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과 호밀빵 키다리 그림책 14
파멜라 엘렌 글.그림, 천미나 옮김 / 키다리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무시로 때때로 변하는 아이의 장래희망이 어느 날엔가 ‘대통령’으로 튀어나왔을 때 여느 때와는 다르게 반갑게 반기질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었다. 무소불위의 권위라지만 나라를 통틀어 단 하나뿐인 이 자리가 어찌 고독하지 않겠는가. 막중한 역사적 책임감을 쇳덩어리를 매단 족쇄마냥 차고 살아야 하는 그 자리를 이 엄마는 선뜻 권할 수가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인 임금님은 온 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 높다란 언덕 꼭대기의 커다란 성에 산다. 마구간지기 꼬마와 친구하며 트렘폴린 위에서 방방 뛰고 신나게 말타기를 즐기는 임금님은 세상에서 먹는 게 제일 좋다. 임금님 하나를 위해 수많은 요리사들이 매일매일 화려하고 근사한 요리를 준비한다. 그렇게 마련된 음식들을 임금님은 남김없이 몽땅 먹어치운다. 그러면서 점차 날렵하던 임금님의 몸은 기름진 음식들로 인해 점점 무거워지고 신나던 놀이도 말타기도 하지 못했다. 마구간지기 꼬마 친구와 신나는 놀이를 할 때의 행복했던 그 미소도 사라진지 오래고 임금님은 무얼 해도 더 이상 신나지 않았다. 행복한 미소가 사라진 얼굴은 푸르딩딩하고 불만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결국 요리사들을 탓하며 성 안의 요리사들을 죄다 해고 시켜버린 임금님은 성 안을 돌아다니며 요리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다니지만 맛난 요리를 두고 투덜거리며 화를 냈다는 소문을 들은 신하들은 임금님을 피하게 된다. 결국 나무 밑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임금님 앞에 마구간지기 꼬마가 나타나 자신의 점심도시락으로 싸온 벌꿀을 바른 호밀빵을 내밀고 임금님은 평생 먹어본 적이 없는 호밀빵을 세상의 어떤 음식보다 맛있게 먹게 된다. 자기 때문에 점심을 굶게 된 꼬마친구에게 미안해하면서 말이다. 그 뒷얘기는 다시 방방 뛰고 다그닥다그닥 달리며 행복해진 날렵한 임금님 얘기를 전하며 해피엔딩~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지 않아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바로 와 닿는 편안한 그림책이다.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음식들이 점점 식탐을 불러오는 것처럼, 99개 가진 자가 1개 가진 자의 것을 탐하는 것처럼 욕심은 끝도 없다. 그 욕심의 끝에서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은 행복일 것이다. 하지만 99개 가진 자와 1개를 가진 자의 행복 저울의 기울기가 99개 가진 자 쪽으로 기운다는 장담은 아무도 못할 것이다. 식탐이 심해질수록 몸의 리듬은 깨지고 즐겨먹던 음식들에 대한 즐거움도 사라지는 것처럼 과욕은 늘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처럼 허전한 뒷맛만 남기는 법이다. 행복에 대한 해답은 자기만족에서 찾을 수 있을진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제쳐두고 내 손 안에 쥐어져 있지 않는 것들을 잡기에 급급한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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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샤베트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반가움으로 출발해 본다. 군 복무 마친 애인 만나는 게 이보다 반가울까... 한다면 살짝 지나칠까?^^ 6년...백희나 씨의 첫 창작그림책 <구름빵> 이후로 너무 오랜 기다림이었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책장에 이 책 꽂혀있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로 아직까지도 초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 처녀작의 대단한 성공이 작가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까? 좀처럼 새 책 소식을 알려주지 않더니만 6년 만에 <달 샤베트>로 다시 찾아왔다.

