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양장)
로버트 뉴튼 펙 지음, 김옥수 옮김, 고성원 그림 / 사계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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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고조시키며 몰아가는 슬픔도 없고, 참았다 끝끝내 터진 눈물도 없다. 그러나 나는 버몬트 지방의 가난한 셰이커 교도 집안의 열두 살 소년의 일상을 따라가다가 스무 장도 채 남지 않은 책 후반부에서 그만 펑펑 눈물을 쏟고 말았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에 이런 복병을 숨겨두고 있을 줄 몰랐다. 사과 수확을 앞둔 가을날, 그저 담담하게 지난 여름에 자벌레가 극성이라 사과 싹을 너무 많이 먹어버려서 올해 수확할 사과가 많지 않다는 얘기를 나누던 아버지와 열두 살 아들 로버트 사이의 대화에서 다음해 봄에는 제대로 자벌레를 퇴치하라고 일러주시던 아버지는 자신이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말을 한다. 그해 겨울은 가난한 로버트네 집에 지독한 시련이었다.

지난 봄, 자신의 옷을 놀리는 친구 때문에 학교 수업을 빼먹고 집으로 오던 로버트는 이웃집 태너 아저씨네 젖소 ‘행주치마’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출산을 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잔뜩 예민해진 ‘행주치마’는 도와주려는 로버트의 마음도 모른 채 반쯤 나온 아기 송아지와 로버트를 매달고 내달리지만 온 몸이 찢기고 ‘행주치마’에게 팔이 물린 상황에서도 아기 송아지와 ‘행주치마’의 목숨을 구한다. 로버트는 그 후로 일주일이나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다쳤지만 로버트 덕분에 ‘행주치마’와 두 마리의 송아지를 얻은 태너 아저씨는 로버트를 찾아와 예쁜 새끼 돼지 한 마리를 선물한다. 일 년쯤 후면 새끼돼지를 열 마리쯤 달고 있게 될 암퇘지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로버트는 이만큼 마음에 쏙 드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날부터 로버트는 새끼돼지 피기와 함께 들로 산으로 강으로 다니고 피기는 나날이 살이 오르고 식성이 좋아진다. 그리고 지독한 그해 겨울이 닥쳤다.

늙은 황소 솔로몬과 젖소 데이지, 달걀을 낳는 닭 몇 마리, 고양이 식구 몇 마리, 그리고 로버트의 새끼돼지 피기가 가축의 전부인 로버트네 집은 아버지가 읍내에서 돼지 도축일과 농사일로 아주 검소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몸 상태도 예전 같지 않았고, 사슴사냥용 총이 없는 아버지는 겨울철 매일 이른 새벽에 사슴사냥에 나섰지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빗속에 4시간이나 사슴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결국 기침이 심해져 폐가 안 좋아져 결국 어머니와 따로 침대를 써야할 상황이라 헛간에서 잠을 자야만 하는 상황까지 갔다. 말은 하지 않아도 로버트네 가족의 하나 남은 선택은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새끼를 낳을 수 없는 암퇘지로 판명된 피기를 잡는 방법 밖에 없었다. 돼지를 잡는 솜씨가 늘 최고인 아버지는 아들의 친구와 다름없는 피기를 잡게 되고 로버트는 잠자코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 조수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결국 울음을 터뜨린 로버트를 감싸며 말없이 위로하는 아버지의 눈물을 본다. 
 

 

그렇게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이듬 해 5월. 겨울을 넘기기 힘들 거라 말씀하셨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글을 몰라 투표도 할 수 없었고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했던 아버지는 아들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랐다.

“농사일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해야 해. 다른 사람의 돼지를 잡는 일은 해서도 안 되고, 모자를 벗어 들고 남에게 고기를 얻으려 해서도 안 된다.” (145쪽)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지만 늘 가난을 면치 못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열두 살 아들의 시선에는 애잔함이 묻어난다.

