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와 소름마법사 1
발터 뫼르스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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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뫼르스의 ‘차모니아 환상문학 시리즈’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차모니아의 작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쓰고 발터 뫼르스가 차모니아어에서 번역하고 삽화를 그린 작품들이다. 작품이 발표된 순서대로 꼽자면 『푸른 곰 선장의 13과 1/2 인생』,『엔젤과 크레테』,『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꿈꾸는 책들의 도시』다. 차모니아라는 상상의 대륙에서 펼쳐지는 작가적 상상력의 끝을 가늠하기조차 힘든 환상적인 모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발터 뫼르스의 팬이라면 능청스럽고 세세하게 지도까지 첨부해서 소개하고 있는 차모니아는 온갖 기이한 존재들과 고도의 지적  두뇌와 마법과 연금술이 혼합된 익숙한 공간이다. 나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통해서 차모니아 문학을 처음 접했고 순서를 완벽하게 거꾸로 이 시리즈들을 읽었고 결국 시리즈의 종착역인 『에코와 소름 마법사』에 이르렀다. 허겁지겁 홀린 듯 읽었던 4편의 차모니아 시리즈와 『에코와 소름 마법사』사이에는 2,3년 정도의 공백이 있다. 오랜만에 읽은 차모니아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 긴장감도 떨어지고 상상력 지수도 한껏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느낌이 강하다. 아무래도 『꿈꾸는 책들의 도시』로 정점을 찍고 『에코와 소름마법사』는 아쉬워하는 팬들의 여흥을 달래주는 조용한 마무리처럼 느껴진다.


늑대와 노루의 유전자를 가진 뿔 달린 강아지처럼 생겼으나 거인과의 싸움에서도 용맹스런 ‘루모’, 스물일곱 개의 삶을 산다는 ‘푸른 곰’처럼 ‘에코’는 모든 동물들의 언어를 알고 있는 고양이처럼 생긴 ‘코양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에코의 능력은 차모니아의 모든 언어들을 앍고 있으며 모든 생명체와의 대화가 가능하고 점차적으로 밝혀지지만 한번 듣거나 본 것들은 완벽하게 기억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예술분야에도 능하다. 더군다나 에코는 슬레트바야라는 도시의 마지막 남은 코양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며 거리를 전전하던 에코 앞에 나타난 소름마법사 아이스핀은 환상적인 요리로 배부르게 먹게 해줄 테니 한 달 뒤 소름보름날 에코의 몸에서 기름을 짜내는 거래를 하자고 제안한다. 소름마법사는 차모니아의 희귀한 생명체들의 몸을 푹푹 끓여서 기름 덩어리를 추출해서 수집하고 있었는데 시야에 들어온 도시의 마지막 남은 코양이를 눈독들일 수밖에... 거리에서 굶어죽거나 들개들의 공격에 죽든지 한 달 동안 진귀한 음식들 배불리 먹고 죽든지 매한가지라고 생각한 에코는 당장의 배고픔에 소름마법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우선의 화려한 음식들에 현혹되어 자신의 처지를 잊고 있던 에코에게 음침하고 비밀스런 소름마법사의 저택 지붕에 살고 있는 수리부엉이 피요도르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며 위기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모색할 것을 당부한다. 은밀한 비밀들까지 터놓는 사이가 됐으니 죽이기까지 하겠냐며 안이한 생각을 하기도 하고 동정심이나 사랑의 감정에 호소해 보려고도 했지만 결국 소름마법사와 대치관계인 소름마녀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공동작전을 펼치게 된다. 소름마법사의 저택은 연금술의 집합체다. 소름마녀는 감정이 배제된 소름마법사의 ‘연금술’에 자신의 ‘소름술’로 대항하려 한다.    


