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을 찾아간 소년 네버랜드 세계 옛이야기 14
백희나 글 그림 / 시공주니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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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복여행설화’라고 불러야 할까? 복을 찾아 험난한 여행을 떠나 결국 깨달음을 얻거나 그 보상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들 중 하나다. 각 나라별로 이런 구복설화들이 넘쳐나고 우리나라에도 하늘나라 하늘님께 복 타러 간 총각 이야기가 있다. 다만 이 이야기의 무대는 노르웨이라는 것과 단순히 운 없음을 한탄해 하늘님께 복을 받겠다고 떠난 게 아니라 북풍이 날려버린 오트밀 가루를 되찾아 오겠다는 야무진 각오로 길을 떠났다는 게 다를 뿐이다. 익숙한 주제의 이야기가 백희나의 일러스트로 한껏 멋을 부렸다.  ‘잉크를 찍은 펜촉으로 필름 위에 북풍의 모습을 그리고, 그 필름을 그림 위에 놓고 살짝 든 채 촬영하는 기법으로 입체적인 독특한 북풍의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는 백희나표 북풍의 모습은 너무나 멋지다. 차갑고 냉소적이고 어쩌면 무자비하게 난폭할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과묵한 친절과 따스한 마음과 사람의 심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갖고 있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북풍의 모습을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더해서 표현해낸 독특하고 멋진 일러스트다.


사실, 나는 백희나의 작품 중 스토리의 창의성을 배제한다면 이 그림책이 가장 마음에 든다. 물론 스토리의 창의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옛이야기를 재구성한 글이니 참신한 맛은 없다. 그러나 백희나 일러스트의 특징들이 죄다 담겨있는 세련된 느낌의 그림에는 첫눈에 빠져버렸다. 투명하고 반입체적으로 만든 북풍의 모습과 따스하고 정겨운 오린 그림들과 느낌이 살아있는 천 조각들이 은은한 배경 안에서 저마다 멋진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특히 북풍이 오트밀 가루를 날려버리며 소년의 집 앞을 지나는 장면은 언제 봐도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근사하다.

나이도 많고 몸도 허약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소년은 날마다 창고에서 오트밀 가루를 가져다 점심을 만든다. 어느 날 지나가던 북풍이 가난한 소년의 창고에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분명한 오트밀 가루를 날려버리고 만다. 화가 난 소년은 북풍을 찾아가 오트밀 가루를 돌려받겠다고 먼 길을 떠나고 밤이 되어서야 간신히 북풍의 집에 도착한다. 북풍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용기내서 오트밀 가루를 받으러 왔다는 얘기를 하는 소년. 북풍이 날려버린 오트밀 가루가 없으면 어머니와 소년은 굶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북풍은 이미 어느 곳으로 날아가 버렸는지 모를 오트밀 가루 대신에 낡은 식탁보를 꺼내 준다. ‘식탁보야, 펼쳐져라. 한가득 먹을 것을 내놓아라.’ 주문을 외치면 음식을 한상 차려낸다는 요술식탁보였다.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멀어 여관에 들러 하룻밤을 잔 소년은 들뜬 마음에 어머니 앞에서 식탁보를 펼쳐 보이지만 요술 주문은 소용이 없었다. 쉽게 짐작되는 대로 바로 탐욕스런 여관주인이 바꿔치기를 한 것이었다. 까닭을 알 리 없는 소년은 다시 북풍을 찾아가 따지게 되고 북풍은 잠자코 금돈을 쏟아내는 늙은 양한마리를 소년에게 건넨다. 물론 이 양도 여관주인이 바꿔치기를 한다. 결국 북풍을 찾아가 마지막 선물을 받아오는데 멈추라는 말을 할 때까지 두들겨 패주는 지팡이였다. 물론 그 지팡이의 매질에 여관주인은 소년에게서 훔친 것들을 돌려주고 소년과 어머니는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앞표지 안쪽 면지의 평범한 나무액자 속 소년과 어머니의 초라한 사진과 대비를 이룬 뒷표지 안쪽 면지의 고급스러운 액자 속 소년과 어머니의 행복한 얼굴의 사진으로 이야기의 결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권선징악의 주제를 잘 표현해낸 재미있는 이야기다. 요술을 부리는 북풍의 선물과 결국 혼쭐이 나는 여관주인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북풍을 찾아가 따져 물을 수 있는 소년의 용기를 배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이야기들은 아이들 곁에 놔줘도 부담 없이 흐뭇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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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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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그 이름만으로도 책 선택을 두고 하는 고민을 말끔하게 덜어낼 수 있게 하는 작가다. 동화작가의 이름이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기도 참 어려운 일인데 백희나씨의 두 번째 창작동화 ‘달샤베트’를 두고 연예기획사와 아직도 결말이 나지 않은 싸움을 하고 있다. 첫 번째 창작동화였던 ‘구름빵’은 그 엄청난 인기와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결과물들에 대해 원작자인 백희나씨에게 돌아가는 수입이 전혀 없다고 한다. 무명의 신인 시절, 대형출판사는 원고료만 지급하는 방식으로 출판을 한다는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하는 불공정한 관행을 들이댔기 때문이라 한다. ‘해리 포터’시리즈로 일약 돈방석에 앉은 조앤 롤링 정도는 아니더라도 2004년에 출간돼서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림책 ‘구름빵’의 인세와 뮤지컬, 애니메이션, 인형, 악세서리, 빵까지...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것들에 대한 원작자의 저작료만으로도 꽤 두둑했을 것이라고 오해를 했던 적이 있었다. ‘구름빵’ 이후로 작품이 나오지 않기에 그런 생각까지 했던 건데 백희나씨가 ‘구름빵’으로 얻은 수입은 원고료 850만원이 전부였다고 하니 너무나 미안해진다. 하지만 ‘구름빵’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그녀의 차기작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그녀의 원작이 지나치게 각색되고 훼손되고 상업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일에 함께 분개하고 있는 열혈 팬들을 얻은 것으로 위로받기를 바란다.

