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나는 ‘안다‘와 ‘모른다는 것의 의미를 촘촘하게 따져보기 시작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알거나 모른다는 잣대로 나누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약간의 의구심이 들어서다. 처음 들어본 브랜드, 가보지 않은 여행지, 보지 않은 영화나 책은 아는 것일까, 모르는것일까? 어느 쪽도 아니지 않을까? 무언가를 보고 경험하고도 그에 대한 자기만의 의견이 없다면, 즉 나만의 무언가로 귀결되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영감으로 얻는 일상의 정보에 가급적 내 생각을 더해보려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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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버전을 업그레이드로 생각한다. 아니다. 버전은 라틴어 vertere‘에서 나왔다. ‘회전하다‘, ‘방향을 바꾸다‘ 라는 뜻이다. 버전이 바뀌어도 기본 속성은 남는다.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일에 새롭다‘는 장식을 붙이지 않아야 할 이유다. 변환과 전환이다. 생각의 전환, 인식의 전환, 가치관의 전환, 사용법의 전환, 목적의 전환, 가치의 전환이다. 지금 존재하는 것의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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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옹지마다. 화가 복이 되기도 하고, 복은 다시 화로 변한다. 인생무상이다. 무상無常은 형체가 없다. 애당초 붙잡을 게 없다. 무상은 아니카anicca‘라는 말에서 나왔다. ‘니카(고정되어 있음)‘에 반대말 접두사 ‘아‘를 붙였다. 끈적거리지 말라는 것이다. 달라붙지 말라는 것이다. 영구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바뀐다는 것이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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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테마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울의 기미를 과도하게 표출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멜랑콜리의 비애가 내부에만 고여 있는 건 유치하다. 볼썽사납다. 우울은 뼛속 깊이 느끼되 동시에 무심한 시선으로 관조하는 것이다. 우울이라는 멜랑콜리는 평평하게 바라볼 때 깊이가 생겨난다. 우울은 최선을다해 자신을, 세상을, 시대를 의심하는 것이다. 이제 우울은 장르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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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하면서부터 몸이 아닌 머리로 하는 일을 믿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는 머리로 세상을 파악하지 않는다.
몸을 쓰지 않고 오는 일의 결과를 믿지 않는다. 운동은 탈언어적이다. 운동은 숫자다. 각오만으로 몸은 달라지지 않는다. 움직여야 한다. 몸의 감각, 신체 감수성, 운동이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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