스토리보울? 출판사가 생소해서 찾아보니 백희나씨가 이번에 독립출판을 한 모양이다. 홈페이지까지 찾아가 몇몇의 글들을 살펴보니 깊은 속내를 보이지는 않아도 그동안 출판사와의 작업 과정에서 인간관계를 비롯해서 어려운 점이 많았던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씨의 차기작이라면 어느 출판사와 계약을 했든 그 출판사의 대표 베스트셀러 자리를 보장해 줄 텐데 살짝 배 아파할 분들이 있을 듯하다. 이렇게 비교적 흠잡을 데 없는 차기작이고 보면 더욱 그럴 것 같다.^^

<달 샤베트>, 우선 판형(21×21)은 살짝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작인 ‘구름빵’ 사이즈(21×28)정도였다면 훨씬 안정감 있었을 텐데 생각보다 작은 판형의 책을 받고 보니 아쉬운 마음이다. 특히 <달 샤베트>의 배경이 되고 있는 아파트의 외관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수작업으로 공들여 정성스레 만든 아파트를 훨씬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어느 작가든 자신의 작품에 온 정성을 쏟기 마련이지만 백희나씨의 작품의 특성상 영화나 연극의 세트처럼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드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지 짐작만으로 알 수 있는데 그 부분을 작은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듯 작고 답답한 사이즈가 아쉬웠다. 베란다 창을 통해 남의 집을 훤히 들여다보면서 그 집의 소파며 주방이며 커튼이며 벽지그림까지 비교 분석해보는 쏠쏠한 재미를 아는 여자의 마음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이런 과정에서 작은 판형이 살짝 아쉬웠다는 얘기다.^^ 

내가 작가였다면, 이렇게 아파트를 이야기의 중심 배경으로 다루고자 한다면 시치미 뚝 떼고 12가구 중 한군데 정도는 작가의 집을 살짝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아 작가의 분위기를 풍기는 집을 찾으려고 꼼꼼히 살폈다. 마녀 위니 시리즈의 코기 폴처럼 자신이나 자신의 아이들의 모습을 그림책 속에 그려 넣고 또 마니아 들은 그것들을 찾아내는...그런 재미를 아는 작가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홈페이지를 뒤져 제작과정을 살펴보니 역시 백희나씨의 주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집이 있단다. 4층 오른쪽 집이 바로 백희나씨의 주방의 모습이란다.

비오는 날 아침, 나뭇가지에 걸린 작은 구름을 가져다 구름빵을 만들어 먹으니 몸이 가벼워져 두둥실 날아올랐다는 <구름빵>의 스토리는 국내창작품에서 보기 드문 환상적인 발상의 기발한 그림책이었다. <달 샤베트> 또한 <구름빵>의 환상적인 기발함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쌩쌩 돌아가는 더운 여름날 하늘의 달이 똑똑똑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반장 할머니는 큰 고무대야에 달물을 받아 샤베트 틀에 넣어 달 샤베트를 만들고 전기사용량이 너무 많아 정전이 돼서 온통 깜깜해진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반장할머니 집에서만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온다. 모두들 할머니 집으로 모여들어 시원하고 달콤한 달 샤베트를 하나씩 나누어 먹고 시원하고 달콤한 꿈을 꾸며 잠이 든다. 그런데 달이 녹아버려 살 곳이 없어진 옥토끼들이 절구와 절굿공이를 짊어지고 할머니 집의 문을 두드리고 할머니는 기발한 생각으로 옥토끼들을 다시 달로 돌려보낸다. 샤베트를 만들고 남은 달물을 빈 화분에 부어 달맞이꽃을 피게 하고 달을 그리워하는 달맞이꽃의 사랑은 새까만 밤하늘에 달을 다시 피어나게 했다.

6년 만에 두 번째 작품을 내놓으면서 얼마나 이 작업이 하고 싶었을 것이며 하고 싶은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 녹아내리는 달을 통해 이상기후에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 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을 테고 살 곳을 잃어버린 옥토끼를 등장시켜 멸종 위기의 보호 동물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워 주고 싶었을 것이다. 외부로 향하는 문을 꼭꼭 닫아두고 에어컨을 틀던 사람들이 달 샤베트를 나눠먹고 에어컨 대신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잠이 들었다는 얘기를 통해서 ‘단절과 소통’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숨겨둔 숨은 이야기들을 제외하고도 녹아내리는 달로 샤베트를 만들어 먹는 이야기와 달맞이꽃으로 달을 피어나게 한다는 발상만으로도 이 책은 멋진 그림책의 위치에 올려놓을 만한 작품이다.    