과거 비극적인 사랑으로 인해 광기에 사로잡힌 소름마법사 아이스핀은 생과 사의 주재자가 되려는 과대망상에 빠져 연금술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그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날이면 코스 요리를 장만해 식탁가득 차려놓지만 주인 없는 식사는 수년째 그대로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다. 그 장소를 에코에게 보여주는 소름마법사는 잠깐의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역시 사랑만큼 위대한 것이 없는 걸까? 오로지 사랑에 인생 전부를 저당 잡히고, 비극적 사랑에 인생을 송두리째 광기로 몰아넣고, 도시전체를 절망과 질병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비열한 악당을 흠모하게 만드는 사랑. 세상사의 근간을 이루는 최고의 연금술이며 소름술이 바로 사랑임을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차모니아 시리즈의 지독한 악역들, 예를 들면『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스마이크’나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의 구리용병 대장 ‘짹깍짹깍 대장’의 비열함과 악랄함에 비하면 역시 소름마법사는 이름만큼 소름끼칠 정도는 아니다. 이파리 늑대, 개암나무 마녀, 황금 데몬, 백설 과부처럼 차모니아의 악랄하고 비열한 존재들이 총집합해서 혼란과 공포를 담은 쿠테타를 일으키는 장면마저도 덤덤하다. 발터 뫼르스의 환상문학에 내성이 생긴 탓일까.


발터 뫼르스의 ‘차모니아 시리즈’는 열성팬들에게 정교하게 얽혀있고 중첩되어 있는 인물들을 찾아내는 재미를 빼놓지 않는다. 발터 뫼르스가 능청스럽게 이 모든 저작의 장본인이라 소개하는 차모니아 공룡작가 미텐메츠도 전설의 대장장이(‘푸른 곰 선장의 13과 1/2인생’), 풋내기 작가(‘꿈꾸는 책들의 도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엔젤과 크레테’)로 등장한다. ‘루모’나 ‘스마이크’를 비롯해서 이파리 늑대, 숲거미 마녀등의 차모니아의 괴이한 생명체들 또한 작품들을 넘나들며 출현한다. 발터 뫼르스가 상상력으로 구현한 기이하고 독특한 환상의 세계 ‘차모니아’는 아직 탐험해보지 못한 지역의 못 다한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비밀스런 안개 뒤로 숨겠다고 한다. 스물일곱 개의 삶을 갖고 있지만 절반인 13과 1/2의 삶 이야기만 하고 나머지는 침묵하겠다고 했던 『푸른 곰 선장의 13과 1/2인생』의 서문이 기억난다. 나머지 절반의 삶은 푸른 곰의 비밀로 남겨둬야 매력적이고 신비롭지 않겠냐는 작가의 말처럼 이제 아쉬움을 뒤로한 채 환상적인 모험으로 안내하던 ‘차모니아’와 작별해야 한다. 공룡작가 미텐메츠의 차모니아 시리즈를 벗어난 발터 뫼르스가 보여줄 다음 세상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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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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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로맨틱 스릴러 『스타터스』는 디스토피아 세계를 긴장감 있는 이야기로 들려준다. 태평양 연안국 전쟁이 생물학 포자 미사일로 종지부를 찍은 미래 세계... 중장년층은 생물학 무기에 희생당하고 백신을 미리 투여한 노년층 ‘엔더’와 미성년층 ‘스타터’들만이 존재하는 희한한 세상의 이야기다. 평균 수명 200세 시대..노령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기득권 세력인 엔더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입안하고 자신들의 기반이 흔들릴 만한 요소는 싹을 잘라버린다. 노령 고용 보호법으로 자신들의 일자리를 보장 받고, 미성년자들의 취업은 불법으로 규정해 버린다. 엔더들은 점점 부유해지고 부모를 잃고 보호자가 되어줄 엔더가 없는 미성년자 ‘스타터’들은 거리로 내몰려서 ‘집행관’을 피해 도망 다니며 쓰레기를 뒤져 연명하거나 감옥과도 같은 보호소에 갇혀 지내며 강제 노역에 끌려 다니게 된다. 열여섯 살 캘리는 일곱 살 동생 타일러와 긴장감 연속의 거리 생활을 하고 있는데 동생 타일러는 선천적인 심장 질환을 앓고 있어서 가장의 책임이 막중한 캘리는 동생을 위해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한다.


