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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최진혁 사진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그녀의 책을 공부하듯이라도 보려고 한다. 예전에 부커상을 탔을 때 읽어보려했으나 줄거리의 대충 내용을 들으니 너무 폭력적인 내용이 있고 내용이 쓸 것 같아 마음을 접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부러워만하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우리나라에도 나왔다는데 억지로라도 읽어보려 한다.
직장 도서관에 가지 이미 다 빌려가고 남은 책이 <흰>한 권이라 이것부터 읽었다.
시간의 모서리라는 멋진 서정적인 말들이 마음을 끌었다. 그러나 밝은 내용이 아니라 그녀가 고통속에서 잊히면 안 될 것들을 들춰내어 계속 기억하고자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이 책의 멋진 설명들, 리뷰들이 이미 다 있다...
짧은 책이라서 요새 나의 실력에 비하면 금방 읽었는데 마음에 드는 부분을 여기 적어 놓는다.
11쪽
시간의 감각이 날카로울 때가 있다. 몸이 아플 때 특히 그렇다 14살 무렵 시작된 편두통 예고 없이 위경련과 함께 찾아와 일상을 정지시킨다. 해오던 일을 모두 멈추고 통증을 견디는 동안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는 시간은 면도날을 뭉쳐 만든 구슬들 같다. 손끝이 스치면 피가 흐를 것 같다. 숨을 들이쉬며 한순간씩 더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까지도 그 감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숨죽여 서서 나를 기다린다. 그렇게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으로 무모하게 걸어 들어간다.
80쪽
하얗게 웃는다. 라는 표현은 아마 그녀의 모국어에만 있다. 아득하게, 쓸쓸하게, 부서지기 쉬운 깨끗함으로 웃는 얼굴 또는 그런 웃음
너는 하얗게 웃었지. 가령 이렇게 쓰면 너는 조용히 견디며 웃으려 애썼던 어떤 사람이다.
그는 하얗게 웃었어. 이렇게 쓰면 아마 그는 자신 안에 무엇인가와 결별하려 애쓰는 어떤 사람이다.
81쪽
인도유럽어에서 텅 빔blank 과 흰 빛blanc, 검음black과 불꽃flame이 모두 같은 어원을 갖는다고 그녀는 읽었다.
83쪽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단 것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지만 이따금 각설탕에 쌓여있는 접시를 보면 귀한 무엇인가를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떤 기억들은 시간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는다.
한 친구는 필사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어디였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