<구름빵>에서 선보인 백희나씨 만의 독특한 일러스트는 <달 샤베트>에서도 여전히 빛난다. 공들여 잘 만들어진 입체적인 세트에 마치 종이인형을 쓱싹쓱싹 그려서 오려낸 듯한 평면적인 등장인물들이 움직이는 느낌, 반입체 기법이라 부른다 하는데 뭐라 부르든 백희나표라 이름붙일 수 있겠다. 자신만의 독특한 일러스트를 갖고 있다면 행복한 그림 작가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이렇게 환상적인 이야기 보따리를 갖고 있는 작가라면 무엇을 두려워하랴.   

20개월도 되지 않은 아기였을 때 <구름빵>을 즐겨 듣던 우리 아이는 구름빵을 줄줄 외우고 다녀서 엄마 아빠는 아이가 천재인줄 알았다.^^ 그 아이가 여섯 살이 되어 <달 샤베트>를 만났다. 아이의 반응이 참 궁금했다. <구름빵>과 <달 샤베트>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달 샤베트>가 더 재미있단다. 그래도 구름빵의 환상적인 기발함의 충격을 먼저 꼽는 엄마와 달 샤베트의 달달함을 먼저 꼽는 아이, 1대 1로 팽팽하다. 세 번째 작품에서 다시한번 판가름 해보련다.^^
 



달샤베트 뒷얘기>>> 

아들 : 엄마, 우리도 달 샤베트 만들어 봐요.

엄마 : 그런데 어쩌지? 달물이 있어야 할텐데...엄마가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야겠네?     

아들 : 음...그러면 달맞이꽃을 따서 그 즙을 짜서 만들면 되잖아요.

엄마 : 깜..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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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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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선생의 타계 소식으로 인한 허망한 마음에 두문불출하다 <행복한 책읽기>에 대한 게으른 리뷰로 슬며시 세상 밖을 내다본다. 최근 들어 나의 책읽기는 오래 전 책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마음이 끄는 대로 다시 읽기 중이다. 이윤기 선생의 타계소식을 들었을 때 마침 읽고 있던 책이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였다. 거의 15년 만에 다시 꺼내 보는 책이다. 어찌 보면 이윤기 선생의 타계소식에 이렇게 마음 아파하며 일상의 일들에서 손을 놓게 만들어버린 이 끝없는 상실감에 빠지게 된 그 처음은 김현 선생이었다. <행복한 책읽기>를 통해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알았고 자연스레 번역가 이윤기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었었다. 에코뿐이더냐... 밀란 쿤데라, 토마스 만, 귄터 그라스, 소포클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희비극들, ‘천일야화’와 ‘데카메론’까지 내 독서 영역을 넓히는 데 바로 이 책 한권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고 고백한다. 지금 내 책장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문지사 시집들과 한동안 빠지지 않고 사 모았던 무슨무슨 문학상 수상집들도 다 이 책 한권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난해함으로 정평이 나 있는 작품들에 대한 도전의 용기 또한 이 책에서 얻었다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책읽기는 김현 선생의 신세를 많이 지고 있는 셈이다.     

<행복한 책읽기>를 읽었을 때 이렇게 멋진 분을 유고작으로 처음 만났다는 사실에 너무나 아쉬워했었다. 훗날 알게 된 이야기지만, 김현의 빈소에서 문인들이 모여 “앞으로 백 년 동안 야만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며 김현 선생의 죽음을 두고 한 사람의 문인의 죽음이 아니라 한국 문단의 커다란 상실로 받아들였다 한다. 또 김현 선생의 제자인 시인 황지우는 김현 선생이 등단한 1962년부터 타계하신 1990년까지의 한국 문학은 김현 비평에 의해 축복받았다고 했다 한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의 김현 선생의 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을 보면서 가장 먼저 다가온 느낌 하나. 김현 선생과 동시대를 살며 글줄 깨나 쓴다는 혹은, 작가의 길로 막 접어들려는 신참들은 대단한 행운의 시대를 살지 않았나 싶다. 그의 절제된 칭찬에 창작 욕구는 마구 솟아났을 테고 그의 혹평은 날카롭고 아팠으리라. 하지만 작가라는 타이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열렬히 자신의 작품을 읽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이었으리라. 엄청나게 방대한 독서량이 눈에 띈다. 한 해 동안 쏟아져 나오는 거의 모든 저작물들을 챙겨 본 듯하다. 대가나 신참을 가리지 않고 그만이 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충고도 아끼지 않고 쏟아낸다. 몇 가지 옮겨보면...