일자리를 보장 받은 엔더들은 점점 더 부를 축적하게 되고 평균 수명은 200세를 넘기는 세상이지만 돈으로도 가질 수 없는 ‘젊은 육체’를 갈망하게 된다. 미스터리한 존재 올드맨의 바디 랜트 회사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은 이런 욕구에 발 빠르게 대처한다.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은 생존을 위해 돈이 필요한 스타터들의 젊은 육체를 돈은 넘치게 갖고 있지만 젊음의 에너지가 필요한 엔더들에게 대여한다. 불법적인 일에 가족이 없는 ‘스타터’가 적격이다. 캘리의 세 번째 렌탈 상대 헬레나는 실종된 손녀 엠마를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된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의 음모에 대항할 모종의 거사를 위해 캘리를 렌탈한 것이다. 하지만 캘리와 헬레나가 캘리의 몸을 통해 연결이 되고 헬레나의 계획을 공유하게 된 캘리는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을 찾는 스타터들은 당장의 생계를 위해 돈이 필요한 거리의 아이들뿐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헬레나의 손녀 엠마처럼 부유한 아이들은 자신의 출신을 속이고 완벽하게 아름다운 외모를 갖기 위해 프라임 데스티네이션 찾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아이들의 비뚤어진 욕망의 발현이 영영 되돌릴 수 없는 실종 상태로 만들어 버렸음에 분노한다.


잠시 동안 빌린 몸으로 젊은 만끽하며 이른바 ‘남의 차로 폭풍 주행’을 하는 엔더들의 욕심은 영원한 렌탈의 욕망으로 옮겨가고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의 올드맨은 그런 욕망을 부추긴다. 10대 손자 증손자를 잃어버린 엔더들과 캘리를 돕는 헬레나의 친구들과 정계인사까지 합세해서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의 음모를 저지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숨 막히게 전개된다. 마지막까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올드맨, 생물학 포자의 공격에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끌려가서 죽은 줄 알고 있는 아빠의 메시지, 미스터리한 블레이크...열린 결말을 통해 후속작에 대한 여운을 강하게 남기고 있다.    


미래 공상 소설이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가진 자와 기득권자,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거리의 미성년들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멈출 수 없는 인간의 탐욕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연거푸 디스토피아 소설을 읽으려니 이제 그만~~을 외치고 싶다. 보호소의 사라가 캘리에게 건넸던, 바디 뱅크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에서 캘리가 동생 타일러를 위해 몰래 챙겨왔던 초콜릿 슈퍼트뤼플이라도 입 속에 털어 넣으면 암울하고 꺼림칙한 뒷맛이 좀 가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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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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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은 하늘까지 닿을 듯 끝이 보이지 않는 밧줄의 끝을 올려다보며 올라간 지 한참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고 있는 마술사 조수인 아이를 찾으러 올라간 마술사를 기다린다. 잠시 후 아이의 사지가 뻘건 핏덩이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진다. 마술사는 경악하는 사람들 앞에 투덜대며 아이의 조각난 몸뚱이를 양동이에 그러모아 거적을 덮어버린 후 뒤편으로 던져놓는데 잠시 후 거적 덮인 양동이 안에서 스르르 몸을 일으키는 아이. 죽음에서 환생하는 순간이다. 중국 황제 앞에서 이 마술을 공연하는 자리에서 마술의 신기함에 매료된 어린황제는 속임수를 철썩 같이 믿어버리고 환생을 당연시하며 시종을 칼로 벤다. 마술사의 환생 마법을 기다리는 황제를 남겨두고 하늘까지 올라가서 사라져 버린 마술사의 도주를 알리는 밧줄만이 스르르 추락한다. 시종의 핏빛이 선연한 현장에 홀로 남겨진 어린 조수는 어찌 됐을까. 끼니를 이을 거친 식사와 비바람을 피할 잠자리를 볼모로 마술사의 조수 노릇을 했을 수도 있는 어린 소년은 황제의 분노를 오롯이 그 작은 몸으로 받아냈을 것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들어가는 말에 소개된 마술사의 조수 소년처럼 터럭 끝만큼의 구원조차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없는 상황 속으로 내몰린 이 시대 아이들의 절규가 들린다. 책임의 소재는 잽싸게 발을 빼버린 상황에서 황망하게 고통을 떠안게 된 아이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인다.  


