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목 없는 동화 - 독창적 논술을 위한
조대현 외 지음, 안준석 그림 / 그린북 / 2007년 4월
평점 :
‘첫 번째 동화:’ 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어떻게 쌍점을 찍어놓고 아무런 표기도 않은 채 오로지 공백만으로 제목을 대신할 수가 있지? ‘제목’이라는 개념을 항상 접해온, 그래서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로서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충격을 뒤따라 온 것은 소용돌이치는 호기심과 붉은 하늘과도 같은 신선함이었다. 제목이 없어서 그런지 동화의 내용을 추측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제목 없는 동화라! 기가 막힌 발상이다. 제목을 없애버림으로서 독자들의 눈길과 호기심을 쏠리게 함과 동시에 자유롭게 제목을 붙일 수 있도록 하는 그 여유로움이란! 희번덕한 제목이 붙기는커녕 제목이 없어서 더욱 기대되었다.
이 책은 어린이들의 생각의 힘과 논술 실력을 길러주기 위한 취지로 출간된 동화책답게, 이야기를 읽고 좀 더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과 직접 제목을 붙여보는 공간이 따로 배치되어있었다. 난 어린이가 아니었지만, 직접 질문에 답하고 제목을 짓다보니 어린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보다 심도 있게 감상, 해석할 수 있었고 흥미진진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이 많은(?) 나에게도 이토록 좋은 영향을 끼치는데 파릇파릇한 어린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좋을지, 이 책이 너무도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제목 없는 동화>여, 나의 동생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다오.
다만 우려되는 점은, 아이들이 순수한 동화를 굳이 꼭 해석해야만 하는 일종의 ‘문제’로 여기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냥 자연스레 느끼고 감동하면 되는 것을 괜스레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따지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어떠어떠한 표현이 쓰였는지 살피는 것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순수함과 이야기의 결정체인 동화가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벗어나 버리는 것일 테니 말이다.
물론 <제목 없는 동화>의 경우에는 그렇게 큰 문제의식은 없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도를 지나친 파악’이지만, 이 책은 그 정도를 적당히 잘 조절한 것 같다. 만일에 <제목 없는 동화>가 시리즈로 나온다면, 동화에 대한 아이들의 환상이 깨지지 않도록,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고 날 수 있도록, 너무 높게 날아 날개가 태양에 불타버리지는 않도록 잘 해주길 바란다. 또 그렇게 믿고 있다.
이제 ‘논술’에서 ‘동화’로 화두를 바꿔보자. 아홉 편의 멋들어진 동화는 아주 내 맘에 쏙 들었다. 동화를 읽으면서 그러고 보니 동화 본 지도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너무 현실에 ‘찌들어’ 살았나 하고 후회스럽게 개탄했다. 오랜만에 읽는 동화. 그것들은 순수하게 ‘이야기’ 자체로 재미가 작용했고,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행복한 기분이 솟구쳤다. 동화를 읽는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뒤늦게 재경험을 하며 이제는 동화 편독 증상이 생기지는 않을까, 짜릿한 기우를 만끽해본다.
아홉 편의 동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동화 하나가 있는데, 한 닥나무의 이야기이다.
골똘이라는 별명을 가진 닥나무가 있었다. 그 닥나무는 평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동경했는데, 자신은 그러지 못한다는 현실에 가슴 아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수가 찾아와 닥나무를 베어갔고 그 닥나무는 한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골똘이는 왜 자기가 이렇게 변했는지 궁금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연’이 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후 골똘이는 연 할아버지에게 팔려 멋진 연으로 만들어졌고, 그토록 바라던 하늘 날기의 소원을 끝내 이루었다.
어찌 보면 뻔한 얘기 같지만,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참된 동화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골똘이가 연이 되어 하늘을 날다 바람에 찢겨졌다고 이야기를 바꾼다면 그 동화는 아이들에게 걸맞지 않은 것이다. [이상의 실현의 제지],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 이런 주제의 동화를 어찌 아이들에게 선보인단 말인가? - 그래서 난 동화가 좋다. 마음 푸근하고 따뜻한 동화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끝으로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에 대해 한마디 하겠다.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나도 한번 제목을 붙이지 않아봤다. 내 서평을 읽은 사람이라면 덧글로 이 글의 제목을 붙여주어도 좋다. 자, 그럼 어서 내 서평에 제목을 달아주기 바란다. 당신의 독창적 논술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어디 한번 지켜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