황동규의 <악어를 조심하라고?>(문지,1986)도 활달하지만 직관의 깊이가 있다. 그 깊이를 성숙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명료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깊이라고 부르고 싶다. 성숙은 두터움이 더 강조되는 어휘이고, 명료성은 논리성 사상성이 더 강조되는 어휘이다. 직관의 깊이에는 그 모든 것이 다 어우러져 있다. 그의 그 깊이는 "계단을 기어 올라가 옥상 난간에 뜨거운 배를 대고"있는 악어의 시선의 깊이이다. 그 높이 있음이 별을 향한 초월적 바람의 의지가 아니라, 아래로 내려갈 수 없다는,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하강적 바람의 의지라는 데 그의 시의 특징이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높은 곳이 있다, 그러나 나는 내려가야 한다. 그것이 엘리트주의일까? (52쪽)

정호승의 <새벽 편지>(민음사,1987)는 애절하게 아름답다. 피 묻은 별의 그리움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그의 시는 절제된 슬픔 때문에 애절하다. 피 묻은 별의 그리움이란 자유를 향한 그리움에는 피가 묻게 마련이다는 정치적 상상력의 시적 치환이지만, 그 치환이 경직화되어 있지 아니한 것이 그의 시의 장점이다. 그러나 그 세계의 폭과 깊이는 좁고 얕다. (117쪽)

최하림의 <겨울 깊은 물소리>(열음사, 1988)를 공들여 읽었으나 깊은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리듬하고 별 관계없어 보이는 전라도 사투리며, 라이 보리 같은 외래어도 눈에 설었다. 시, 말, 새, 바다 등의 어휘들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그의 사유가 어디에 가 있나 짐작이 가지만, 그렇다고 좋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차라리 그의 산물 <말과 현실>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는 결국 초기시의 세계로 되돌아왔는데, 초기시의 가난은 없어지고, 그렇다고 그 다음의 정열도 없어져, 기교만 남은 느낌이다. (131쪽)

최성각의 <잠자는 불>(민음사, 1988)은 읽힌다. 그러나 감동적이지는 않다. 울림이 옅어서, 재치도 재치 같지가 않고, 고통도 고통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마르셀 에메처럼 가볍게 날지도 못한다. 우화적이지도 않다. 그럼 뭣일까? 지루한 가벼움이랄까. 가난도, 사랑도, 데모도....다 둔하게, 지루하게 가볍다('잠자는 불' "앞으로 가는 고기"......'모르는 사람들') 악마 같은 고통이 더 필요하다.

김선학의 <현실과 언어의 그늘>(민음사, 1988)도 마찬가지다. 꼼꼼히 읽어보면, 별로 틀린 소리 같지 않은데, 지루하다. 모범 답안 같은 비평을 보는 지루함이다. (198쪽)

안도현의 <모닥불>(창비,1989)은 재미없다. 체험의 폭도 좁고(평교사의 지루한 체험), 사유의 깊이도 없다, 아니 없어 보인다.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의식이 무의식을 완전히 억압하고 있다. 좋은 교사, 좋은 시민. 옳다고 알려진 것만을 사유하는 젊은 시인의 그 순응주의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의 재능이 이 정도였는가? (218쪽)

지금은 한국문학의 대가의 위치에 올라있는 김훈에 대한 글도 인상적이다. 한국일보 기자 시절의 김훈의 풋풋한 글에 대한 평이 절로 웃음 짓게 한다.

