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큰 개구리 하하! 호호! 입체북
조나단 램버트 그림, 키스 포크너 글, 정채민 옮김 / 미세기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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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중에서도 특히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이라면 무수한 테이핑 자국과 두꺼운 표지의 너덜거리는 정도가 아이의 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늠할 척도가 된다. 아직 여물지 않은 손끝으로 혹은 구강기 아이들의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인 입으로 아주 격하게 책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무렵에 읽는 책들의 상태만 봐도 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은 책과 외면당한 책들을 가려낼 수 있다. <입이 큰 개구리>는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거의 다 구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소문난 베스트셀러다. 물론 소문만 요란한 게 아니라 아이들의 반응도 열렬한 입체북 형태의 그림책이다. 아마도 집집마다 갖고 있는 책들 중 개구리의 혀나 새의 부리나 들쥐의 수염이 제대로 붙어있는 책이 드물지 않을까 싶다.


입체북이라서 화려한 색상의 동물들이 아이들 눈앞으로 튀어나오는 재미도 있거니와 입말이 입에 착착 감겨서 읽어주는 엄마나 듣는 아이 모두에게 책읽기의 즐거움을 준다. 게다가 마지막에 빵 터지는 반전은 읽어주는 엄마도 큭큭 웃게 만드는 재미있는 그림책이다. 호기심 많은 입 큰 개구리가 동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뭘 먹고 사는지 물어보고 다니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동물들의 생태에 대해서 인지하게 된다. 입이 큰 개구리는 파리를 좋아하고, 깃털 파란 새는 꿈틀거리는 지렁이와 달팽이를 먹고, 들쥐는 오독오독한 씨앗과 열매를 먹는다. 입이 큰 개구리의 겁 없는 호기심은 초록색 악어 앞에서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버린다. 초록색 악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입이 큰 개구리라는 말에 입을 오므려 살길을 찾는 개구리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입 큰 개구리의 왕성한 호기심은 당분간 연못 아래서 잠잠해질 테지만 태생적 호기심을 가진 입 큰 개구리가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와 동물들 사이를 깝죽거리며 돌아다닐 날이 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입체북의 부피를 고려하고 유아들의 집중력을 감안해서 적당한 선에서 만들어졌겠지만 좀 더 많은 동물들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꾸며줬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책읽기의 다양한 재미를 눈으로 손으로 느끼게 해주는 좋은 책임엔 틀림없다. <입이 큰 개구리>는 내가 제일 잘났다고 마음껏 거들먹거려도 용서가 될 만큼 자격이 충분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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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채의 그림자 정원
이향안 지음, 호랑 그림 / 현암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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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와 대한제국 말기에 반출된 직지심체요절의 반환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의 타계소식을 병원에서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대기실에서 듣는 사람 없이 웅얼거리는 TV를 통해서 들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약탈해간 조선왕실의 의궤가 89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이틀 뒤 보신각 타종행사까지 가졌었다는 소식도 박병선 박사의 타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6일 이었다. 박병선 박사가 민간인 여성 최초로 프랑스 유학 비자를 받아 프랑스를 건너갔고 하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여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해냄으로써 평생의 업을 운명처럼 만난 것처럼 <채채의 그림자 정원>은 바로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나와 운명처럼 만나게 됐다. 좀 거창한가? 하지만 가끔은 내가 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채채의 그림자 정원>은 임진왜란 때 사라질 뻔했던 조선왕조실록 진주사고본을 지켜낸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동화다. 임진왜란 때 실록이 보관되어 있던 춘추관과 충주 성주 세 곳의 사고가 불타서 소실되고 유일하게 남은 것은 전주사고본 뿐이었다. 역사가 알려준 대로 당시 유생이었던 안의와 손홍록이 목숨을 걸고 운반하여 내장산 용굴암을 비롯해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번을 서며 지켜내 현재의 우리가 온전한 조선왕조실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주사고본마저 유실됐다면 태조부터 명종까지의 조선왕조 절반의 역사는 영원히 잃어버렸을 엄청난 일이었다. 실록을 지켜낸 것은 안의와 손홍록 뿐이 아니었다. 스님들은 물론이고 약초 캐는 심마니들과 사당패까지 힘을 합쳐서 이뤄낸 결과였다고 한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채채와 풍이 그리고 나무꾼 아저씨와 약초 할머니 마을 아낙네들이 바로 그들이었을 것이다.