    

<어제저녁>은 백희나씨의 1인출판사 스토리보울의 두 번째 작품이며 백희나씨의 순수창작 그림책으로 세 번째 작품이다. 책표지와 앞뒤 면지 또한 알뜰하게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필요 없는 공간이 하나도 없이 꽉 찬 그림책이다. 게다가 책을 펼치면 병풍처럼 펼쳐지는 독특한 형식이다. 백희나 라는 이름만으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기는 하지만 표지 안쪽의 면지 어디에도 간단한 작가의 소개글이나 출판사, 발행일, 초판, 몇 번이나 다시 찍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책 정보를 알려주는 기록들이 없어 의아했는데 이것 또한 재미있게 숨겨져 있어서 못 찾을 뻔했다. 양 아줌마의 깊고 깊은 털 속에서 꺼내듯 찾아냈다.^^ 백희나의 일러스트가 반 입체를 지나 입체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쓱싹쓱싹 그려낸 종이 인형을 오려낸 듯한 인물들이 미니어처의 입체적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느낌을 주던 일러스트가 이제 완벽하게 입체적인 모습들로 변화했다. 어릴 적 예쁜 의상과 장신구를 갈아입히며 놀던 종이인형이 어느새 팔다리가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는 마론인형으로 바뀌던 순간을 본 듯한 느낌이 든다. 비슷한 일러스트로 유명한 로렌 차일드의 일러스트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평면에서 오려낸 게 분명한 그림들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하는 독특한 기법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아쉽게도 이번 작품에는 친근한 종이인형들은 보이지 않는다. 독립출판이라 작품에 대해서 본인의 의도를 거의 완벽하게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 정말 만들고 싶은 방식대로 예쁘게 잘 나와서 흡족한지 모르겠다.^^

어제 저녁 정각 6시...407호의 개 부부는 피아노 페달을 밟다보면 시려오는 발가락을 감싸줄 털양말을 찾고 있었고, 207호의 양 아줌마는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고, 101호의 여우는 이틀이나 굶어서 친구 산양의 저녁 초대를 받고 기뻐하고 있었으며 304호의 오리 유모는 여덟이나 되는 아기 토끼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아기 토끼들이 빠져서 읽고 있는 그림책은 바로 백희나씨의 두 번째 창작동화 ‘달 샤베트’다.^^ 407-1호에 사는 생쥐 부인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하러 집을 나섰고 304호의 여덟 아기 토끼들의 아빠인 흰토끼씨는 기침을 연거푸 해대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감기에 걸린 모양이다. 흰토끼씨 앞으로 은쟁반 찻집의 까망고양이가 지나간다. 701호에서 주문한 초콜릿 3단 머드케이크를 배달하는 중이다. 털양말을 찾던 개 부부는 양말 한 짝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짖어대기 시작한다. 그 소리에 아기 토끼들은 흥분해서 날뛰고 놀란 양 아줌마는 열쇠를 깊은 털뭉치 속으로 떨어뜨리고 만다. 그때 앞표지에 등장했던 얼룩말이 나타나 양 아줌마를 도와 열쇠를 찾아주고 양털 속에 빠져있던 그 많은 물건들도 꺼내준다. 개 부부가 흥분해서 찾고 있던 양말 한짝도 양 아줌마의 깊은 털 속에 빠져 있었던 거다. 양말 한 짝은 생쥐 부인을 거쳐 개 부부에게도 다시 돌아가고 기분 좋아진 개 부부의 ‘즐거운 나의 집’의 노래 소리가 이웃에까지 퍼져나간다. 아기 토끼들은 노래에 맞춰 잠이 들었고 감기에 걸린 흰토끼씨는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일 없이 감기약을 먹고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것이고 이끼수프만으로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했던 여우는 때맞춰 배달된 초코릿 3단 머드케이크로 멋진 식사를 했다. 자신의 작은 선행이 이웃들에게 평화와 따스함을 선물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룩말은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지쳤다.   

