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내음이 나고 바스락거리는 시>

- 시집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김용만, 삶창시선)를 읽고

언제부턴가 한국 현대시를 읽지 않았다. 알아들을 수 없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암호문 같은 시구를 외면했다. 공부가 부족한 탓일까. 케이팝 아이돌의 음악과 세계관에 입덕하려 해도 사전지식을 습득해야 즐길 수 있는 시대다. 수 천 년을 이어온 시라는 장르를 너무 쉽게 보고 날로 먹으려든 것이었을까.

오랜만에 ‘알아먹을 수 있는‘ 시집을 만났다. 김용만 시인의 작품은 관념에 젖어있지 않았다. 그의 시에서는 흙내음이 났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름다운 것들은
땅에 있다

시인들이여

호박순 하나
걸 수 없는

허공을 파지 말라

땅을 파라
(‘시인‘)

임실에서 태어나 완주에서 산다는 시인은 소소하게 농사를 짓고 시도 짓는다. 시에 그의 생활이 묻어 있다. 돌담, 지게, 산중 풍경, 서리, 호미... 그의 곁에 있는 사물과 경치가 그대로 시가 되었다.

산동네 꽃들은
골목에서 크고
부잣집 꽃들은
창살 안에 큰다

산동네 꽃들은
동네 사람 다 보고
부잣집 꽃들은
저그덜만 본다
(‘꽃‘)

골목에서 크고 자라 나 같은 동네 사람도 읽을 수 있는 그런 시집을 오랜만에 만났다. 덕분에 이 가을 감히 나도 시 한 줄 써볼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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