아빠가 탯줄을 잘라줄 경이로운 장면을 준비하고 있는 아늑한 가족분만실이 아니라 도시 군상들의 거대 집합소 같은 고속버스터미널의 공중화장실에서 저마다의 죄의식을 환기시키는 간절한 울음을 토해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 아이, 제이는 그렇게 세상으로 나왔다. 축복 받아 마땅한 순간이 영아살해와 영아납치로 얼룩졌다. 화장실의 북새통 속에서 제이를 데리고 나온 돼지엄마가 다세대주택으로 이사를 오면서 집주인의 아들인 동규와 제이는 자연스레 어울리게 된다. 동규는 다툼이 잦았던 부모를 보면서 ‘내가 없는데도’ 행복한 부모의 결혼식 장면을 떠올리며 ‘내가 사라져야 저들이 다시 행복한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스스로를 불청객이라 비하시키며 안으로 슬픔을 키워가던 아이였다.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동규의 마음속에 굳어가던 말들을 제이가 대신해주는, 제이는 동규의 ‘욕망의 통역자’였다.     


버려짐으로 세상에 존재를 알린 처음처럼 또다시 양엄마에게 버려져 보육원과 길에서의 생활을 계속하던 ‘태생적 고아’ 제이와 어느 날 갑자기 말문이 트였지만 부모님은 불편한 싸움을 끝내고 이혼했으며 아빠가 재혼한 새엄마의 노골적인 차별을 견디다 뛰쳐나온 ‘선택적 고아’ 동규는 과거의 그때처럼 함께 한다. 길과 길이 만나는 데서 태어나 계속 길에서 살아가게 될 운명임을 받아들인 제이는 ‘길 위를 달리는 게 아니라 길을 내 안으로 감아 들였다 다시 놓아주는’ 길 위의 생활을 하며 ‘도시의 거리에 굵고 힘찬 붓질을 하는’ 폭주의 세계로 스며든다. 공중화장실 바닥에서 시작된 순간부터 퇴화한 날개의 흔적기관인양 불룩한 어깻죽지 뼈를 운명처럼 지고 다니는 제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영혼들의 고통을 감지하는 센서가 자신의 존재 이유임을 믿는다.    


“그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었어. 성난 개떼처럼 으르렁거리기는 했지만 막상 내가 다가가면 꼬리를 내리고 받아줄 것 같았어. 그리고 어떤 목소리도 들었어. 가서 그들과 하나가 돼라. 그들을 이끌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라. 뭐 그런 것이었어.” (153쪽) 


불편했다. 버스 뒷자리를 점령하고 앉은 여학생들의 욕이 태반인 걸걸한 말이 불편한 것처럼, 싱그러움을 칙칙함으로 가려버리는 짙은 화장과 천편일률적인 유행이 장악해 버린 십대들의 외양이 불편한 것처럼 폭주와 집단 난교와 폭력의 일탈에 무감각하게 자신을 내던지는 아이들 세계의 너무나 사실적이라 오히려 소설처럼 느껴지는 적나라함이 불편했다. 써놓고도 서랍에 처박혀 있으며 발표되지 못할 소설처럼 진실이 불편했다. 그 불편함은 십대 소녀가 공중화장실 바닥에 태아를 쏟아내 놓는 세상에 대한 개탄과 아이들을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몰고 간 어른들의 자기반성마저 꿀꺽 삼켜버렸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닫혀 있지도 활짝 열려있지도 않은 반쯤 열린 문’을 슬쩍 지나쳐서 외면하고픈 내 마음의 발로였다. 저 너머 세계로 밀어 넣어 버리고 경멸의 시선을 던지고 그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귀를 닫아버린 미안함이 슬픈 위로를 보낸다. 뒷좌석을 잔뜩 추켜올리고 굉음을 내며 도시의 거리에 힘찬 붓질을 해대며 온 몸으로 써낸 글자를 온전히 해독할 수 없으니 나의 위로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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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달 위를 걷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3
샤론 크리치 지음,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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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는 상처들이 있다. 째고 짜내고 봉합해놓은 상처는 흉터는 남겠지만 최소한 회복의 의지가 있다. 하지만 덮어두고 외면해 버린 상처는 가벼운 자극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법이다. 꽃으로 때려도 아픈 법이다. 몸에 난 상처는 상처의 경중에 따라 치료과정을 거치면 고통이 지나간 흉터가 훈장처럼 남는다. 하지만 마음에 깃든 상처는 상처 부위도 치유의 흔적도 본인만이 알 수 있는 비밀스런 흉터 자국을 남긴다. <두 개의 달 위를 걷다>는 살라망카라는 열세 살 소녀가 부정하고 거부하고 도피하는 단계를 거쳐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고 치유해가는 기나긴 여정을 담고 있다. 마음의 상처는 그 상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 치유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바로보기가 어려운 법이다.