땟거리를 구하기 위해 깊은 산속을 헤매는 오라버니 풍이를 기다리는 게 일과가 되어버린 채채에게 용굴은 혼자만의 놀이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난 밤 내내 용굴 쪽에서 달구지 소리가 들리더니 채채의 용굴을 낯선 할아버지와 나무상자들이 차지해 버렸다. 왜적들이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나라의 보물을 선비 몇이서 몰래 숨겼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관아에 끌려가 곤장을 맞아 죽은 아버지, 그리고 양반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살던 집마저 빼앗기고 산속 움막에 들어와 살고 있는 채채와 풍이 남매. 양반이라면 치를 떨며 돈만 생기면 양반 상놈 없는 나라로 떠날 거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풍이는 곡식을 품삯으로 준다는 말에 양반 할아버지에게 보물을 보관할 누각을 지어주기로 거래를 한다. 하지만 풍이의 속셈은 번을 서가며 지키고 있는 귀한 보물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어쩌면 귀한 보물이 신분차별 없는 세상으로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하지만 거풍을 시키려고 나무상자에서 꺼내는 실록을 본 순간 맥빠진 울분만 쏟아내 놓는다. 그깟 책이 뭐라고 애지중지 하는지 도통 모를 일이라고...


굶주림 속의 채채와 풍이, 왜적들에게 위치가 탄로 날까봐 추운 동굴에서 불조차 피우지 못하고 지내던 할아버지 모두에게 모진 겨울이 지났다. 실록을 보관하고 있는 누각 옆 빈터에는 나라를 염려하는 기도와 염원들을 쌓아올린 돌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채채는 달빛을 받아 춤추는 돌탑들의 그림자들을 보며 이 작은 정원을 그림자 정원이라 불렀다. 하지만 실록을 찾는 왜적의 무리들이 용굴로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할아버지는 실록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갈 채비를 한다. 왜적선발대는 점점 가까워지고... 실록 옮길 비용에 쓰일 보석보퉁이를 훔쳐 달아났다가 돌아와 왜적선발대의 위치를 알려준 풍이가 제안한 속임수는 과연 실록을 지켜낼 수 있을까?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용골에 들러 할아버지로부터 실록에 담긴 이야기들을 들은 채채에게 단순히 임금님의 책이었던 실록이 재미있는 이야기책이 되고 신분차별에 분노하여 다른 세상으로 가기를 꿈꿨던 풍이가 실록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위험한 일에 앞장서게 되는 과정이 억지와 무리수 없이 자연스레 흘러간다. 역사적인 사실 위에 허구가 더해진 역사동화는 역사적 현장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몰입도가 중요하다.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무대와 21세기에 창조해낸 동화 속 인물이 자유롭게 어우러져 사실적인 현장감이 느껴지는 감동까지 전해 준다면 진정한 역사동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채채와 풍이 그리고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실록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강한 의지가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져 온다. 실록의 피신처였던 용굴에 가면 낡은 사내아이 옷에 빨간 댕기를 한 채채가 나타나 “여긴 내 동굴이야”하며 당차게 외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향안 작가의 전작인 <팥쥐일기>는 배현주님의 그림이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런 팥쥐 ‘아주’를 만들어주셨다면 <채채의 그림자 정원>은 호랑님의 그림이 이야기를 완성한다. <책과 노니는 집>이 김동성의 그림으로 완성된 것처럼 말이다. 천주교가 탄압받던 시절의 필사쟁이 장이의 이야기 <책과 노니는 집>과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채채의 그림자 정원>은 역사동화라는 공통점 말고도 멋지다는 찬사가 부족할 정도로 빛나는 그림작가가 든든하게 버티는 작품들이다. 그림의 분위기가 닮은 듯 다른 느낌을 준다. <책과 노니는 집>의 김동성의 그림이 잘 가꿔진 정원처럼 차분하고 단정한 느낌이 든다면 <채채의 그림자 정원>의 호랑의 그림은 산과 들의 거침없는 수목들처럼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이런 느낌은 아마도 물감이 튀고 번지는 화법이 주는 자유로움이 아닐까 싶다. 단정한 그림에서도 윤곽선을 뚫고 나오려고 꿈틀대는 자유가 느껴진다. 오래 전에 만났던 호랑 작가의 <호랑이가 준 보자기>에서도 인상적으로 느꼈는데 ‘번짐의 미학’을 자유로움으로 구현하는데 탁월한 작가가 아닐까 싶다.   