“아빠는 항상 일하세요. 쉴 줄을 모르세요. 더 큰 문제는 마음속에 너무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뭔가를 잡으려고 애를 쓰지만 항상 한 발 늦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는 시합을 하는 것 같아요.” (159쪽)

헛간에서 잠을 자던 아버지의 늦은 기상 아니, 영원히 일어날 수 없는 깊은 잠... 로버트는 그 정적을 향해 내뱉는다. “오늘 아침에는 푹 주무세요. 일어나지 않으셔도 돼요. 내가 아빠 일까지 다 할게요. 더 이상 일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제 푹 쉬세요.” 그리고 아버지가 아침마다 하던 집안일을 다해놓고 어머니와 이모에게 읍내에 가서 장의사를 모셔오겠다며 담담하게 집을 나선다. 아주 어른스럽게 모든 일을 처리하고 가까운 이웃들에게도 알리고 상주로서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 옷을 꺼내 입는다. 엄마가 오래전에 만들어준 양복은 작고 아빠의 양복은 너무 컸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그러나 엄마와 이모를 모시고 아직 5년이나 융자금을 더 갚아야 우리 땅이 되는 가난한 농부의 현실의 짐을 지기에는 너무나 어린 열세 살 로버트의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모든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던 로버트는 딱 한번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내지른다. 아버지의 양복바지와 작업구두 아버지의 셔츠를 입은 광대 같은 모습에 화가 나 “하느님 왜 이렇게 가난해야 합니까? 사는 게 지옥 같아요.” 그리고 의젓하게 장례식을 마치고 늙은 이모와 엄마를 집안으로 모셔다 놓고 나머지 아버지가 하던 저녁 농장일 들을 마무리 한다. 그리고 홀로 찾은 아버지의 무덤가.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 아빠랑 보낸 지난 13년은 정말 행복했어요.”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은 바로 성실하고 근면했던 돼지 잡는 사람, 내 아버지 헤븐 팩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일찍 철이 든 이 아이가 예사로 넘겨지지 않는다. 누구나 저마다의 기억들을 얹어서 책을 읽는다. 모든 책이 누구에게나 다 한 가지 맛일 수는 없다. 사람에 따라 그 사람의 기억에 따라 책은 밋밋할 수도 찌릿할 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을 내 슬픈 이별의 기억을 얹어 펑펑 눈물을 쏟으며 읽었다. 다음 이야기가 있다 하니 서둘러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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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뻐꾸기다 - 2009년 제15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52
김혜연 지음, 장연주 그림 / 비룡소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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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읽다보면 내 아이가 곧 함께 섞이고 호흡해야 할 학교와 또래친구들에 대해 불안하고 조마조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들이 긍정적인 희망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아이답지 않은 교활함이나 왕따나 폭력처럼 양심에 전혀 거리낌 없는 행동들로 심심찮게 거론되는 ‘요즘 아이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넘어서 불안하기까지 한 마음에 그래도 이런 아이들과 함께라면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 말이다.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소희 미르 바우가 그랬고, 이 책 「나는 뻐꾸기다」의 주인공 소년 동재가 그렇다.

 

동재는 여섯 살 때 엄마가 외삼촌 집에 맡겨두고 간 후로 엄마 얼굴을 한번도 본적이 없는 아이다. 한마디로 남의 둥지에 버려진 ‘뻐꾸기 새끼’다. 화끈한 성격으로 직설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외숙모와 조카를 데리고 사느라 왠지 외숙모에게 죽어지내는 것 같은 외삼촌과 마음 착한 사촌동생 연이와 달리 자신의 기분에 따라 퉁퉁거리고 괴롭히기도 하는 사촌형 건이 형과 함께 살고 있다. 동재의 사연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동재를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지만 당사자인 동재는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적당히 눈치도 보며 자신의 할 일도 척척 알아서 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이 건강한 아이다.  