 

지난 작품 ‘달샤베트’에서도 아파트라는 공간을 통해서 이웃과의 소통과 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내비쳤는데 이번 작품은 그것에 대한 구체화라고 할 수 있다. 공동구역들을 공유하고 벽과 천장과 바닥을 맞대고 살아가고 있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우울의 늪에 빠져 가라앉고 있고 누군가는 기쁨의 희열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행운처럼 선물을 받을 것이고 누군가는 무언가를 잃은 슬픔에 젖어 있을 것이다. 얼룩말의 작은 손길이 공동주택에 사는 이웃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준 것처럼 주위를 살피고 나누는 일에 망설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녁 6시...한발 한발 어렵게 꽁꽁 언 길을 걸어 올라가던 할머니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을까? 횡단보도 앞에서 찬 길바닥에 앉아 구걸을 하던 할아버지는 저녁끼니는 챙겨 드셨을까? 짧은 겨울해가 지고 따뜻한 방 안에 들어오니 오늘 스치며 만났던 이웃들의 저녁이 궁금해진다. 어제 저녁 6시 정각, 나는 내가 좋아하는 동화작가 백희나씨의 신작 ‘어제 저녁’을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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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전거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35
이철환 지음, 유기훈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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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만나는 많은 아버지의 모습들 속에서 나는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그런데 내 아버지와 많은 부분이 닮은 아버지를 바로 <아버지의 자전거>에서 만났다. 형편이 어렵게 된 친구를 돕는 것은 물론이고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의 어려운 형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분이셨다. 장사를 하셨는데 물건 값으로 과일이나 야채나 닭과 같은 것들로 셈하자는 사람들을 뿌리치지 못하고 받아오시는 게 흔한 일이었다. 돌아가시기 한 해전, 그러니까 큰 병원에서 확실한 병명을 진단받은 후였다. 공개적으로 초대된 자리에서 자식이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보다 남을 먼저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사실 그 당시 너무 어렸고 별다른 유언 없이 가족들에 대한 걱정만 한가득 안고 가셨지만 이 말씀을 마지막 말씀처럼 지금까지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이철환 작가의 유년시절 기억을 토대로 실제로 고물상을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물상을 하는 아버지에게는 큰 재산이었던 고물자전거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진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돌며 고물을 수집해야하는 아버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물건이라 온 동네 골목을 뒤지며 찾아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앞에서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의 자전거가 바로 아버지의 자전거라는 걸 발견하고 서둘러 아버지에게 달려가 사실을 말한다. 아이를 따라 학교 앞에 온 아버지는 웬일인지 아버지 자전거가 분명한 그 자전거가 아버지 자전거가 아니라고 말하며 자리를 떠나기를 주저하는 아이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 곁에서 아이를 업고 김치 한 조각으로 식은 밥을 먹는 아주머니와 아이의 병원비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 주춤한 것이었다. 자전거 없이 아버지는 추워진 날씨에 걸어 다니며 고물을 수집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자전거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은 빨간 사과봉지를 달고 앞마당으로 다시 돌아왔다. 솜사탕 아저씨의 유정이는 수술비를 마련했을까?


다시 찾은 아버지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눈 속을 달리는 아이의 가방 사이로 빨간 사과가 삐져나와 보인다. 살기 힘겨워 보이는 동네,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혹독한 겨울...그 속으로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너무나 따스해 보인다. 펑펑 내리는 눈조차 따스하게 느껴진다. ‘연탄길’부터 인연이 되어 꾸준히 만나고 있는 이철환님의 글은 늘 따스하고 아련한 추억들을 건드린다. 그의 시선은 늘 낮은 곳을 향해 있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게 따스함을 베푼다는 것보다 그 속으로 들어가 함께 나누는 의미로 다가와 늘 찡한 감동을 준다.