<채채의 그림자 정원>은 <광모 짝 되기>, <팥쥐 일기>에 이은 이향안 작가의 세 번째 창작동화다. 사실 주절주절 길어지고 있는 내 글이 부끄러울 정도로 이향안 작가의 글은 늘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예쁜 우리말의 맛을 살려내는 솜씨도 매번 감동받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녀들은 또 어찌나 사랑스러운지...때로는 당차고 때로는 눈물 많고 여리고, 아픈 상처가 있고, 그러나 아픔을 치유하는 근본적으로 착한 성품이 있다. <광모 짝 되기>의 이슬이, <팥쥐 일기>의 송화와 아주, <채채의 그림자 정원>의 채채가 바로 그런 소녀들이다. 글이 사람을 닮는다 했으니 작가에게도 그런 소녀들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내 안의 내 모습과 닮아있어 이 소녀들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양반과 상놈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풍이의 바램이 아이들과 함께 자유롭게 노닐었으면 좋겠다. 역사적 사명감에 바쳐진 개인의 고귀한 희생이 지켜온 문화가 아이들 속을 헤집고 다니며 자부심과 긍지를 팍팍 심어주었으면 좋겠다. ‘책책’책 많이 읽는 사람이 되라고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 ‘채채’. 채채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 아이들 사이에서 두루두루 읽혔으면 좋겠다. 더불어 우리 아이들이 ‘채채(책책)’과 친한 벗이 되어준다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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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29일 미래그림책 27
데이비드 위스너 글 그림, 이지유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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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집 뒷마당으로 하늘에서 집채만한 브로콜리가 떨어진다면, 도시의 하늘을 거대한 양배추와 시금치와 상추가 덮어버린다면, 배 한척 크기보다도 더 큰 완두콩들이 강물 위를 떠다닌다면... 아마도 지구방위대의 비상대책위원회가 긴급 소집될 것이다. 아무리 각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간다지만 아마도 지구 전체에 위험이 닥친다면 빛의 속도로 의견을 모아서 힘을 합쳐나갈 지구방위대라는 조직이 분명히 있을 거라 믿고 있는 나는 아무래도 공상과학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일까?^^ 아무튼 각설하고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도 <1999년 6월 29일>의 지구인들 반응이 의외다. 각종 언론매체에서 떠들썩하게 다루긴 하지만 큰일 났다는 분위기보다는 특별한 이벤트나 축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거대 감자로 대통령 얼굴을 조각하며 큰바위 얼굴 흉내도 내보고, 거대 호박으로 주택단지를 조성하기도 하고, 자신의 밭에 떨어진 양배추를 본 농부는 채소 왕 선발대회의 일등을 미리 자축한다. 유일하게 이 사태를 차분하게 지켜보고 있는 꼬마 과학자 홀리 에반스만 빼고 말이다.


홀리는 한달여 전에 하늘 높은 곳에서 채소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고 싶어서 하늘로 채소 씨앗을 심은 화분을 날려 보내는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6월 29일의 거대채소소동이 그 실험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자신이 하늘로 올려 보내지 않은 채소가 떨어진 것을 보고 자신의 실험으로 발생한 소동이 아님을 알았다. 홀리의 호기심은 하늘로 향해 있고 그 해답은 지구 대기 이온층을 비행하고 있던 외계인 우주선 당도리호가 열쇠를 쥐고 있다. 우주선 부엌에서 일하는 보조요리사의 실수로 채소들이 우주선 밖으로 날려 버린 것이다. 작고 파란 행성으로 떠가는 채소들을 보며 저녁거리 걱정을 하는데 뭔가가 우주선에 근처로 둥둥 떠온다.