한국일보 사보(1987년 봄호)가 갑자기 내 손에 들어왔다. 웬일로 한국일보가 그것을 보내줬나 모르겠다. 천천히 읽어나가다가, 김훈의 '문학기행 유감'을 읽게 되었다. 그의 글은 기자의 글로서는 거의 파격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 드러냄 때문에 그의 글에 대한 찬반이다, 그의 남의 글에 대한 찬반은 매우 분명하고 확실하다. 그의 글을 보니까 아버지에 대한 그의 애정/증오가 그의 글쓰기의 밑바닥에 있음을 알겠다. 그는 깊게 사랑하거나 짙게 미워한다. .......그의 글은 거침이 없다.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 같으나, 그 생각난 대로 씌어진 것들은 훌륭하게 이음새 없이 붙어 있다. (96쪽)

김훈의 <내가 읽은 책과 세상>(푸른숲, 1989)은 김훈 특유의 화려한 수사의 모음이다. 그의 글은 이상하게도 일상적인 삶을 그가 묘사하고 있을 때에도 화려하다. 그 이유는 그가 "업과 더불어 짜증과 더불어 모자람과 더불어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는 데에 있다. 자기 삶의 체취가 진하게 배어 있는 글은 어떤 경우에도 수사쪽으로 기운다. 소박도 그때에는 하나의 수사이다. 그 수사가 남의 감정을 뒤흔든다. 그 수사에는 흔히 삶의 진수가 숨어 있다. "판소리의 바탕은 한국의 산하와 한국의 자연, 그리고 거기서 벌어진 삶의 내용 전체"(269)라든가 북을 만드는 데에는 "산전수전을 다 겪고 죽은 늙은 황소의 가죽이"(286)좋다. 라고 그가 쓸 때, 그의 수사는 수사 이상이다. 그의 책-세상 읽기는 사람 읽기에 다름 아니다. (266쪽)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김현의 비평을 통해서 시적 신분증을 얻었다 하는 송욱 선생의 글을 보면서 아마도 그 시대 문인들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되돌아가는 진로>(문예중앙, 1986년 겨울호)를 보니, 박태순이 내 글을 괴팍하다고 했다고 한다. 괴팍하다니.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도 다 쓸 수 있는 글들을 쓰는 것을 삼갔을 따름이다. (57쪽)

 책상을 뒤지다가 송욱 선생의 글을 한 편 발견했다. 아, 그런 글이 있었지. 학장을 그만둔 뒤 너무 쓸쓸해해서, 그의 시선집을 만들자고 말해, 거기에 해설을 썼는데, 책이 나온 뒤에, 중국 그림 전시회에서 복사판을 한 장 사다주면서 이 글을 주셨다. 과분한 사랑이었던 것 같다:  


김현의 '말과 우주'를 읽고   

사람의 몸은 거울이 없고 보면 제 눈으로는 제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는 아마 우리 존재가 실존적이라는 뜻을 드러내는 사실이리라. 그의 글을 일고 나는 대중탕에 걸려 있는 큰 거울을 생각한다. 내 온몸을 비추어주는 겅루을, 그러나 그의 글은 그러한 거울과 흡사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매우 다른 측면이 더욱 중요한 아주 희귀한 거울이다. 이십대에서 사십대에 이르는 시인으로서의 내 전신상을 드러내주는 공간적일 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거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내 시의 독자들에 있어서랴! 나는 그의 글에서 내 시적 신분증을 얻었다. 하물며 독자 여러분들에 있어서랴! 그의 이 글에서 내 시론인 시적 평전에 없는 방법을 보여준다. 하물며 내 시론의 독자들에 있어서랴! 우리는 그의 글을 읽고 비로소 시가 실존의 표현임을 깨닫게 된다. 시인은 제 눈으로는 자기 시의 온몸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는 아직 젊다. 그에게 장차 눈부신 변신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1987년 3월 16일, 송욱

마지막 몇 해의 일기에서는 죽음을 예감이라도 했던 것처럼 죽음에 대한 단상들이 눈에 띈다.

삶의 순간순간이 죽음과의 싸움인데 그것을 모르고 희희낙락 지낸다. 그러나 고통이 없다면 죽음의 실감도 없으리라. 많이 아프라, 죽음이 너를 무서워하도록. (232쪽)

어떻든 한 젊은 시인은 죽었고 우리는 살아남아 그를 이야기한다. 죽음만이 어떤 사람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해도 괜찮게 만들어준다.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 (231쪽)