<두 개의 달 위를 걷다>는 액자식 구성의 병렬 구조를 갖고 있는 로드 무비풍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미스터리와 서스펜스가 가미되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재미 또한 있다. 가족애와 인간애가 넘치는 감동을 주고, 펑펑 눈물까지 쏟게 하는 카타르시스도 제공한다. 한마디로 소설의 모든 맛이 들어있는 종합 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대개의 경우 여러 가지 맛을 찝쩍거린 소설이 한 가지 맛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소설에는 모든 맛이 골고루 잘 살아있다. 


어느 날 갑자기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엄마를 찾아 오하이오에서 아이다호 루이스턴까지의 장장 3000킬로미터의 대륙횡단 여정을 담고 있다. 루이스턴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엄마를 만나보고 싶어 했던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를 보러 가고 싶지만 두려워하고 있는 살라망카는 일주일 뒤 엄마의 생일에 맞춰 루이스턴에 도착할 예정으로 자동차로 여행길에 오른다. 오십여 년의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열세 살 손녀딸의 긴 여행에는 살라망카의 친구 피비 윈터버텀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함께 한다. 권위적인 남편과 이기적인 두 딸의 엄마이면서 가정에 헌신하며 틀에 박힌 삶을 살던 피비의 엄마가 어느 날 편지를 남겨놓고 가출을 한다. 엄마가 집을 나가기 얼마 전부터 피비의 집 앞에는 암호 같은 쪽지들이 이어졌고 정신병자 같은 젊은 남자가 피비의 엄마를 찾아오는 일이 있곤 했었다. 두 소녀는 탐정 놀이하듯 쪽지의 비밀을 추리해 가고 있었는데 피비의 엄마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그의 모카신을 신고 두 개의 달 위를 걸어볼 때까지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지 마세요.’라는 첫 번째 쪽지에서 제목을 따왔다. 모카신은 인디언들이 신는 신발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남의 입장과 처지에 있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밖에도 ‘누구나 자신만의 일정표가 있다.’, ‘인생에서 뭐가 그리 중요한가?’, ‘슬픔의 새가 당신의 머리 위를 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당신 머릿속에 둥지를 트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와 같은 알쏭달쏭한 쪽지들은 과연 누가 가져다 놓을 것일까? 남편의 시체를 뒷마당에 파묻었다는 소문에 휩싸인 마거린 아주머니는 살라망카의 아빠와 어떻게 알게 됐을까? 피비가 정신병자라고 부르는 젊은이의 정체는 뭘까? 피비의 엄마는 왜 갑자기 가출을 했을까? 이런 의문들과 함께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이야기에 끌려가다 보면 하나씩 그 정체가 드러난다.  


