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사이에서 나는 말에는 말만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살았다. 말이란 전달사항, 장기자랑, 혹은 전투와도 같은 것이었다. 잘한 말이란 잘 휘두른 일격의 칼부림 같은 것이었다. 거침없는 기개와 솔직함 그리고 말재간 덕분에 나는 어딜 가도 말하는 것 하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말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갔다. 내가 하는 말이 오늘 나의 기분이었으므로, 나 또한 내 말을 들으며 마음을 더듬어보아야 했다. 말과 말사이의 간격, 그 사이의 묵음, 침묵의 의미들. 뱉어진 말과 그 말을 대체할 수 있었던 말, 그 말의 진정한 속뜻. 말과 말사이의 순서, 뉘앙스, 맥락 그리고 역학관계. 한 조각 혹은 맺음, 또는 모든 것을 전복하는 말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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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간단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 뭐든간에 간단하지가 않은 사람, 기쁘다는말 대신에 붉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문다든가, 슬프다는 말 대신에 "그래서 밤을 꼬박 새웠나 봐요"라고 말하는 사람. 그런 성질은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면 종일이라도 싱글벙글한 얼굴로 대답을 기다릴 수 있었다. 나는 느릿느릿, 아장아장, 더듬더듬을 사랑했으니까. 그런 것이라면 아주 작은 것에도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아졌으니까. 나는 곧잘 유창한 말솜씨로 어떤 칭찬도 떨어뜨리지 않고 고봉으로 쌓아주고는 했다. 당신의 느림과 서투름에 대해, 당신만이 발견할 수 있는 것과 당신이 까맣게 모르는 것들에 대해. 그것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쉬지 않고 말해주었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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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순간도 있었다. 언뜻 평소와 똑같은 것 같지만, 완벽히 다르다는 걸 걔는 바로 알았다. 그러면 걔는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한 손으로는 조용히 녹음기를 켰다. 종종 내가 말한 문장을 메모장에 옮겨 적거나, 말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그건 내가 중요한 말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걸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걔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게 그렇게 안심이 될 수 없었다. 걔가 기억하는 이야기는 잘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그 순간을 너무나 기다렸다는 걸알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기지개를 켜듯이 이야기를 뻗어 냈다. 여전히 설명할 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걔가 거기에 있었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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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마자 창밖으로 날씨를 확인할 것, 방금까지 꾼 꿈들을 헤아려볼 것, 무슨 일이든 꼼지락거리며 손을 움직일 것, 손에 잡히는 대로 뭐든지 읽을 것, 눈꺼풀이 감기면 언제든 잠에 들 것, 꾸준히 온몸을 흔들며 춤을 출 것, 언제나처럼 밥 먹는일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시할 것.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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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에게는 한 줄의 명심문이 있다. ‘네, 하고 합니다’다. 그것으로 내가 가진 의지를 내려놓는 연습, 내가 아닌 존재로 살아보는 연습을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가 아닌,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불교의 법은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곳에서 싫은 상대를 만난다면 그는 원수가 아니라 나를 돌아볼 수 있게해주는 불보살, 즉 은인으로 불렀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자신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어떤 습관에 지배받는지 살펴보아야 했다. 내가 행동을 바꿔야 한다면 누가 나를 싫어해서가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여야 했다. 사람들은 왜 나를 싫어하지?‘에서 ‘나는 왜 이 행동을 하고 싶지?‘로 질문이 바뀌는 데는 꼬박 2년이 걸렸다. 그곳에서 ‘그냥‘ 살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매 순간기억해야 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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