 

동재와 우연한 일을 계기로 친하게 된 902호에 사는 아저씨는 아내와 두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혼자 살고 있는 소위 말하는 ‘기러기 아빠’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술로 달래기도 하다 결국 병원신세까지 지게 되지만 동재에게는 본 적도 없는 아빠가 바로 이 아저씨였으면 싶을 정도로 따스한 친구 같은 사람이다. 물론 외삼촌네 식구들을 피해 비밀스런 공간이 하나 생긴 것이 반갑기도 하다. 동재에게 마음껏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을 포함한 휴식과 같은 공간을 제공해 주고 양파가 잔뜩 들어간 샌드위치로 동재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하고 엄마의 주소를 알아낸 동재를 데리고 주소지인 부산까지 동재를 데려다 주며 동재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지만 사실 아저씨는 동재를 통해서 자신의 가족들을 제대로 바라볼 용기를 얻게 된다.

 

동재와 처지가 비슷한 또 한 명의 ‘뻐꾸기 새끼’가 있다. 동재의 반 친구 유희. 엄마가 일본남자와 재혼을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다. 엄마가 남겨준 바이올린을 팔아 여비를 마련해 주려고 했던 마음이 따스하고 예쁜 아이다. 아마도 동재를 엄마와 만나게 해주면 언젠가 자신도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었던 듯하다.

“동재야,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유희 엄마가 재혼했다. 그래서 유희는 엄마를 보고 싶지 않다. 이 두 문장 안에 아주 긴 이야기가 담겨 있을 거야. 너희 엄마도 그래. 오 년 동안 너를 버리고 연락도 안 했다. 알고 보니 그동안 재혼했다. 그 두 문장 안에 얼마나 길고 긴 이야기가 담겨 있겠니? 그 이야기들을 다 들어 봐야 우리는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어.”(192쪽)

 

그랬다. 동재 엄마의 그 두 문장 사이에는 아들을 오빠 집에 맡겨두고 힘들고 어렵게 살아야 했던 시간들이 있음을 동재는 알게 됐다. 그리고 아저씨네 가족이 서로 떨어져 지내고 있는 상황과 아저씨의 부인이 이혼을 원한다는 두 결정적인 문장사이에도 들어줘야 할 그리고 해야 할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음을 아저씨도 깨닫게 된 것이다. 결심하고 미국으로 가족을 만나러 간 아저씨는 다시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둘째 아들과 함께 귀국을 한다. 이제 아저씨는 ‘기러기 아빠’가 아니고 동재 또한 ‘뻐꾸기 새끼’가 아니다.   

 

남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아놓고 사라져 버리는 비정함의 상징인 뻐꾸기와 가족에 대한 정이 각별하다고 알려진 기러기를 대비시켜 정교하고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탄탄한 구성으로 마지막까지 흐트러짐 없이 끌고 간 솜씨가 돋보인다. 그리고 동재의 시선에 담겨있는 긍정적이고 밝은 메시지는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 그 시선이 닿는 곳마다 희망이 피어오르게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쉽게 덮어버리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감동과 여운을 주는 묵직한 작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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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요란 푸른아파트 문지아이들 96
김려령 지음, 신민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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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는 것들은 다 지 헐 몫을 가지고 나는 것이여. 허투루 나는 게 한나 없다니께.”

 

집은 그 집에 사는 사람을 닮아간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집은 당연히 책과 노니는 집의 향기가 나고, 화초 가꾸기를 취미로 가진 사람이 사는 집에는 사시사철 식물원이 따로 없을 것이고, 손재주가 많은 여인네가 사는 집은 집안 구석구석 앙증맞고 예쁜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고, 운동을 좋아하는 남정네가 사는 집은 헬스장을 방불케 할 운동기구들이 점령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깔끔한 성격의 사람은 집도 깔끔해서 먼지 한 톨 내려앉은 공간이 없고 반대로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는 집도 주인 따라 털털하다. 아직 나와 완벽하게 한 몸을 이룰 내 집을 장만하지 못한 나는 2년에 한 번씩 유목민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데 내가 거쳐 온 집들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해서 2년에 한 번씩 도서관으로 중고샵으로 책들을 이사보내기도 하는데 그래도 책이 많다는 얘기는 자주 듣고, 누추한 살림이지만 정돈이 잘되어있다는 소리도 듣는 편인 것을 보면 얼추 집과 사람이 닮아간다는 말이 비슷하게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하다.

