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의 인물(왕건)이 굥을 닮은 것 같아서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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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잠을 자는 사람에게도 햇볕은 내리쬔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펠리시아의 여정(윌리엄 트레버, 문학동네)을 읽고

‘실종된 소녀와 연쇄살인범, 팽팽한 심리적 긴장 때문에 이 작품을 완성도 높은 스릴러나 장르문학으로 분류하는 비평가도 있’다고 한다. 솔직히 동의는 못하겠다. 읽으면서 스릴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작품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굳이 스릴러라는 이름표를 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잔잔하고 일정 부분은 지루한 소설이다. (지루한 건 부족함, 나쁨, 단점이 아니다.)

힐디치와 펠리시아 사이가 파국을 맞는 듯한 일촉즉발의 장면에서 잠깐 초조했다. 그뒤 나는 펠리시아가 살해 당했다고 생각했다. 힐디치가 떠나간 펠리시아 찾아나서며 울적해하는 모습은 착란상태인 줄 알았다. 그의 횡설수설이 헷갈렸지만 펠리시아가 도망쳐서 살아있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했고 마지막 부분에 다시 등장한 그녀를 보고 마음을 놓았다.

앞부분에 드러나는 시대와 공간이 흥미로웠다. 1990년대 초반 아일랜드는 신선하고도 낯선 분위기였다. 아일랜드 소설하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떠오르는데, 읽어본 적은 없다. 음악 영화 ‘원스’,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본 게 그나마 아일랜드 문화와 닿은 연이다.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의 호수섬‘을 ‘한국어‘로 고등학교 때 접하긴 했으나 거기서 아일랜드만의 특색을 만나진 못했다.) 그 나라의 비극적이고 한 많은 역사가 한국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선배 가운데 영문과에 다녔던 아는 형이 어학연수를 더블린으로 다녀왔던 게 기억난다. 술을 좋아했던 그 형은 펍이 즐비한 아일랜드를 회상하곤 했다. 그 나라 애국가가 군가랑 비슷하다고 했다. (지금 검색해보니 제목이 The Soldier‘s Song 이다.)

이 소설을 쓴 윌리엄 트레버가 ‘작가들의 작가’라고 하던데 읽고 나니 왜 그렇게 불리는지 알겠다. 그는 주저리주저리 말하지 않는다. 간결하게 압축해서 표현한다. 꾸미지 않아도 멋들어진다. 과거사를 늘어놓지 않고 한두 문장으로 처리한다. 힐디치가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암시, 목매달아 죽은 그를 묘사한 대목이 그 예다. (그밖에도 많다.) 예술성 높은 소설은 무언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기 보다는 ‘잘 감추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윌리엄 트레버는 대가다.

원치 않는 임신, 의도하지 않은 임신중단 뒤 노숙자로 잉글랜드에 머무는 아일랜드 여자 펠리시아, 그녀에게 연민의 눈길을 보내지는 않으련다. 펠리시아는 그러한 시선을 받기보다 따뜻한 햇볕을 쬘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바닷가를 산책하며 부드러운 산들바람을 맞고 “...두 손을 뒤집어 다른 쪽도 햇볕을 쬐고 고개를 살짝 기울여 얼굴의 반대편도 따뜻하게 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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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초판이 나오고 개정되지 않았다. 기자의 세계를 일별할 수 있고 입문서의 성격을 띄고 있으나 낡은 책이다. 아재 같은 기자들의 라떼는 말이야를 읽고 있노라면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느낄 수 있다.

26명의 기자가 한두 꼭지씩 글을 쓴 공저다. 그 가운데 여성 기자는 단 2명이다. 책이 나온 당시는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종사하고 있는 기자의 성별 분포를 보았을 때 분명 과소대표다.

민경욱, 정운현 같이 골 때리는 캐릭터도 필진에 들어 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기자 시절 이 책에 글을 남겼다. 정치권에서 가끔 돌아이짓 하는 인물들 중 기자가 많은 걸 보면 기자라는 직업에 무슨 마 같은 게 껴있는 듯 하다.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으로 일한 최상훈 기자가 쓴 글이 가장 흥미로웠다. 2000년 퓰리처상을 탄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탐사 보도 기사 취재기였다. 예나 지금이나 민족 정론지는 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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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이 서성이는 뒷골목을 빠져 나오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나이트메어가 악몽을 뜻하는 단어인 건 알겠다. 앨리, 이건 사람 이름인가? 여자 이름 같은데... 사전을 뒤적이고 나서야 앨리가 골목인 걸 알았다. 악몽의 골목.

주인공 스탠은 미신과 심령술을 이용해 사기를 치다 모든 걸 잃는다.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처럼 그 자신이 소설 첫머리 나오는 혐오스러운 기인이 되고 만다. 폐인처럼 지내며 유랑단에서 주는 먹이만 받고 엽기적 쇼를 벌이는 인생이 그에게 남는다. 

스탠은 어린 시절부터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곤했다. 어두운 골목을 달리는데 길 양쪽 건물들은 텅 비어 있고 컴컴하다. 저 멀리 길 끝에 빛이 있어 그걸 보고 달리지만 무언가가 그의 등 뒤에서 불길하게 다가온다. 그는 빛에 도달하지 못하고 잠에서 깬다.

스탠의 삶은 그가 꾼 악몽을 펼쳐 놓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돈, 성공, 여자는 골목 끝의 빛이었다. 그는 그것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린다. 술수와 배신을 이용해 달린다. 그도, 소설을 읽는이도 개운하지 않다. 결국 그는 무언가에 뒷덜미를 잡혀 빛에 도달하지 못한다. 스탠을 그렇게 만든 근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의 외도를 목격하고 성폭력의 상처를 입은 어린시절 경험이 큰 비중을 차지한 걸까.

미신이나 점을 신봉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종교도 믿지 않는다. 극도로 합리와 이성을 추구하는 내 성미 탓이다. 소설에서 속고 속이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거의 80년 전, 미국에서 벌어진 일들인데 지금 봐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등장한다. 합리와 이성은 내 확신보다 취약한가 보다. 소설을 읽는 동안 스탠이 달렸던 악몽 속의 골목을 서성인듯 했다. 그 골목을 빠져 나오며 숨을 골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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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그림도 이수지 작가가 그렸군!

#한스크리스티안안데르센상 #여름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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