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구경꾼들은 하늘까지 닿을 듯 끝이 보이지 않는 밧줄의 끝을 올려다보며 올라간 지 한참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고 있는 마술사 조수인 아이를 찾으러 올라간 마술사를 기다린다. 잠시 후 아이의 사지가 뻘건 핏덩이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진다. 마술사는 경악하는 사람들 앞에 투덜대며 아이의 조각난 몸뚱이를 양동이에 그러모아 거적을 덮어버린 후 뒤편으로 던져놓는데 잠시 후 거적 덮인 양동이 안에서 스르르 몸을 일으키는 아이. 죽음에서 환생하는 순간이다. 중국 황제 앞에서 이 마술을 공연하는 자리에서 마술의 신기함에 매료된 어린황제는 속임수를 철썩 같이 믿어버리고 환생을 당연시하며 시종을 칼로 벤다. 마술사의 환생 마법을 기다리는 황제를 남겨두고 하늘까지 올라가서 사라져 버린 마술사의 도주를 알리는 밧줄만이 스르르 추락한다. 시종의 핏빛이 선연한 현장에 홀로 남겨진 어린 조수는 어찌 됐을까. 끼니를 이을 거친 식사와 비바람을 피할 잠자리를 볼모로 마술사의 조수 노릇을 했을 수도 있는 어린 소년은 황제의 분노를 오롯이 그 작은 몸으로 받아냈을 것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들어가는 말에 소개된 마술사의 조수 소년처럼 터럭 끝만큼의 구원조차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없는 상황 속으로 내몰린 이 시대 아이들의 절규가 들린다. 책임의 소재는 잽싸게 발을 빼버린 상황에서 황망하게 고통을 떠안게 된 아이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인다.  


아빠가 탯줄을 잘라줄 경이로운 장면을 준비하고 있는 아늑한 가족분만실이 아니라 도시 군상들의 거대 집합소 같은 고속버스터미널의 공중화장실에서 저마다의 죄의식을 환기시키는 간절한 울음을 토해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 아이, 제이는 그렇게 세상으로 나왔다. 축복 받아 마땅한 순간이 영아살해와 영아납치로 얼룩졌다. 화장실의 북새통 속에서 제이를 데리고 나온 돼지엄마가 다세대주택으로 이사를 오면서 집주인의 아들인 동규와 제이는 자연스레 어울리게 된다. 동규는 다툼이 잦았던 부모를 보면서 ‘내가 없는데도’ 행복한 부모의 결혼식 장면을 떠올리며 ‘내가 사라져야 저들이 다시 행복한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스스로를 불청객이라 비하시키며 안으로 슬픔을 키워가던 아이였다.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동규의 마음속에 굳어가던 말들을 제이가 대신해주는, 제이는 동규의 ‘욕망의 통역자’였다.     


버려짐으로 세상에 존재를 알린 처음처럼 또다시 양엄마에게 버려져 보육원과 길에서의 생활을 계속하던 ‘태생적 고아’ 제이와 어느 날 갑자기 말문이 트였지만 부모님은 불편한 싸움을 끝내고 이혼했으며 아빠가 재혼한 새엄마의 노골적인 차별을 견디다 뛰쳐나온 ‘선택적 고아’ 동규는 과거의 그때처럼 함께 한다. 길과 길이 만나는 데서 태어나 계속 길에서 살아가게 될 운명임을 받아들인 제이는 ‘길 위를 달리는 게 아니라 길을 내 안으로 감아 들였다 다시 놓아주는’ 길 위의 생활을 하며 ‘도시의 거리에 굵고 힘찬 붓질을 하는’ 폭주의 세계로 스며든다. 공중화장실 바닥에서 시작된 순간부터 퇴화한 날개의 흔적기관인양 불룩한 어깻죽지 뼈를 운명처럼 지고 다니는 제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영혼들의 고통을 감지하는 센서가 자신의 존재 이유임을 믿는다.    


“그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었어. 성난 개떼처럼 으르렁거리기는 했지만 막상 내가 다가가면 꼬리를 내리고 받아줄 것 같았어. 그리고 어떤 목소리도 들었어. 가서 그들과 하나가 돼라. 그들을 이끌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라. 뭐 그런 것이었어.” (153쪽) 


불편했다. 버스 뒷자리를 점령하고 앉은 여학생들의 욕이 태반인 걸걸한 말이 불편한 것처럼, 싱그러움을 칙칙함으로 가려버리는 짙은 화장과 천편일률적인 유행이 장악해 버린 십대들의 외양이 불편한 것처럼 폭주와 집단 난교와 폭력의 일탈에 무감각하게 자신을 내던지는 아이들 세계의 너무나 사실적이라 오히려 소설처럼 느껴지는 적나라함이 불편했다. 써놓고도 서랍에 처박혀 있으며 발표되지 못할 소설처럼 진실이 불편했다. 그 불편함은 십대 소녀가 공중화장실 바닥에 태아를 쏟아내 놓는 세상에 대한 개탄과 아이들을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몰고 간 어른들의 자기반성마저 꿀꺽 삼켜버렸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닫혀 있지도 활짝 열려있지도 않은 반쯤 열린 문’을 슬쩍 지나쳐서 외면하고픈 내 마음의 발로였다. 저 너머 세계로 밀어 넣어 버리고 경멸의 시선을 던지고 그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귀를 닫아버린 미안함이 슬픈 위로를 보낸다. 뒷좌석을 잔뜩 추켜올리고 굉음을 내며 도시의 거리에 힘찬 붓질을 해대며 온 몸으로 써낸 글자를 온전히 해독할 수 없으니 나의 위로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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