젊고 재능 있는 시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김현은 그의 유고시집의 해설을 썼다. 바로 그 젊고 재능 있는 시인이 기형도다. 기형도의 누이를 만나 기형도의 살아생전의 이야기들과 가족 이야기를 전해 듣는 일화도 이 일기에서 소개하고 있다. 요절한 시인을 안타까워하더니 기형도가 세상을 떠난 그 다음해 김현도 48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천재는 요절을 하는 건지, 요절이 천재를 만드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재능의 수혜를 오래도록 받고 싶어 하는 평범한 독자인 나에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29세의 기형도, 48세의 김현, 63세의 이윤기. 이들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이들이 쏟아낼 미지의 글들을 손에 만져보지도 못하고 빼앗겨 버린 것 같은 애달픔이다. 그것들은 분명 눈부시게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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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행복해졌다 - 차로, 두 발로, 자유로움으로 세 가지 스타일 30개의 해피 루트
전은정.장세이.이혜필 지음 / 컬처그라퍼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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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제주로의 여행은 막무가내로 휴가를 보장 받으려는 마음이 앞서서 떠난 여행들이었다. 그런 내게 제주는 대체로 흡족했다. 뻑뻑한 삶을 이리저리 쪼개서 시간을 만들고 통장 잔고를 이리저리 긁어모아서 떠났던 젊은 날의 첫 여행을 기억한다. 대한민국의 풍경이 거기서 거기일 텐데 제주만의 특별한 무언가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했기에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기대감에 부풀어 잠 못 들던 여행 전날 밤도 기억한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다리가 아프도록 제주를 휘젓고 다니다가 숙소에 들어와 녹초가 되어서도 다음날 아침이면 거뜬하게 일어나 또다시 제주를 느끼며 다녔던 3박 4일 간의 꿈같은 날들은 아마도 앞으로의 제주 여행에서도 다시 느껴보지 못할 감상일 것이다. 첫 여행 이후로 ‘제주’라 하면 맹목적인 찬사를 쏟아 붓는 제주예찬론자가 되었다. 마치 내 고향에 대한 짝사랑에 수다스러워지는 그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이 책은 잡지사에서 함께 일했던 인연으로 엮인 세 명의 싱글 여인네들의 세 가지 스타일의 여행 방법에 맞는 해피 제주를 담고 있다. 달리고 주차간산(走車看山), 걷고 도보천리(徒步千里), 쉬는 유유자적(悠遊自適). 세 사람이 추천하는 세 가지 스타일의 여행 테마 중 내 마음을 또다시 설레게 하는 것은 역시 도보천리다. 유유자적 스타일은 저자와 개인적인 친분으로 엮인 특별한 인연을 이야기 하고 있어서 평범한 여행자라면 쉽게 꿈꿀 수 있는 여행 방법이 아니라 동떨어진 느낌이 들고, 주차간산 스타일은 현지 가이드까지 대동해서 제주를 휘젓고 다녔던 경험이 이미 있어서 색다른 맛이 없는데 반해 도보천리는 앞으로의 제주 여행의 테마로 계획하고 있는 부분들을 담고 있으니 마음이 그리로 끌리는 게 당연하다. 도보천리 스타일이 내 마음을 끌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다른 테마가 흡족하리라. 어느 방법을 택하든 온통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다.

조.이.락. 세 명의 여행자의 세 가지 스타일의 여행. 그 중 ‘이’의 도보천리 스타일이 내게 맞춤인 것을 떠나서 ‘이’의 글맛이 내 입맛에도 딱인 모양이다.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나면 차마 긋지 못하는 밑줄을 대신해서 색색의 포스트잇을 붙여두는데 ‘이’의 글에 집중되어 있다. 그녀의 감상에 내 마음을 얹어둔 듯하게 격한 공감을 대신해주고 있다. 제주에 여행 왔다가 제주가 좋아서 제주에 눌러 살게 된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개한 ‘락’의 글도 인상적이었다. 대부분 예술인이거나 예술적인 기질이 강한 사람들, 그 속에 세 명의 저자가 네 번째 저자라고 말한 ‘제주 할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레 소개한 제주도 ‘설문대할망’ 신화가 눈길을 끈다.  