<요란요란 푸른아파트>는 40년도 넘은 5층짜리 아파트 4개동이 화자로 등장한다. 논과 밭뿐이었던 곳에 처음으로 ‘푸른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만해도 그 위용을 자랑하는 고층 건물이었던 푸른 아파트는 현재 재건축 얘기로 들썩이는 곳이다. 주변은 온통 높은 빌딩들과 고층아파트들 숲이다. 푸른 아파트의 재개발이 취소되자 어마어마하게 치솟을 아파트 값을 꿈꾸던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버리지만 흉물스런 광경으로 위태롭게 버티고 서 있는 푸른 아파트는 안도의 환호성을 지른다. 푸른 아파트에 30년도 넘게 산 2동 102호에 사는 할머니 집에 기동이라는 손자가 짐짝처럼 던져진다. 생활이 빠듯한 아들 내외가 예고 없이 데려다 놓고 살집을 장만하면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영영 소식이 없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기동이는 전학 온 학교에서 첫날부터 주먹다짐을 하고 그렇잖아도 흉물스런 아파트 벽에다 낙서를 하며 돌아다닌다. 물론 기동이의 과격한 행동들 뒤에는 착한 마음들이 숨어있기는 하지만 그 마음이 행동으로는 과격하게 표출되는 것뿐이다. 새끼 밴 고양이에게 소시지를 주려던 것뿐인데 어른들 눈에는 막대기로 고양이를 때리는 것으로 오해를 샀고, 단아를 만나면 늘 퉁퉁거리지만 주머니 속에는 예쁜 머리끈을 주려고 넣어갖고 다닌다. 벽에 낙서를 그리고 다니는 것도 사실 기동이는 만화가 ‘천기호’처럼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가슴 따스한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가 꿈인 아이다.

푸른 아파트가 세워진지 십 년쯤 지나서 벼락이 심하게 치던 날 벼락으로부터 사람들을 용감하게 구하면서 벼락을 맞았던 1동은 그 뒤로 이상해졌다. 아이 같기도 하고 치매에 걸린 노인처럼 작은 일에도 노여워하기도 하며 씩씩한 대장에서 정신 나간 모습이 되어버렸다. 1동에는 기동이가 전학 온 첫날 기동이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후로 기동이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주한이네가 산다. 2동에는 기동이와 기동이 할머니가 살고 있다. 정 많고 마음 따스한 기동이 할머니를 닮아 2동 또한 누구든 잘 감싸주고 마음이 따스하다. 3동엔 기동이와 같은 반 친구 단아가 산다. 기동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단아를 부자라고 오해했지만 교장선생님인 할아버지가 아빠 빚을 대신 갚고 있고 자신처럼 단아도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4동은 푸른 아파트의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해서 어두침침한 분위기 탓에 귀신이 산다는 소문이 돈다. 이런 4동에는 ‘괴담’시리즈 만화를 그리는 괴짜 만화가가 살고 있으니 집과 사람의 궁합이 맞아 보인다. 만화가가 꿈인 기동이는 4동에 사는 만화가 아저씨를 찾아가게 되고 괴찌 만화가는 기동이에게 퉁박을 주면서도 기동이가 찾아오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기동이가 좋아하는 ‘하늘 별 바다 강 산 가족 이야기’라는 만화를 그린 천기호 만화가가 바로 이 괴짜 아저씨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무슨 천기호 씨가 괴담시리즈를 그리고 있냐며 믿기지 않는다는 기동에게 ‘만화책만 나오면 다 먹고 사냐? 신부전증 걸린 우리 아버지 혈액 투석은 누가 거져 해 준대?’라는 말로 속내를 보인다.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다 저마다의 사연들 하나씩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40년도 넘은 낡은 푸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들 모두 한결같이 마음 찡하다. 질질 짜는 신파로 몰아갔다면 참 진부한 소재가 됐을 법한데 집의 시선으로 품고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설정으로 아주 유쾌하게 풀어냈다. 굵직한 문학상들을 휩쓸면서 화려하게 데뷔한 김려령 작가의 행보에 주목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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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은 사고뭉치 동화는 내 친구 72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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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주 케케묵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케케묵은 이야기라고 해서 시시하고 재미없을 거라는 편견은 버려주길 바래요. 그림이 살짝 촌스럽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생활방식이 좀 구식이라는 것만 빼면 말이지요. ‘말괄량이 삐삐’로 잘 알려진 스웨덴의 어린이책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삐삐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 ‘에밀’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963년에 태어난 이야기니까 이야기 속 말썽꾸러기 에밀이 현실 속에서 나이를 먹었다면 50이 넘은 나이의 스웨덴의 스몰란드 지방 뢰네베르그 마을의 회장님이 되어 있겠지요. 도대체 이런 사고뭉치가 커서 뭐가 될까 하며 혀를 끌끌 차는 어른들에게 린드그렌은 에밀이 어른이 되어서 이 마을의 회장님이 된다는 힌트를 살짝 전해준답니다. 그러나 에밀은 백년이 지나고 이백년이 지나도 영원한 말썽꾸러기 사고뭉치 일곱 살이에요. 영원히 늙지 않는 샘물에 빠져 사는 셈이지요.^^