피비의 맞은편 집에는 ‘시체’라는 뜻의 ‘커데이버’라는 성을 가진 마거릿 아주머니와 앞을 못 보는 페트리지 할머니가 살고 있다. 마거릿 아주머니는 살라망카의 아빠와 친분이 있는 사이지만 살라망카는 이 아주머니가 남편의 시체를 뒷마당 나무 밑에 묻었다고 생각하는 피비의 말을 더욱 신뢰한다. 엄마의 가출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피비는 엄마가 집 주변을 서성거리던 정신병자에게 납치됐거나 마거릿 아주머니에게 살해됐을 거라는 추측을 하며 경찰서까지 찾아가게 된다. 늘 완벽한 식사가 차려져 있고 옷은 깔끔하게 다림질 되어 있었던 집은 엉망이 되고, 그제야 피비네 가족들은 엄마란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또 한 가족, 늘 체계적이고 깔끔한 피비네와 대조되는 메리 루네 집도 등장한다. 아이들 다섯과 늘 한두 명쯤 얹혀사는 친척들이 뒤엉킨 메리 루네 집은 깔끔 떨고 점잔 빼고 경직된 피비에게는 끔찍한 난장판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책을 읽고 낮잠을 즐기는 메리 루의 부모님을 보면서 서로 뒤엉켜 마음껏 살을 부비고 뛰어놀며 거친 숨을 함께 호흡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살라망카는 아빠와 엄마와 셋이서 바로 그렇게 한덩어리로 뒹굴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나무와 호수에 둘러싸인 켄터키주 바이뱅크스란 시골마을의 농장에서 살던 살라망카에게는 서로의 분신과 같았던 사랑이 넘치는 엄마와 가족들의 기운을 북돋워줄 소소한 기쁨들을 만들어내는 좋은 사람 아빠와 더없이 행복하게 살았었다. 하지만 살라망카의 동생을 출산하는 과정에서 사산의 아픔을 겪은 엄마는 마음의 방황을 겪는다. 산달이 다가온 어느 날 나무에서 떨어진 자신을 업고 집까지 뛰어간 탓에 엄마가 그런 아픔을 겪는 거라고 자책하던 살라망카는 작별인사도 없이 여행 가방을 챙겨 홀연히 사라진 엄마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부정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던 살라망카는 용기를 얻고 마음을 굳게 다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사를 간다는 아빠를 따라 어쩔 수 없이 집을 뒤로하고 유클리드로 이사를 한다. 엄마가 사라진 지 일 년쯤 후 할아버지 할머니가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에 지도를 보며 길잡이 노릇으로 따라가기로 결정한 후부터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내내 온 세상은 살라망카에 귀에 대고 ‘서둘러 빨리 빨리’를 속삭인다. 하지만 여행길에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들려준 피비네 가족의 얘기를 통해서 자신의 슬픔을 바로 보게 된 살라망카는 엄마와의 만남이 다가올수록 ‘천천히 천천히’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그 길 끝에서 만나게 될,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될 슬픔의 실체를 알았기 때문이다.       


살라망카의 이야기는 내게도 있는 비슷한 상처를 톡톡 건드린다. 후반부까지 목울대가 아프게 꾹꾹 눌러 참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청소년 도서지만 450쪽 가까이 되는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리뷰에 담지 못한 소소한 재미들을 그럴 듯하게 담아낸 작가의 역량에 있다. 오십여 년을 함께 해 동지 같은 부부로 살아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과 살라망카와 벤의 블랙베리 맛 첫사랑도 마음을 조몰락거리는 이야기들이다.      

  

시사회에 참석한 영화 관계자 평론가 비평가들과 먼저 본 관객들이 무언의 공범자처럼 보안을 유지했던 영화 「크라잉 게임」의 충격적 여장남자 딜의 비밀처럼 「식스 센스」가 상영되던 영화관 화장실의 ‘브루스 윌리스는 유령이다.’ 낙서처럼 스포일러를 터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눈치 빠른 분의 시선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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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완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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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들어가는 말로 열어주고 나오는 말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용기를 주곤 했다. 이윤기의 유작인 5권에는 이윤기의 나오는 말이 없다. 이윤기의 딸이 대신 전하는 ‘맺음말’이 필자의 부재에 대한 확인사살처럼 가슴에 쿵 떨어진다. 신화의 땅을 자유롭게 드나듦에 있어서 이윤기의 친절한 신화 안내서는 언제고 그 통로가 되어 줄 거라는 터무니없고 치기어린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다가 느닷없이 ‘맺음말’을 만나니 기막히고 황망할 따름이다. ‘독자 여러분,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6권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 5권에서 더 이상은 나아갈 길이 없다. 1권을 시작하면서 신화라는 자전거에 올라탄 독자들에게 페달을 밟을 것을 권유하면서 뒤에서 짐받이를 잡고 따라갈 테니 안심하라던 필자의 도움이나 응원은 더 이상 없다. 독자 스스로 힘차게 페달을 밟아나가야 한다. 안내인을 잃고 잠시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할 지 멈춰서겠지만 자전거 굴리는 법은 익혔으니 이제부터 나아가는 길은 훨씬 수월할 것임을 안다.