설화에 따르면 오백나한은 모두 설문대할망의 아들이다. 할망은 한라산의 어머니고, 슬하에 500명의 아들을 둔 거신(巨神)이다. 체구가 어찌나 큰지 빨래를 할 때면 제주 북쪽 관탈섬과 제주 남쪽 마라도에 다리를 한쪽씩 얹고 성산일출봉을 빨래통 삼고 우도를 빨래판 삼는다. 어느 날, 피곤한 할망이 한라산을 베고 누우려는데 꼭대기가 뾰족해 주먹으로 산 정상을 쳐 백록담이 생겼다고 한다. 쌀국수 먹으러 베트남 가고 생수 마시러 스위스 가고 껌 씹으러 핀란드 간다는 '허풍개그'가 이만할까. (155쪽)

세 가지 스타일의 30가지 루트를 소개하고 여행자들을 위한 최신 생생정보까지 각 루트의 말미에 친절하게 붙여두고 있다. 여행 관련된 책들이 그러하듯 풍부한 사진들도 담고 있다. 하지만 제주의 행복 속으로 날아가고 싶게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은 도움 받을 만한 맛집, 숙소, 환상 코스의 정보가 아니라 그곳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할 감상과 길 위에 선 여행자의 절반쯤 탈속과 해탈의 경지에 오른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여행 자체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여행은 '몰아쉬는 숨'이다. 오래 참은 숨을 한 번에 뱉으니 발끝에서 해녀의 숨비 소리가 난다. 참은 숨을 몰아쉬러 제주에 갔다. 안정되어도 뻑뻑한 삶, 불안정해도 여유로운 삶, 양단간에 결론을 내고 싶던 어느 날이었다. 지상을 떠나 지상을 내려다본 순간, 금세 마음이 노곤해졌다. 강과 산 같은 큰 흐름만 남고 족쇄 같던 공간은 점조차 되지 못했다. 사람은 더 미미해 보이지도 않았다. 숱한 아귀다툼이 우스워졌다. (164쪽)

무시로 때때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세 여인네들의 자유가 살짝 부러워지다가도 매일 아침 유치원 버스에 오르기 전에 소나기 뽀뽀를 퍼붓는 아이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우선 몸이 매인 곳이 없으니 자유로울 수 있는 이 여인들이 부럽다가 어차피 한평생 살아가는 것은 각자의 쳇바퀴 안에서의 행보가 아니겠는가 하는 쪽으로 생각이 튄다. 다만 한적하고 여유롭게 내 시간들을 맘껏 운용할 수 있는 자유가 내게서 다른 쪽으로 분산이 될 수밖에 없는 앞으로의 여행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서글픔은 약간 있다.^^ 마음은 간절하나 체력이 뒷받침 해주지 못할 나이가 되기 전에 제주 올레길을 걸어보리라. 나의 버킷리스트에 올라있는 이 계획이 조만간 실행에 옮겨질 날을 고대해 본다. 그동안 이 책으로 시장기를 달래야겠다. 물론 이 책은 애피타이저 보다는 성찬에 가까운 아주 맛있는 책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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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그랬어 콩깍지 문고 9
양희진 지음, 김종민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꿈과 현실 환상과 실재 사이에서 적당히 균형을 이룬, 이른 여름날 녹두네 마당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살랑대는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서 깜빡 잠이 든 녹두와 꿈 속 토끼와의 추격전을 옮겨놓은 듯도 하고, 어쩌면 실제로 동서양의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꾀 많은 토끼의 사촌쯤 되는 토끼가 짠하고 녹두네 마당에 나타났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이들은 가끔씩 금방 탄로 날 거짓말로 상황을 벗어나려고 하니 심한 장난으로 아수라장이 된 마당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토끼를 끌어다 감쪽같이 속여 넘기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아이는 유치원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 늘 끼고 다니던 양 인형에게 자신의 잘못을 떠넘기곤 했었다. ‘토끼가 그랬어.’란 제목에 피식 웃음이 났었던 이유는 한동안 엄마가 빤히 보는 앞에서 일을 벌여놓고도 양 인형에게 잘못을 돌리며 “양군이가 그랬어요. 엄마는 내가 한 것 같아요?”하던 아이의 말 때문이었다. 하지만 씨익 웃으며 양군이가 그랬어...하는 내 아이와는 다르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고 씩씩대면서 토끼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녹두를 보자니 이런 내 이야기를 들으면 녹두가 억울해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녹두와 토끼의 첫날 소동은 큰 토끼에게 녹두가 일방적으로 기습을 당한 것이었지만 만반의 준비를 하고 토끼를 기다린 둘째 날의 소동도 토끼의 승리로 끝났으니 녹두가 약이 바짝 올랐음이 당연하다. 녹두는 엉망이 된 마당의 상황을 해명하려 들었을 테고 엄마에게 어김없이 또 혼이 났을 거다. 하지만 아이들만 그렇겠냐마는 특히 아이들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충성을 다하는 법, 토끼에게 골탕 먹은 분한 마음에 복수를 다짐하지만 식구들 중 오직 할머니만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시니 할머니가 정성껏 가꾼 콩밭의 콩잎을 토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 또한 녹두에게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토끼와의 결전을 준비하는데 만화책과 볶은 콩도 여름 낮의 나른한 졸음을 이겨낼 수가 없는 모양이다. 녹두가 깜빡 잠이 든 사이 어김없이 토끼들이 나타나고 볶은 콩 그릇이 원인이 되어 엎치락뒤치락 하는 사이 녹두와 두 마리 토끼는 어느새 콩 한쪽도 나눠먹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달리 꾀 많은 토끼겠는가. 마지막으로 녹두의 뒤통수를 날려주는 큰 토끼. 큰 토끼의 콩의 반밖에 되지 않는 콩을 앞에 두고 갸웃거리고 있는 녹두를 남겨두고 떠나며 살짝 돌아보는 큰 토끼의 눈빛이 짓궂다.^^   