 

에밀의 이야기는 린드그렌 할머니가 칭얼대는 손자를 달래주기 위해서 즉석에서 지어낸 이야기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말썽꾸러기 에밀의 이야기에 아마도 눈을 반짝이며 빠져들었을 거예요. 어른들의 시각에는 고개가 절레절레 돌아갈 말썽으로 보이는 에밀의 행동들이 아이들에게는 아마도 신나는 모험이라 여겨졌을 거구요. 에밀의 착한 여동생 이다가 오빠의 말썽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도 나는 살짝 에밀의 편을 들어주고 싶어요. 에밀은 고집불통에다 호기심이 왕성해서 궁금한 게 있으면 생각하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일없이 당장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일 뿐이라고 말이지요. 그럼 에밀의 말썽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들어보실래요? 이 이야기를 다 듣고도 혀를 끌끌 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될까요?

 

<에밀은 사고뭉치> 이 책에서는 ‘에밀이 수프 단지를 뒤집어쓴 날’ 5월 22일, 에밀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날 6월 10일, 에밀이 도둑을 잡은 날 7월8일. 이렇게 3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답니다. 에밀이 좋아하는 고기 수프를 너무나 열심히 먹어서 수프 단지에 머리를 처박고 핥아먹으려고 했는데 머리가 빠지지 않는 거예요. 당장 부지깽이로 단지를 깨서 에밀의 머리를 꺼내주자는 엄마와 4크로나나 하는 비싼 수프단지를 깨지 말고 병원 의사선생님 진료비 3크로나를 드리고 1크로나를 벌자는 아빠가 맞섭니다. 결국 에밀은 마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지요. 하지만 진찰실에 들어가자마자 앞이 보이지 않았던 에밀은 책상 모서리에 부딪쳐 수프 단지가 둘로 쪼개지고 말지요. 4크로나를 날렸다는 아빠에게 의사선생님은 원래 수프 단지에 머리가 끼인 아이의 진료비는 5크로나를 받으니 1크로나를 벌었다고 하지요. 두 동강이 난 수프 단지를 들고 나오며 1크로나를 벌었다고 생각하며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는 에밀에게 5요레를 주지요. 그러나 에밀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는 아이가 아니지요. 그 동전을 삼켜버렸답니다. 다시 병원으로 가자는 엄마와 실익을 따지는 아빠, 결국 아들의 건강이 걱정되었던 부모님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지요. 이틀만 지나면 저절로 동전이 나올 거라는 의사선생님 말씀에 또다시 신난 아빠. 동전을 빨리 밀어내기 위해 빵을 먹어주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핑계로 빵집의 맛난 빵을 사먹으려는 에밀은 결국 뱃속에 들어있는 5요레를 담보로 빵을 먹게 되지요. 오늘 돈을 많이 벌었다고 생각한 아빠는 딸 이다에게 줄 사탕까지 사서 집으로 돌아와 붙이기 좋게 두 조각으로 쪼개진 수프단지를 접착제로 붙이지요. 얘기가 여기서 끝나면 아주 만족한 하루였을 텐데 에밀이 누구던가요? 마지막 말썽펀치를 날려주지요. 어떻게 머리가 수프단지 속에 들어갔는지 궁금해 하는 여동생 앞에서 몸소 시범을 보여주네요.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차를 타고 그 여정을 되풀이해야 할까요? 아니에요. 에밀의 엄마는 부지깽이를 집어 들어 수프단지를 내리쳤답니다. 아빠에게는 이틀 뒤 에밀에게서 돌려받은 5요레가 위안이 되었답니다. 6월 10일과 7월 8일의 이야기도 이런 식이랍니다. 이다를 국기 게양대에 깃발 대신 매달고 손님들에게 대접할 소시지를 다 먹어치우고 알프레드 아저씨가 만들어준 나무총으로 도둑을 잡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나머지 날들의 에밀은 얌전했냐고요? 그 질문은 사고뭉치 에밀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말이지요.^^ 에밀의 장난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카트풀트 농장의 여러 날 줄 에밀이 한꺼번에 여러 가지 사고를 친 몇 날의 이야기랍니다. 참고로 에밀이 그런대로 얌전하게 지낸 날은 이다를 딱 한번 꼬집고 커피 크림 통을 딱 한번 뒤엎고, 고양이를 쫓아다녔을 뿐인 3월 7일뿐이었답니다.^^