백 마디의 말보다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서 묵묵히 전하는 메시지가 더 강한 법이다. 내 마음 속에는 아직도 아버지의 자전거가 달리고 있다. 나는 지금 아이에게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생각한다. 나보다 남을 먼저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나를 거쳐 아이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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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와 빅토르 지그재그 16
드니 베치나 지음, 필립 베아 그림, 이정주 옮김 / 개암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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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거 알아요? ‘울다’와 ‘웃다’는 받침 하나 차이예요. 작은 것 하나만 바꿔도 크게 달라져요.!』

오...이럴 수가... 빅토르는 우리 아이의 완벽 재현이다.(아차차,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으니 완벽 재현은 약간 과장된 말임을 밝혀둔다.^^) 유치원에 들어가서 한두 달은 거의 매일, 또 한두 달은 가끔씩 여러 이유를 들어 울었던 현실의 우리 아이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다섯 달 내내 갖가지 이유를 들어 아침저녁으로 울어댔다는 세계 최고 울보 떼쟁이 빅토르 4세의 이야기가 겹쳐서 아주 흥미로웠다.

 

빅토르는 초등학교 입학 첫날부터 울어댔다. 글을 배우는 것도 싫고 칠판에 나가 글을 쓰는 것도 싫고 쉬는 시간에 나가 노는 것도 싫고 쉬는 시간이 끝나가는 것도 싫고 앞에 앉은 남자애가 친구하자고 해서 싫고...심지어 담임선생님이 초록 옷을 입었다고 연필을 다 써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해서 등등의 수십 수백 가지 이유를 달아서 매일 그렇게 울어대곤 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눈물이 나와야 하는 여러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다. 억지로 눈물을 유도해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울고 떼쓰면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할아버지인 빅토르 1세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사람들한테 칭찬 받는 완벽한 아이가 되고 싶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빅토르에게 책을 한권 선물한다. 그 책은 어떤 상황에서든 완벽한 아이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해주는 완벽 지침서처럼 보였다. 얼룩덜룩 소가죽 표지에 싸인 이 작은 책 한권은 빅토르는 물론이고 동네 모든 아이들까지 완벽한 아이들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집을 나서면 줄 맞춰서 교통신호도 잘 지켰고 옷차림도 항상 단정했고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았고 예습 복습도 빼먹지 않았으며 집에서도 예의 바르고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다 했기에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늘어놓을 일이 없어졌다. 그야말로 완벽한, 누구에게 완벽한? 어른들에게 완벽한 아이들이 된 것이다. 그런데 뭔가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조짐이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친구 모리스의 ‘방귀사건’이 터진다. 책이 이르는 대로 방귀를 참고 참았던 모리스는 결국 병원에 실려가서 세 시간 내리 방귀를 뀌었고 그 냄새에 간호사 두 명이 질식해서 치료를 받고 있고 그 병원은 임시휴업을 하는 사태가 벌어진 거다. 결국 모리스의 병원행으로 빅토르 1세 할아버지가 빅토르에게 준 책이 알려졌고 전교생과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책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다.