요즘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보면 진화하는 느낌이 든다. 권선징악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착한사람 콤플렉스를 양산하던 이야기책들의 주인공들이 현실감을 찾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착한 사람도 여지없이 악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으니 무조건 착한 아이로 자라기를 강요하는 이야기들이 그동안 꽤 불편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현실의 아이는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짓궂고 적당히 꾀를 부린다. 그래서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녹두가 보여주는 현실감 있는 순수함을 사랑스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초여름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풍경을 담은 잔잔한 그림 속에 녹아든 녹두의 이야기는 녹두나 토끼 어느 쪽의 편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또 다른 이야기에 대한 힌트만 살짝 남겨두고 있다. 새로 등장한 애꾸눈 토끼와 함께 할 녹두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초여름 노곤한 햇볕 아래 마당의 평상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소일하는 녹두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바로 30여 년 전쯤의 우리 집 앞마당 풍경이 꾀 많은 토끼 두 마리와 새콩 할매네 손자 녹두와 함께 2010년에 불쑥 튀어 나왔다. 책 몇 권 옆에 쌓아두고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고 있으면 얼음 동동 띄운 미숫가루나 시원한 수박, 찐 감자, 찐 옥수수 등의 간식거리가 늦은 밤까지 계속 이어지곤 했다. 하늘 바라보며 갖가지 형상들의 기묘한 구름들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스르륵 졸음에 못 이겨 낮잠에 빠져들기도 했다. 해가 지고 나서는 모기나 나방들 쫓으려 모깃불 피워놓고 늦은 밤까지 무슨 수다가 그리 길어졌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책에서 읽은 이야기들을 귀를 쫑긋 세우며 재미있어 하던 동생들에게 책 내용을 조금이라도 더 극적으로 전하려고 애를 쓰지 않았었나 싶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도시는 그 영역을 점점 더 넓혀가고 그 주변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 가고 있으니 더군다나 이렇게 확 트인 마당을 갖고 있는 집에 사는 혜택을 누리는 도시 아이들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녹두네 마당에서 펼쳐진 한바탕 소동이 부러운 이유는 어쩌면 여름 낮의 꿈인 듯 환상인 듯 감쪽같은 현실인 듯한 두 토끼와의 일련의 사건들이 아니라 마당 한편의 나무 그늘에 자리한 평상에서 만들어갈 여름날의 추억이 아닐까. 마당 한 편에는 텃밭을 들이고 평상을 하나 펼쳐두고 빨랫줄 길게 매어두고 중간에 바지랑대로 지탱해두고 한가득 널어둔 빨래가 바람에 펄럭거리는 풍경...그 속에 내 아이가 있다면 아이도 나도 행복할 것 같다. 아...꿈이라도 야무지게 꿔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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