이외에도 저자는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례를 분석하여 쉽게 이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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