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백희나...그 이름만으로도 책 선택을 두고 하는 고민을 말끔하게 덜어낼 수 있게 하는 작가다. 동화작가의 이름이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기도 참 어려운 일인데 백희나씨의 두 번째 창작동화 ‘달샤베트’를 두고 연예기획사와 아직도 결말이 나지 않은 싸움을 하고 있다. 첫 번째 창작동화였던 ‘구름빵’은 그 엄청난 인기와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결과물들에 대해 원작자인 백희나씨에게 돌아가는 수입이 전혀 없다고 한다. 무명의 신인 시절, 대형출판사는 원고료만 지급하는 방식으로 출판을 한다는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하는 불공정한 관행을 들이댔기 때문이라 한다. ‘해리 포터’시리즈로 일약 돈방석에 앉은 조앤 롤링 정도는 아니더라도 2004년에 출간돼서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림책 ‘구름빵’의 인세와 뮤지컬, 애니메이션, 인형, 악세서리, 빵까지...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것들에 대한 원작자의 저작료만으로도 꽤 두둑했을 것이라고 오해를 했던 적이 있었다. ‘구름빵’ 이후로 작품이 나오지 않기에 그런 생각까지 했던 건데 백희나씨가 ‘구름빵’으로 얻은 수입은 원고료 850만원이 전부였다고 하니 너무나 미안해진다. 하지만 ‘구름빵’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그녀의 차기작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그녀의 원작이 지나치게 각색되고 훼손되고 상업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일에 함께 분개하고 있는 열혈 팬들을 얻은 것으로 위로받기를 바란다.

    

<어제저녁>은 백희나씨의 1인출판사 스토리보울의 두 번째 작품이며 백희나씨의 순수창작 그림책으로 세 번째 작품이다. 책표지와 앞뒤 면지 또한 알뜰하게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필요 없는 공간이 하나도 없이 꽉 찬 그림책이다. 게다가 책을 펼치면 병풍처럼 펼쳐지는 독특한 형식이다. 백희나 라는 이름만으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기는 하지만 표지 안쪽의 면지 어디에도 간단한 작가의 소개글이나 출판사, 발행일, 초판, 몇 번이나 다시 찍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책 정보를 알려주는 기록들이 없어 의아했는데 이것 또한 재미있게 숨겨져 있어서 못 찾을 뻔했다. 양 아줌마의 깊고 깊은 털 속에서 꺼내듯 찾아냈다.^^ 백희나의 일러스트가 반 입체를 지나 입체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쓱싹쓱싹 그려낸 종이 인형을 오려낸 듯한 인물들이 미니어처의 입체적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느낌을 주던 일러스트가 이제 완벽하게 입체적인 모습들로 변화했다. 어릴 적 예쁜 의상과 장신구를 갈아입히며 놀던 종이인형이 어느새 팔다리가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는 마론인형으로 바뀌던 순간을 본 듯한 느낌이 든다. 비슷한 일러스트로 유명한 로렌 차일드의 일러스트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평면에서 오려낸 게 분명한 그림들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하는 독특한 기법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아쉽게도 이번 작품에는 친근한 종이인형들은 보이지 않는다. 독립출판이라 작품에 대해서 본인의 의도를 거의 완벽하게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 정말 만들고 싶은 방식대로 예쁘게 잘 나와서 흡족한지 모르겠다.^^

어제 저녁 정각 6시...407호의 개 부부는 피아노 페달을 밟다보면 시려오는 발가락을 감싸줄 털양말을 찾고 있었고, 207호의 양 아줌마는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고, 101호의 여우는 이틀이나 굶어서 친구 산양의 저녁 초대를 받고 기뻐하고 있었으며 304호의 오리 유모는 여덟이나 되는 아기 토끼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아기 토끼들이 빠져서 읽고 있는 그림책은 바로 백희나씨의 두 번째 창작동화 ‘달 샤베트’다.^^ 407-1호에 사는 생쥐 부인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하러 집을 나섰고 304호의 여덟 아기 토끼들의 아빠인 흰토끼씨는 기침을 연거푸 해대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감기에 걸린 모양이다. 흰토끼씨 앞으로 은쟁반 찻집의 까망고양이가 지나간다. 701호에서 주문한 초콜릿 3단 머드케이크를 배달하는 중이다. 털양말을 찾던 개 부부는 양말 한 짝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짖어대기 시작한다. 그 소리에 아기 토끼들은 흥분해서 날뛰고 놀란 양 아줌마는 열쇠를 깊은 털뭉치 속으로 떨어뜨리고 만다. 그때 앞표지에 등장했던 얼룩말이 나타나 양 아줌마를 도와 열쇠를 찾아주고 양털 속에 빠져있던 그 많은 물건들도 꺼내준다. 개 부부가 흥분해서 찾고 있던 양말 한짝도 양 아줌마의 깊은 털 속에 빠져 있었던 거다. 양말 한 짝은 생쥐 부인을 거쳐 개 부부에게도 다시 돌아가고 기분 좋아진 개 부부의 ‘즐거운 나의 집’의 노래 소리가 이웃에까지 퍼져나간다. 아기 토끼들은 노래에 맞춰 잠이 들었고 감기에 걸린 흰토끼씨는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일 없이 감기약을 먹고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것이고 이끼수프만으로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했던 여우는 때맞춰 배달된 초코릿 3단 머드케이크로 멋진 식사를 했다. 자신의 작은 선행이 이웃들에게 평화와 따스함을 선물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룩말은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지쳤다.   

 

지난 작품 ‘달샤베트’에서도 아파트라는 공간을 통해서 이웃과의 소통과 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내비쳤는데 이번 작품은 그것에 대한 구체화라고 할 수 있다. 공동구역들을 공유하고 벽과 천장과 바닥을 맞대고 살아가고 있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우울의 늪에 빠져 가라앉고 있고 누군가는 기쁨의 희열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행운처럼 선물을 받을 것이고 누군가는 무언가를 잃은 슬픔에 젖어 있을 것이다. 얼룩말의 작은 손길이 공동주택에 사는 이웃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준 것처럼 주위를 살피고 나누는 일에 망설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녁 6시...한발 한발 어렵게 꽁꽁 언 길을 걸어 올라가던 할머니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을까? 횡단보도 앞에서 찬 길바닥에 앉아 구걸을 하던 할아버지는 저녁끼니는 챙겨 드셨을까? 짧은 겨울해가 지고 따뜻한 방 안에 들어오니 오늘 스치며 만났던 이웃들의 저녁이 궁금해진다. 어제 저녁 6시 정각, 나는 내가 좋아하는 동화작가 백희나씨의 신작 ‘어제 저녁’을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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