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한나의 기차여행
카트린 쉐러 글.그림, 지영은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요즘 소개되는 그림책들은 이야기의 소재나 구성이 워낙 다채로워서 웬만큼 신선해서는 그 효과를 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 책 처음 한두 장을 넘겨보는데 지금까지의 그림책들과는 다른 틀을 잡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작가와 이야기 속 주인공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생중계로 보여주고 있다. 기발하고 독특하다. 작업 도구들이 가득한 작가의 작업책상 위, 펼쳐진 종이에 헌사를 적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멋진 기차여행을 위한 여섯 량의 줄줄이 기차를 그리고 객차에 탄 승객들을 그리고 이 이야기를 끌어나갈 주인공 분홍돼지를 한 마리 그린다. 그런데 갑자기 이 분홍돼지가 화가아줌마한테 말을 걸어온다. 평범한 분홍돼지 말고 멋진 점을 하나 그려달라고 당돌한 주문을 하는 것이다. 점의 위치 점의 색깔까지 지정하며 꽤 까다롭게 굴더니 마음에 드는 이름까지 결정한다.
화가아줌마는 어깨 위에 회색과 파란색이 섞인 근사한 점이 있는 분홍돼지 요한나의 요구대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기차는 굴속을 통과하고, 커다란 기차역에 들러서는 엄마아빠와 떨어져 멋대로 다른 기차에 올라탄 꼬마 북극곰을 구하기 위해 꼬마 북극곰이 기차에 올라타기 전 그림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제 요한나는 밤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 물론 화가아줌마에게 요구한 시간이다. 기차가 지나는 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기찻길 옆 세상 이야기도 들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만나게 된 또 다른 기차...그곳에는 다른 돼지가 앉아 있다. 셔츠를 벗어 흔들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서로의 이름을 확인한 요한나와 요나탄은 그저 지나쳐갈 뿐이고 화가아줌마에게 졸라서 받은 셔츠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셔츠를 잃어버리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셔츠를 흔들지 않았다면 요나탄이 자신을 보지 못했을 것이니 소용없다는 사실에 풀이 죽어 있는 요한나의 객실에 요나탄을 그려주는 작가 아줌마. 객실에 나란히 앉은 요한나와 요나탄은 이제 둘이서 남은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으니 작가 아줌마는 이쯤에서 빠져달라고 부탁한다. ‘잘해 봐, 너희 둘’ 그렇게 둘을 남겨두고 요한나의 이야기에서 빠져나온 화가아줌마는 화물선을 그리고 있다. 다음 이야기는 화물선에서 펼쳐지려나 보다.
많은 생각들을 짊어지고 기차에 올라타서 흔들거리는 기차의 진동에 몸을 맡기고 달리다가 목적지에 내려서면 그 생각의 무게가 부쩍 가벼워지거나 오히려 더 묵직해졌음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오롯이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 기차여행의 많은 매력 중에 내겐 단연 으뜸이었다. 컴컴한 굴속을 지나고 강물 위 아슬아슬한 철교도 달리고 시야가 탁 트인 들판을 거침없이 달리기도 하는 기차는 굴곡 있는 인생에 비유되기도 한다. 요한나의 남은 기차 여행에서도 즐겁고 떠들썩한 이야기들과 더불어 가끔은 슬픈 이야기도 함께할 것이다. 너무 유쾌하기만 한 얘기는 밋밋해서 재미없잖니?^^ 내려야 할 곳에서 못 내릴 수도 있을 것이고, 꼬마 북극곰처럼 엉뚱한 기차를 갈아탈 수도 있을 것이고, 마음이 끌리는 낯선 간이역에 내리고 싶어질 수도 있을 거야. 기차는 그렇게 너와 함께 달려갈거야, 요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