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을 살다보면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민수, 유진, 민지, 보라 등 흔한 이름의 소유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런 경우가 많다. 물론, 흔치 않은 이름의 소유자들은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을테지만. 내이름과 똑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단순히 '어? 나랑 이름이 똑같네?' 하고 생각하는 것 뿐만 아니라 괜시리 동질감같은 것이 느껴진다. 나같은 경우에도 TV에서 아무개를 볼때면 친근한 느낌이 들고,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두명의 유진이도 그런 이유 탓에 유치원에 다닐 적에 큰 유진이, 작은 유진이로 불리며 친한 친구 사이였던걸까?

 같은 학교, 같은 반 안에 유진이와 유진이가 있다. 공부 잘 하는 모범생 작은 유진이와 키 크고 활발한 큰 유진이. 두 유진이 모두 철면피같은 놈들에게 당한 성폭행 피해자이다. 큰 유진이는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에게 실연을 당한다. 작은 유진이는 유치원생 시절의 기억을 상실해버린다. 그래서 거의 10년만에 재회한 큰 유진이를 몰라본다.

 내가 보기에는 이들에게 있어 정말로 고통스러운 점은,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 자체보다는 성폭행 피해자인 자신들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색안경을 낀 위선적인 시선인 것 같다. 성폭행 피해자는 결코 순결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무뢰한같은 성폭행범, 그 놈들이다. 이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은 성폭행 피해자들이 더럽고 흉물스러운 존재인 것처럼 살며시 기피한다. 겉으로는 그들을 위로하고 불쌍히 여기는 척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위선적일 때가 있다. 성폭행범들의 경우처럼 악할 때도 있다. 천사의 날개를 감추고 사는 착한 사람들처럼 착할 때도 물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무엇일까? 천사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피조물? 아니면 악마의 작품? 그것도 아니면 하느님, 예수님의 자식들? 인간이라는 존재가 누군가의 자식, 즉 인간에게 그들의 어버이가 있다면 그것은 도대체 누굴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악마의 자식도 천사의 자식도 아니다. 인간은 천사와 악마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천사와 악마, 그 둘이 공존해 있으며 세상은 선과 악이 자연스레 뒤엉켜있는 상태인 것이다.

 어쨌든 두 유진이는 성폭행의 가련한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위선적이고 삐딱한 세상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작은 유진이의 경우에는 앞서 말했듯이 그 때의 기억을 상실하는데, 그 기억을 지운 당사자는 놀랍게도 성폭행범이 아니라 유진이의 엄마였다. 유진이 엄마는 자신의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게 부끄럽고 창피해서, 유진이를 목욕탕으로 데려가 온 몸이 시뻘게 질 정도로 세게 박박 때를 민다. 때를 밀며 연신 "잊어버려! 하나도 남기지 말고 잊어버려!"를 외친다. 효과는 있었따. 하지만 그 기억, 유진이 엄마가 잊어버리라고 했던 기억뿐만 아니라 목욕탕의 일까지 15살이 되어서야 유진이는 비로소 떠올린다.

 그 다음의 사건의 전개는 내용을 보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었다. 갈등, 괴로움, 깊은 슬픔, 가출 등. 작은 유진이의 엄마는 왜 그랬던 것일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작은 유진이가 너무 불쌍했다. 그 엄마도 불쌍했다. 자기 자신도 자기 자식을 그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에는 반드시 고통과 차별이 붙어다닌다는 것을. 만약 내가 유진이같은 일을 당했더라면 우리 엄마도 유진이 엄마처럼 그랬을까? 그럴리가 없다. 안 그랬을 것이다. 아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누나와 내가 키우던 햄스터가 더럽다며 목욕을 시켜준다 해놓고 햄스터집에 수돗물을 콸콸, 가득 틀어 햄스터를 죽였던 엄마지만,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진이 엄마는 잘못된 방법을 써먹은 것이다. 더 아껴주고 보듬어 주었어야 하는데...

 이 소설은 성폭행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무겁고 어두울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은 적잖이 재미있는 소설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주인공들이 등장해서 그런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좀 더 빨리 빠져들 수 있었다. 책 읽는 속도가 느린 내가 3~4시간 만에 후딱 읽을 수 있었으니 그 누구에게나 그리 어렵지 않고 흥미로운 소설이 될 듯 싶다.

 마지막으로 유진이들에게 전한다.

"성폭행을 당한 일은 결코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야. 물론, 그에 따른 차별과 곱지 않은 시선이 너희들을 따라 다닐 테지만, 힘을 내. 너희 곁엔 친구가 있잖아. 큰 유진이, 작은 유진이. 서로가 친구잖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