굳이 나의 찬사를 보태지 않더라도 이미 위대한 작가, 내가 기회만 있으면 위대한 그림책 작가라 추켜세우는 데이빗 위즈너가 1992년에 쓴 작품이다. <1999년 6월 29일>은 데이빗 위즈너의 작품 중 좋아하는 작품 세 편 정도를 꼽으라고 하면 그 안에 꼭 포함시키는 책이다. 글보다는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데이빗 위즈너의 작품들 중에서 이 그림책은 글이 꽤 비중 있는 그림책이다. 지구 종말이라도 올 것처럼 지구 전체가 밀레니엄으로 호들갑 떨던 1999년. 2011년을 살고 있는 우리 지구인들이 지나온 과거 어느 떠들썩했던 해의 6월 29일은 데이빗 위즈너로 인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았다. 새 천년이 시작되는 것을 기다리는 분위기란 것이 하늘에서 거대채소들이 쏟아져 내리는 충격과 놀라움에 견줄만하긴 했었다. 물론 작가의 의도는 알 길이 없고 혼자만의 생각이다.^^


기발한 상상력이 창조해내는 환상의 세계가 바로 데이빗 위즈너의 그림 세계다. 데이빗 위즈너를 설명할 더 이상의 말은 없다. 유년기에 데이빗 위즈너를 만났다면 행복한 아이다. 만약 유년기에 데이빗 위즈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꼭 기억해뒀다가 훗날 내 아이에게는 데이빗 위즈너와의 만남을 주선해 주도록 하라. 하나의 채소 씨앗이 우주로까지 확장되는 생생한 상상력의 세상이 아이의 마음속에서 싹을 틔워 어느 곳까지 뻗어나갈 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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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시즈카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다시마 세이조 글.그림, 고향옥 옮김 / 보림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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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꾸준히 읽어왔고 신문의 북섹션도 꼼꼼히 챙겨 읽었으니 관심분야가 아니고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분류나 세간의 평가 정도는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림책 분야를 처음 접했을 때 정말 암담할 뿐이었다. 완전 백지상태의 미지의 세계에서 어느 길로 가야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 우선 많은 사람들이 낸 길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라고 분류된 그림책들을 읽어봤지만 읽어본 수십 권의 그림책으로는 수작과 졸작의 기준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더욱 미궁 속으로만 빠져들 뿐이었다.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던 초기에 여러 번의 실수 끝에 나름대로 잘 먹혔던 해결책은 괜찮은 그림책을 만났을 때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릴레이로 읽는 방법이었다. 그림책이 아닌 다른 분야의 책읽기에서의 버릇이었던 ‘전작주의’가 그림책 고르기에서도 효과를 톡톡히 발휘한 셈이다. 물론 그림책 고르기가 훨씬 수월해진 요즘도 ‘전작주의’는 스타일로 굳어져있고 특히 그림책 고르기에서 실패할 확률이 적은 좋은 방법으로 추천할 만하다.


<염소 시즈카>는 <채소밭 잔치>를 시작으로 인연을 맺은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책이다. 그의 한글번역판 작품들을 거의 다 읽었지만 그의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은 <채소밭 잔치>다. 할아버지의 채소밭 채소들 이야기가 매력적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이와 함께 깔깔거리며 유쾌하게 읽은 그림책이었다. 처음처럼은 아니지만 지금도 이 그림책 꺼내서 읽으면 이십팔점무당벌레가 방울토마토를 저글링하는 장면과 참마와 우엉이 깊은 땅속에서 나오려고 낑낑대는 장면과 늙은 호박이 할아버지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장면에서는 늘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오곤 한다. <채소밭 잔치> 이후로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책들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 <염소 시즈카>는 2010년에 출간된 그림책이다. 앞표지만을 2차원적으로 보여주는 인터넷서점의 책 소개글에서 이 책의 두께를 그냥 흘려보냈다면 책을 받아보고 놀랄 것이다. 무려 208쪽이나 되는 엄청난 두께의 그림책이다. 1981년부터 나온 시즈카 이야기 일곱 권을 합본해서 한글번역판이 나온 것이다. 한권씩 야금야금 번역판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그림책으로서 무지막지한 두께를 감수하며 읽는 것도 즐거움이라 생각된다. 다시마 세이조는 현재 여덟 번째 이야기를 집필 중이라고 한다.