신께서 63세의 그의 심장을 멎게 하지 않았더라면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는 언제까지고 계속되었을 것이다. 신화의 서사적 구성에 맛깔스런 이야기로 엮을 줄 아는 이윤기에게 수천 년 동안 퇴적된 이야기 보고(寶庫)는 글감을 무궁무진하게 제공할 것이니 부지런을 떨면 될 일이었다. 갑작스런 신의 제동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서양문화의 초석을 이루는 그리스 중심의 헬레니즘과 이스라엘 중심의 헤브라이즘을 두루 다룰 계획이었으니 아직 헤브라이즘으로 건너지도 못한 이 상황이라면 궤도의 절반쯤에서 멈춰선 것인가. 그가 오래도록 구상하고 원대하게 계획했으나 풀어내지 못하고 그와 함께 떠난 이야기들이 아쉽다.

 

‘나오는 말’도 끝내지 못한 유작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아르고 원정대가 무엇이던가. 신들의 여왕 헤라가 뒷배를 봐주고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수호하는 아르고호에 그리스 시대의 걸출한 영웅들이 총집합해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아닌가. 영웅들 면면의 이야기도 다 풀어놓지 않은 듯하고, 무시무시한 메데이아의 이야기도 서둘러 끝난 느낌이 든다.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다. 5권은 10여 년 전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를 구상하면서 그리스와 터키 일대의 신화가 숨 쉬는 현장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던 시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터키의 ‘흐린 주점’에서 흑해를 내려다보면서 수천 년 전 그곳을 항해했던 아르고 원정대를 떠올리며 현장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신화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두 개의 바위 섬 사이를 통과하는 무엇이든 박치기로 박살을 내버리는 ‘쉼플레가데스’라는 바위섬과 사납고 정복되지 않았던 바다였던 흑해를 지나 ‘금양모피’를 찾아 떠나는 그리스 영웅 이아손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시련과 고난의 모험 끝에 ‘금양모피’를 손에 넣게 되는 이아손의 이야기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권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신화를 우리와 친숙하게 느끼게 해준 이 시리즈의 10년 여정은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에서 시작해서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으로 끝을 맺으니 참으로 운명적인 유작이다.  


이아손은 이올코스의 왕자였다. 아버지 이아손 왕이 연로한데다 왕위를 이을 이아손은 늦둥이 아들이라 고작 다섯 살이라는 상황을 이용한 숙부 펠리아스에게 왕위를 빼앗긴다. 장성한 뒤에 왕위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애초에 지킬 생각이 없는 약속이었다. 헤라클레스와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그리스 영웅들의 스승이었던 현자 켄타우로스 케이론 밑에서 15년의 세월을 교육받고 자신의 왕위를 찾으러 온 이아손에게 순순히 왕의 자리를 내줄 펠리아스가 아니었다. 교활한 펠리아스는 머나먼 나라 콜키스에 있는 집안의 보물인 프릭소스의 ‘금양모피’를 찾아와서 스스로 왕임을 입증하라는 피할 수 없는 교묘한 제안을 한다. 이아손이 배 짓는 명장 아르고스를 찾아가 빠르고 튼튼한 배를 지어 달라 부탁한다. 아르고호를 타고 저승길에도 비교되는 이 머나먼 원정길에 동참한 대원들의 이름만 거론해도 너무나 화려하다. 우선 헤라클레스가 있고 신부인 에우뤼디케를 찾아 산 자의 몸으로 저승을 다녀온 것으로 유명한 트라키아 명가수 오르페우스,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 형제, 여걸 아탈란타를 비롯한 장사, 역사, 예언자, 천리안, 타고난 키잡이 등이 총집합했다.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은 렘노스 섬의 여인들, 나그네를 꾀어 주먹질을 겨루자고 해서 때려죽이는 왕 아뮈코스, 제우스의 노여움을 샀던 예언자 피네우스, 뱃길을 허락하지 않는 두 개의 박치기 섬 쉼플레가데스는 아르고 원정대가 금양모피를 찾아 콜키스로 가는 여정에서 만난 모험들이다. 머나먼 땅 콜키스에 도착한 이아손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콜키스의 왕녀 메데이아의 절대적인 도움으로 금양모피를 손에 얻게 된다.