나는 겁 많고 소심하고 마음이 여려서 작은 일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하는 내 아들을 에밀과 섞어서 반씩 나누고 싶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내 아들 앞에서 ‘안 돼’라든가 ‘하지 마’라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마다 그냥 꿀꺽 삼켜버리려고 합니다. 말썽꾸러기라도 좋다, 씩씩하게만 자라다오.~의 완벽 롤모델이 바로 에밀 아니겠어요? 호호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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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메이 아줌마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13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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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보낸 그 상실감은 몇날며칠 동안 목이 쉬도록 울어대는 울음 안에만 있는 게 아니다. 차라리 요란스런 울음으로 이별을 했다면 그 슬픔과 상실감과 허무함과 무기력함에서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바보처럼 최근에서야 깨달은 내게 딥 워터 마을 산자락 낡고 녹슨 트레일러 집에 사는 오브 아저씨와 열두 살 소녀 서머의 조용한 그리움이 서럽도록 시리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거나 교회에 다니거나 아이를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친척이 죽어서 슬픔에 잠기는 시간도 정해진 틀에 따르기를 바란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와 나는 장례식장을 찾아가 사무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목사를 찾아가 종교 절차를 얘기했으며, 그 전에는 얼굴도 보기 힘들었던 수십 명의 친척의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우리는 그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어야 했고, 그들의 포옹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가 혹시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았나 하고 안색을 살피는 눈길도 그대로 받아 낼 도리밖에 없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오브 아저씨와 나는 난데없이 사교계의 명사라도 된 듯했고, 그렇게 우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목 놓아 통곡할 기회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틀에 맞춰 슬퍼하기를 바랐다. (53~54쪽)

 