<염소 시즈카>는 아기 염소 시즈카가 나호코네 집으로 온 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강 건너 할아버지네 집으로 뛰어 들어가 상위에다 오도당동당 까만 초콜릿 같은 똥을 푸짐하게 싸놓는 말썽을 부리던 아기 염소 시절부터 발정기에 접어든 시즈카의 이상한 행동과 감격스런 출산 장면과 위대한 모성애를 보여준다. 새끼인 뽀로가 스스로 풀을 뜯어먹을 수 있게 되자 의연하게 떠나보내는 엄마의 모습도 보여준다. 새끼인 뽀로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크게 한번 울며 훌훌 털어버리고는 예전의 시즈카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할아버지의 채소밭과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동백나무 어린잎과 표고버섯들을 먹어치우고 풍선처럼 부풀어 주저앉은 뒤태를 보여주며 다시 사고뭉치 시즈카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젖을 먹을 새끼가 없어 퉁퉁 불은 시즈카의 젖을 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모습도 재미있는 장면이다.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은 천진난만한 아이가 그려놓은 그림 같다. 색채도 원색을 즐겨 사용하고 역동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느낌이 든다. 역동적인 그림은 시즈카의 성장과정을 담아내며 한가롭고 조용할 것 같은 변두리 마을에 활기찬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야기 속의 강 건너 사는 할아버지는 <채소밭 잔치>의 할아버지가 아닐까, 시즈카가 망쳐놓은 채소밭도 바로 그 채소밭이 아닐까 유추해 본다. 어쩌면 작가가 살고 있는 마을에 그 모델이 되는 할아버지가 실재하고 있을 거라는 추측에 까지 생각이 미친다. 그림책 한권이 하나의 도록(圖錄)같다. 다시마 세이조의 팬이라면 소중하게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그림책이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목가적인 삶은 누구나가 꿈꾸는 모습이 아닐까. 밀려나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며 먹고 살기 위해 복작거리며 도시에 기생해 살아가면서도 마음은 몸과 별개로 여유롭고 편안하게 자연과 호흡하며 살기를 소망하는 것 말이다. 시즈카와 뛰어노는 나호코의 모습은 토끼나 양을 키우고 싶다고 틈틈이 얘기하는 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뛰어놀아야 하는 것을...시멘트 벽 안에서 밖으로 낸 창의 크기 만한 딱 고만큼의 꿈만 꾸게 하는 건 아닌지... 염소 시즈카는 도쿄 변두리에서 밭을 가꾸고 염소와 닭을 키우며 살고 있는 작가 다시마 세이조와 함께 지냈던 염소였다. 작가 후기글을 보니 시즈카는 생을 다하고 죽어서 복숭아 나무 아래 묻혔다고 한다. 하지만 시즈카가 나호코네 집에 와서 지낸 추억들은 <염소 시즈카>를 통해서 이 그림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 마음속을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내 마음 속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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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도깨비 책귀신 1
이상배 글, 백명식 그림 / 처음주니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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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궤를 이르는 말인 고리짝..오래된 물건은 세월이 지나면 영물이 되어 도깨비가 된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는 바로 그런 연유로 도깨비가 된 고리짝도깨비부터 시작한다. 구두쇠 영감의 돈궤가 변한 고리짝도깨비는 돈 냄새를 못 잊어 구두쇠 영감 집에 다시 찾아들고 결국 그 돈을 훔쳐서 동구 밖 버드나무로 거처를 옮긴다. 그 뒤로 다른 부자들의 돈도 훔치고 그 돈으로 땅을 사들여 큰 부자가 된다. 어디선가 소식을 듣고 공책도깨비와 빗자루도깨비가 찾아와 셋은 함께 지내게 된다. 하지만 냄새 맡는데 귀신인 개들 때문에 자꾸 다른 버드나무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개들에게 냄새를 들키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그들만의 근사한 집을 짓기로 한다.