메데이아는 영웅들 이야기의 주변인으로 여러 번 등장한다. 테세우스가 아버지인 아테나이 왕 아이게우스를 찾아갔을 때 테세우스를 알아보고 독살하려던 계모가 바로 메데이아다. 이아손이 금양모피를 얻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 대가로 이아손과 결혼하지만 이아손이 딴 여자에게 한눈판다는 것을 알고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둘을 죽여 버리는 비정한 엄마로도 유명하다. 아르고 원정대와 콜키스를 떠날 때 아버지의 추격을 늦추려고 자신의 막내 동생을 죽여 시체를 토막 내서 바다에 던진 이야기의 주인공도 메데이아이다. 사랑에 눈이 멀어 아비와 형제 조국을 배신한 공주의 운명이 순탄할 리가 없다는 것을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그 예를 수두룩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메데이아에 견줄 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후반부에 성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 드는 메데이아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 시리즈가 계속 됐다면 이윤기가 담았을 영웅들과 그 곁가지 이야기들을 상상해 보니 아쉬움이 더욱 크다. 이아손(6권)과 헤라클레스(4권)처럼 한 몫을 차지했을 테세우스, 오디세우스와 아킬레우스를 만날 수 있는 트로이 전쟁도 맛깔나게 들을 수 있었을까?...아쉽다.           


나의 신화 읽기는 서양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돕고 예술적 안목을 높이고 인문학적 교양을 쌓기 위함이었다. 서양의 문학과 예술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신화적 알레고리들을 해독하는데 신화의 절대적인 조언이 필요했다. 서양문화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개운치 않은 느낌 앞에는 신화가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라도 여기저기 건드려 보니 “그래 바로 이거였어.”하며 무릎을 치는 찰나의 개안(開眼)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갈 길이 너무 멀다. 신화를 서술하는 언어는 상징적 언어다. 신화가 담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들을 찾아 상상력의 실타래를 솔솔 풀어가며 미궁 속을 조심스레 걷고 있는 모양새다. 문득 궁금해진다. 나의 흑해를 건너 나의 쉼플레가데스를 지나 나의 금양모피를 수습하자던 이윤기의 금양모피는 무엇이었을까? 아득히 높은 하늘 올림포스 산만큼이나 접근이 어려웠던 신화의 세계를 인간의 세상 가까이로 내려놓아 신화와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세상은 아니었을까? 도전이 없이는 영광도 없다. 고난과 역경은 영광을 더욱 값지고 빛나게 한다. 나의 흑해와 쉼플레가데스와 금양모피를 찾아 떠나라는 이윤기가 전하는 마지막 조언이다.


나는 내 연하의 독자들을 향하여, 특히 좌절을 자주 경험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활을 겨누듯이 겨냥하고 쓴다. 먼 길을 가자면 높은 산도 넘고 깊은 물도 건너야 한다. 먼 바다를 항해하자면 풍랑도 만나고 암초도 만난다. 이 장애물들이 바로 개인의 흑해, 개인의 쉼플레가데스다. 이것이 두려워 길을 떠나지 못한다면, 난바다로 배를 띄우지 못하다면 우리 개개인에게 금양모피는 없다. 흑해와 쉼플레가데스는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쉼플레가데스 사이를 지나고 우리의 흑해를 건너야 한다. 시작 없이, 모험 없이 손에 들어오는 ‘금양모피’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가 넘어야 하는 산은 험악할 수 있고, 우리가 건너야 하는 강은 물살이 거칠 수도 있다. 우리가 건너야 하는 바다도 늘 잔잔하지는 않다. 하지만 명심하자. 잔잔한 바다는 결코 튼튼한 뱃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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