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한 보석같은 소설가, 마르셀 에메>

예전에 소설을 공부하는 모임에 나간 적이 있다. 그 모임 사람들이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라는 단편소설을 추천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에메의 작품이었다. 처음 들어본 작가였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가려니 생각하며 그의 소설을 읽었다. 내가 지식이 부족해 잘 몰랐을 뿐 그는 “프랑스 문학의 희귀한 보석으로 평가받고 있는 거장”이었다. 다 읽고 나서 마르셀 에메에게 흠뻑 빠졌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무척 매력 있는 작품이었다. 등기소 공무원 뒤티유욀이란 남자가 잘못 처방 받은 약을 먹은 뒤 아무런 장애 없이 벽을 뚫고 나가는 능력을 얻는다. 그는 못된 상사를 골리고 의적처럼 은행과 부잣집을 턴다. 정체를 숨기다가 일부러 도둑질을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가서 신분을 드러내기도 한다. 투옥되고 나서도 능력을 발휘해 교도소장을 놀리고 탈옥한다. 그 뒤 뒤티유욀은 변장을 하고 살아가다 어떤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벽으로 드나드는 능력을 이용해 유부녀인 그녀의 집에 방문을 하고 사랑을 이어가던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예전에 처방 받은 남은 약을 먹고 나서 초능력을 서서히 잃는다. 그는 그걸 알아채지 못한 채 벽을 드나드려다가 꼼짝달싹 못하고 담벽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익살스럽고 재치 있는 이야기였다. 흥미로운 설정과 기발한 상상력 덕에 읽으면서 무릎을 쳤다. 재미와 완성도를 갖춘 훌륭한 문학작품이었다. 소설집에 실린 다른 작품들도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생존 시간 카드」는 부자들의 한 달은 31일보다 더 많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며칠 안 되는 삶이 주어진 상황을 배경으로 설정했고 (김영하 작가가 팟캐스트 `책 읽는 시간`에서도 소개한 작품이다. 그의 목소리로 소설 전문을 들을 수 있다.), 「천국에 간 집달리」는 꼼꼼하고 성실한 집달리가 죽은 뒤 하늘나라에서 천국과 지옥행을 두고 재판 받는다는 이야기였다. 각 소설에 박힌 깔끔한 문장과 풍성한 어휘가 읽는 맛을 더해주었다. 프랑스어 작품을 한국어로 옮긴 이세욱 씨 덕분이다. 「개미」를 비롯해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품을 여럿 옮긴 스타 번역가다.

마르셀 에메를 `좋아하는 소설가 명단`에 망설이지 않고 올리겠다. 그가 쓴 다른 작품들을 더 찾아 읽고 싶다. 장편 『초록 망아지』와 단편모음 『파리의 포도주』를 출판사 `작가정신`이 냈는데 지금은 절판되었다. 도서관을 뒤져야겠다. `창비`와 `살림`이 출간한 책에는 「사빈느」와 「난쟁이」가 수록되었다. 이것부터 읽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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