집터를 찾아다니던 도깨비들이 한눈에 봐도 명당자리인 땅을 인간들이 이미 선점해서 옷가게를 짓는다, 큰 식당을 짓는다 하는데 도깨비들이 명당자리를 빼앗기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바윗돌이며 똥을 퍼다 날라 귀신이 붙은 땅이라는 소문이 퍼져 땅값이 헐값으로 떨어지게 된다. 똥값이 된 이 땅을 한 선비가 사들이게 되고 도깨비들은 선비도 쫓아내려고 선비 앞에 나타나지만 선비는 땅을 두고 내기를 한 판 하자고 한다. 내기 과제는 ‘문답’, 글을 물으면 그 글에 맞는 글로 대답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공책도깨비가 겨우 철수야 놀자, 영희야 놀자, 바둑아 놀자 정도의 글을 알뿐이고 고리짝도깨비는 글자도 모르는 상황이다. ‘아는 척’ 공책도끼비만 믿고 덜컥 내기를 시작했다가 낭패를 보게 생긴 도깨비들은 선비에게 약간의 시간을 얻어 답을 찾아 나선다. 도깨비들이 찾아간 이는 다름 아닌 세종대왕, 문답은 책을 읽어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거라고 말하는 세종대왕에게 앞으로 꼭 글을 배우고 책을 읽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답이 되는 글귀를 얻게 된다.


人不通古今이면 馬牛而襟倨니라. 

(사람이 고금(古今)을 알지 못하면 마소에 옷을 입힌 것과 같다.)


답은 얻어왔지만 뜻을 묻는 선비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린 도깨비들은 세종대왕의 말씀대로 책을 읽어 알아내자고 결심을 하고 대왕님이 알려주신 서점이란 곳을 찾아 나섰다. 세종대왕이 부탁한 책을 찾는 과정이 신기하고 신났던 도깨비들은 책이 주는 세 가지 기쁨 중 책방 가는 기쁨과 책 사는 기쁨을 알게 된다. 이제 한 가지, 책을 읽는 기쁨만 남았다. 글자를 배우고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던 도깨비들은 명당자리에 도서관을 세우려던 선비가 돈이 없어서 건물을 못 올리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동안 애물단지였던 돈 보따리를 선비에게 모두 줘버린다. 드디어 명당자리에 으슥하고 어두운 다락방까지 있는 ‘책 읽는 도깨비 도서관’이 개관을 한다. 도깨비 냄새 맡고 달려드는 동네 개들 때문에 거처를 마련하고자 했던 도깨비들의 원래 계획에도 꼭 맞아떨어진 셈이다. 게다가 뒤늦게 배운 책 읽는 재미 또한 맘껏 누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지 않은가.             


‘벌레’나 ‘귀신’같은 단어가 책과 만나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별로 듣기 싫지 않은 말이 탄생한다. 책벌레, 책귀신. ‘책’이라는 말만 들어도 ‘책’이라는 글자만 봐도 귀가 번쩍 눈이 번쩍 뜨인다면 그대는 책벌레 책귀신이 분명하다. <책 읽는 도깨비>는 말 그대로 책귀신 이야기다. 책의 재미는 고사하고 글도 못 깨친 도깨비들이 어떻게 책에 푹 빠지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책을 밥보다 더 좋아했다는 세종대왕이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던 안중근 의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을 늘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설사 책을 사랑하는 방식이 사서 쌓아두는 형태든지 닥치는 대로 읽는 형태든지 나름대로 책을 즐기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재미를 어린 나이부터 알아서 오래도록 즐겼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어린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도깨비처럼 죽지 않고 사는 영물도 진즉에 책이 주는 즐거움을 깨닫지 못하고 늦게 알게 된 것을 후회하는데 하물며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일찌감치 이 즐거움을 깨우친다면 죽을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 책은 책읽기의 즐거움에 푹 빠지게 할 만큼 충분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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