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28

<이회영과 젊은 그들> 이덕일, 역사의 아침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다.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와 선행을 뜻한다. 우리 나라에도 이를 실천한 명문가가 있었으니 바로 이회영과 그의 형제, 가족들이었다.

500년 왕조의 끝자락, 망국지탄의 신음이 강토 여기저기서 새어 나오던 1910년이었다.홀연히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노비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멀고도 차가운 만주 땅으로 떠난
삼한갑족(명문가를 뜻하는 말)이 있었다. 백사 이항복의 후손이며 조상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낸 이들을 숱하게 배출한 이회영 집안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돈으로 치면 수백억에 달하는 재산을 갖고 만주로 떠나서 독립운동의
기지가 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다. 한 때는 귀족이었지만 추위와 배고픔에 이를 악물며
나라의 해방을 꿈꾸었을 이회영과 젊은 그들. 이들의 대척점에는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나라를
일제에 넘긴 고관대작들이 있었다.

엄혹한 시절 내내 싸우던 이회영은 노인이 되어서도 독립운동의 새로운 기반을 닦기 위해
상하이에서 만주로 간다. 그러다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안중근 의사도 갇혔었던 뤼순감옥에서 운명을 달리한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조국으로 보낸 부인과 떨어져 지낸지는 7년이 될 쯤이었던 그때, 그의 나이는 만 65세였다. 그날은 이제껏 일제에 져본 적 없는 그가 아마 저승으로 가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 날이었으리라....

재야역사 학자 이덕일 씨는 한국사의 이슈를 쉽고 친근하게 풀어쓴다. `조선왕 독살사건`,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도 많은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그는 식민사관을
탈피하고 한국사의 대륙성과 해양성을 복원하는데 초점을 두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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