아기였을 때 엄마를 잃은 서머는 친척집을 전전하다 여섯 살에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와 함께 살게 됐다. 낡고 비좁은 트레일러 집이었지만 서머에게는 따스한 보금자리였다. 뚱뚱하고 당뇨병을 앓고 있는 메이 아줌마와 삐쩍 마르고 관절염에 시달리는 오브 아저씨는 서머를 키우기에 늙은 부모였지만 서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신 분들이었다. 특히, 폭우로 불어난 물이 골짜기 마을을 덮쳤을 때 아홉 살 메이 아줌마를 양철 빨래통에 집어넣어 딸을 살리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이 자신을 늘 지켜보고 있다고 믿고 있는 메이 아줌마는 사람들을 잘 믿고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사랑만 가득한 통’같은 사람이었다. 온종일 바람개비나 만지작거리는 상이군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았고, 일찍 부모를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던 꼬마라는 사실을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줬던 그리운 메이 아줌마는 지난 8월에 밭을 가꾸다 돌아가셨다. 남겨진 오브 아저씨와 열두 살 소녀 서머는 메이 아줌마 없이 두 계절을 보냈지만 그 그리움과 슬픔의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살아갈 의지를 잃어가는 오브 아저씨마저 떠나 버릴까봐 서머는 두렵기까지 하다. 아저씨의 슬픔을 위로할 길을 찾지 않는다면 서머는 낡은 트레일러에 오브 아저씨의 바람개비들과 남겨지게 될 것이기에...

 

그러던 어느 날 트레일러 집 마당에 클리터스라는 아이가 나타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들과 시시껄렁해 보이는 물건들이 잔뜩 들어있는 여행 가방을 메고 다니는 클리터스는 서머의 학교 친구다. 희한하게도 이 괴짜 녀석은 오브 아저씨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클리터스는 아무 때나 불쑥 찾아와 아저씨와 몇 시간씩 시간을 보내곤 한다. 클리터스가 모은 괴상한 사진들도 감상하고 12시간 동안 꼬박 퍼즐을 맞추기도 하면서 오브 아저씨는 메이 아줌마를 잃은 슬픔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듯 보였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메이 아줌마에 대한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서머처럼 말이다. 하지만 오브 아저씨는 치유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마음이 슬픔에 지칠 대로 지쳐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메이 아줌마의 영혼이 나타났다고 하며 사후세계니 영혼과의 대화에 대한 오브 아저씨의 관심에 클리터스는 영혼과 대화하는 목사가 있는 심령교회에 대한 자료를 찾아온다. 오브 아저씨의 고물 자동차로 클리터스와 메이 오브 아저씨는 그 심령교회를 찾아가지만 목사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어있었고 그렇게라도 메이 아줌마를 만나고 싶었던 아저씨의 마지막 희망이 꺾이면서 무서운 절망감이 감돈다.

이 여행의 또 하나의 일정이었던 클리터스의 소원인 의사당 방문 얘기를 꺼낼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의사당을 지나쳐 달리던 오브 아저씨의 자동차가 갑자기 왔던 길을 되돌아갔던 것처럼 오브 아저씨는 절망의 순간에 극적으로 삶의 의지를 붙잡는다. 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 머리 위로 스치듯 올빼미가 날아와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올빼미가 메이 아줌마의 영혼이었고 이제는 정말 영영 이별이라고 느낀 그 순간, 메이 아줌마가 떠난 두 계절 내내 오브 아저씨마저 떠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정작 자신 안의 슬픔을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서머의 울음이 터져 그칠 줄을 모른다. 메이 아줌마를 떠나 보내고 슬픔과 상실감과 아무 때나 불쑥거리며 찾아오는 그리움에 젖어 있던 두 사람이 진정으로 메이 아줌마를 자유롭게 떠나보낸 순간이었다.

신시아 라일런트는 절제된 감동을 그려내는데 탁월한 작가다. 문장은 현란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다. 극도의 슬픔이나 기쁨 어느 감정도 넘치는 법 없이 담담하다. 그러나 어떤 글보다 크고 여운이 긴 감동을 준다. 이 작가는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라는 그림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는데 그때의 감동이 ‘그리운 메이 아줌마’로 이어져 비슷한 감정선을 건드린다. 슬픔이 배어있는 애잔함 그러나 몹시도 따스함...이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그것을 치유해 가는 과정의 열두 살 소녀의 두려움과 그리움을 만난다. 서머만큼 두려웠던 나의 열두 살도 떠올려 본다. 서머도 열두 살의 나도 아주 오랫동안 넉넉하게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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