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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와 빅토르 ㅣ 지그재그 16
드니 베치나 지음, 필립 베아 그림, 이정주 옮김 / 개암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근데 그거 알아요? ‘울다’와 ‘웃다’는 받침 하나 차이예요. 작은 것 하나만 바꿔도 크게 달라져요.!』
오...이럴 수가... 빅토르는 우리 아이의 완벽 재현이다.(아차차,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으니 완벽 재현은 약간 과장된 말임을 밝혀둔다.^^) 유치원에 들어가서 한두 달은 거의 매일, 또 한두 달은 가끔씩 여러 이유를 들어 울었던 현실의 우리 아이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다섯 달 내내 갖가지 이유를 들어 아침저녁으로 울어댔다는 세계 최고 울보 떼쟁이 빅토르 4세의 이야기가 겹쳐서 아주 흥미로웠다.
빅토르는 초등학교 입학 첫날부터 울어댔다. 글을 배우는 것도 싫고 칠판에 나가 글을 쓰는 것도 싫고 쉬는 시간에 나가 노는 것도 싫고 쉬는 시간이 끝나가는 것도 싫고 앞에 앉은 남자애가 친구하자고 해서 싫고...심지어 담임선생님이 초록 옷을 입었다고 연필을 다 써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해서 등등의 수십 수백 가지 이유를 달아서 매일 그렇게 울어대곤 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눈물이 나와야 하는 여러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다. 억지로 눈물을 유도해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울고 떼쓰면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할아버지인 빅토르 1세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사람들한테 칭찬 받는 완벽한 아이가 되고 싶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빅토르에게 책을 한권 선물한다. 그 책은 어떤 상황에서든 완벽한 아이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해주는 완벽 지침서처럼 보였다. 얼룩덜룩 소가죽 표지에 싸인 이 작은 책 한권은 빅토르는 물론이고 동네 모든 아이들까지 완벽한 아이들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집을 나서면 줄 맞춰서 교통신호도 잘 지켰고 옷차림도 항상 단정했고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았고 예습 복습도 빼먹지 않았으며 집에서도 예의 바르고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다 했기에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늘어놓을 일이 없어졌다. 그야말로 완벽한, 누구에게 완벽한? 어른들에게 완벽한 아이들이 된 것이다. 그런데 뭔가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조짐이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친구 모리스의 ‘방귀사건’이 터진다. 책이 이르는 대로 방귀를 참고 참았던 모리스는 결국 병원에 실려가서 세 시간 내리 방귀를 뀌었고 그 냄새에 간호사 두 명이 질식해서 치료를 받고 있고 그 병원은 임시휴업을 하는 사태가 벌어진 거다. 결국 모리스의 병원행으로 빅토르 1세 할아버지가 빅토르에게 준 책이 알려졌고 전교생과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책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다.
얼룩덜룩 소가죽 표지에 싸여 보이지 않았던 이 책의 제목은 ‘어떻게 하면 멍청한 완벽주의자가 되고, 평생을 그렇게 살 수 있을까?’였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듯 보였던 빅토르와 아이들은 사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들의 신호에 맞춰 움직이는 무선조종로봇이 되는 길을 스스로 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장의 칭찬과 평화는 있을지 몰라도 실수를 통해 배우는 희열과 도전을 통한 짜릿함과 두려움을 정복한 기쁨처럼 톡 쏘는 맛이 빠져버린 밍밍하고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갈 뻔했다는 거다. 성공과 출세, 더 나은 삶이라는 인생계획을 짜놓고 아이를 그 틀에 맞춰서 부족하면 억지로 늘이고 넘치면 더 큰 틀을 들이대면서 윽박지르고 무리한 요구를 서슴지 않으면서 결국 멍청한 완벽주의자로 가는 길로 아이를 몰아세우고 있는 게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빅토르와 빅토르>는 전편인 <천하무적 빅토르>에 이은 빅토르 집안의 이야기다. <천하무적 빅토르>에서는 빅토르 1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서 겁 많고 소심한 아이가 천하무적 갑옷 뒤로 숨으려 했던 두려움과 아픔과 불안한 마음을 조금씩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리고 <빅토르와 빅토르>에서는 완벽하진 않지만 ‘나다운 나’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빅토르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집에 빅토르가 네 명이나 되지만 할아버지 빅토르 1세는 세계에서 가장 큰 틀니 회사 사장으로 용감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고, 아빠 빅토르 2세는 항구에서 일하는 감독관으로 목소리가 아빠만큼 우렁찬 사람은 없으며, 고모네 고양이 빅토르 3세는 어디가나 존경받는 위풍당당 수고양이다. 이름은 같은 빅토르지만 제각각 다른 빅토르다. 꼬마 빅토르는 할아버지처럼 용감하고 아빠처럼 목소리도 우렁차고 고모네 고양이처럼 위풍당당한 빅토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지라도 괜찮다. 빅토르는 빅토르니까. 세계 최고 울보 떼쟁이 빅토르 4세의 ‘어떻게 하면 나다운 내가 되고, 나답게 살 수 있을까?’라는 책이 지금은 백지에서 시작하지만 앞으로 개성 넘치게 전개되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에게도 이런 책의 집필을 권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