얼룩덜룩 소가죽 표지에 싸여 보이지 않았던 이 책의 제목은 ‘어떻게 하면 멍청한 완벽주의자가 되고, 평생을 그렇게 살 수 있을까?’였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듯 보였던 빅토르와 아이들은 사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들의 신호에 맞춰 움직이는 무선조종로봇이 되는 길을 스스로 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장의 칭찬과 평화는 있을지 몰라도 실수를 통해 배우는 희열과 도전을 통한 짜릿함과 두려움을 정복한 기쁨처럼 톡 쏘는 맛이 빠져버린 밍밍하고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갈 뻔했다는 거다. 성공과 출세, 더 나은 삶이라는 인생계획을 짜놓고 아이를 그 틀에 맞춰서 부족하면 억지로 늘이고 넘치면 더 큰 틀을 들이대면서 윽박지르고 무리한 요구를 서슴지 않으면서 결국 멍청한 완벽주의자로 가는 길로 아이를 몰아세우고 있는 게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빅토르와 빅토르>는 전편인 <천하무적 빅토르>에 이은 빅토르 집안의 이야기다. <천하무적 빅토르>에서는 빅토르 1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서 겁 많고 소심한 아이가 천하무적 갑옷 뒤로 숨으려 했던 두려움과 아픔과 불안한 마음을 조금씩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리고 <빅토르와 빅토르>에서는 완벽하진 않지만 ‘나다운 나’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빅토르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집에 빅토르가 네 명이나 되지만 할아버지 빅토르 1세는 세계에서 가장 큰 틀니 회사 사장으로 용감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고, 아빠 빅토르 2세는 항구에서 일하는 감독관으로 목소리가 아빠만큼 우렁찬 사람은 없으며, 고모네 고양이 빅토르 3세는 어디가나 존경받는 위풍당당 수고양이다. 이름은 같은 빅토르지만 제각각 다른 빅토르다. 꼬마 빅토르는 할아버지처럼 용감하고 아빠처럼 목소리도 우렁차고 고모네 고양이처럼 위풍당당한 빅토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지라도 괜찮다. 빅토르는 빅토르니까. 세계 최고 울보 떼쟁이 빅토르 4세의 ‘어떻게 하면 나다운 내가 되고, 나답게 살 수 있을까?’라는 책이 지금은 백지에서 시작하지만 앞으로 개성 넘치게 전개되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에게도 이런 책의 집필을 권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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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나의 기차여행
카트린 쉐러 글.그림, 지영은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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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소개되는 그림책들은 이야기의 소재나 구성이 워낙 다채로워서 웬만큼 신선해서는 그 효과를 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 책 처음 한두 장을 넘겨보는데 지금까지의 그림책들과는 다른 틀을 잡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작가와 이야기 속 주인공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생중계로 보여주고 있다. 기발하고 독특하다. 작업 도구들이 가득한 작가의 작업책상 위, 펼쳐진 종이에 헌사를 적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멋진 기차여행을 위한 여섯 량의 줄줄이 기차를 그리고 객차에 탄 승객들을 그리고 이 이야기를 끌어나갈 주인공 분홍돼지를 한 마리 그린다. 그런데 갑자기 이 분홍돼지가 화가아줌마한테 말을 걸어온다. 평범한 분홍돼지 말고 멋진 점을 하나 그려달라고 당돌한 주문을 하는 것이다. 점의 위치 점의 색깔까지 지정하며 꽤 까다롭게 굴더니 마음에 드는 이름까지 결정한다.



화가아줌마는 어깨 위에 회색과 파란색이 섞인 근사한 점이 있는 분홍돼지 요한나의 요구대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기차는 굴속을 통과하고, 커다란 기차역에 들러서는 엄마아빠와 떨어져 멋대로 다른 기차에 올라탄 꼬마 북극곰을 구하기 위해 꼬마 북극곰이 기차에 올라타기 전 그림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제 요한나는 밤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 물론 화가아줌마에게 요구한 시간이다. 기차가 지나는 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기찻길 옆 세상 이야기도 들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만나게 된 또 다른 기차...그곳에는 다른 돼지가 앉아 있다. 셔츠를 벗어 흔들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서로의 이름을 확인한 요한나와 요나탄은 그저 지나쳐갈 뿐이고 화가아줌마에게 졸라서 받은 셔츠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셔츠를 잃어버리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셔츠를 흔들지 않았다면 요나탄이 자신을 보지 못했을 것이니 소용없다는 사실에 풀이 죽어 있는 요한나의 객실에 요나탄을 그려주는 작가 아줌마. 객실에 나란히 앉은 요한나와 요나탄은 이제 둘이서 남은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으니 작가 아줌마는 이쯤에서 빠져달라고 부탁한다. ‘잘해 봐, 너희 둘’ 그렇게 둘을 남겨두고 요한나의 이야기에서 빠져나온 화가아줌마는 화물선을 그리고 있다. 다음 이야기는 화물선에서 펼쳐지려나 보다. 

 

많은 생각들을 짊어지고 기차에 올라타서 흔들거리는 기차의 진동에 몸을 맡기고 달리다가 목적지에 내려서면 그 생각의 무게가 부쩍 가벼워지거나 오히려 더 묵직해졌음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오롯이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 기차여행의 많은 매력 중에 내겐 단연 으뜸이었다. 컴컴한 굴속을 지나고 강물 위 아슬아슬한 철교도 달리고 시야가 탁 트인 들판을 거침없이 달리기도 하는 기차는 굴곡 있는 인생에 비유되기도 한다. 요한나의 남은 기차 여행에서도 즐겁고 떠들썩한 이야기들과 더불어 가끔은 슬픈 이야기도 함께할 것이다. 너무 유쾌하기만 한 얘기는 밋밋해서 재미없잖니?^^ 내려야 할 곳에서 못 내릴 수도 있을 것이고, 꼬마 북극곰처럼 엉뚱한 기차를 갈아탈 수도 있을 것이고, 마음이 끌리는 낯선 간이역에 내리고 싶어질 수도 있을 거야. 기차는 그렇게 너와 함께 달려갈거야, 요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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