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쓴 소설을 하나씩 읽어나가고 있다.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나고 나서 한 생각은 ‘어머, 이 사람 껀 다 읽어야 해‘였다. 그가 지은 이야기는 탐미, 관능, 쾌락이 가득해 흥미로웠고 시대를 앞선 세련미가 있었다. 나는 다니자키 준이치로 월드를 섭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슌킨 이야기‘는 ˝장님 샤미센 연주자인 여성 슌킨을 남자 하인 사스케가 헌신적으로 섬기는 이야기 속에 마조히즘을 초월한 본질적 탐미주의를 그린˝ 경장편소설이다. 어릴 적부터 슌킨 곁에서 수발을 든 사스케는 아름다웠던 슌킨을 자신의 관념에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그녀의 상한 얼굴을 절대 보지 않으려고 스스로 자기 눈을 바늘로 찔러 실명한다.
이 소설도 다니자키의 다른 작품 ‘치인의 사랑‘처럼 쎈 언니와 숙이고 들어가는 남자가 나오는 구도다. 다니자키가 혹시 마조히스트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아니었는데도 이런 설정을 활용해 실감나게 소설을 창작했다면 더욱 대단한 사람이었을 거고.
˝갓 상경한 사스케에게는 그 자매들이 시골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소녀로 보였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맹인이었던 슌킨의 형용할 수 없는 기품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슌킨의 감긴 눈이 자매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보다 맑고 아름답게 느껴져서 이것이 진정한 슌킨의 얼굴이며 예전부터 이랬어야만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스케는 여자 종업원 숙소에 들어가 거울과 바늘을 몰래 자신의 침소로 가져왔다. 이불 위에 정갈히 앉아 거울을 보며 자신의 눈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바늘로 찌르면 눈이 먼다는 지식이 있었던 게 아니라 되도록이면 고통 없이 쉬운 방법으로 맹인이 되고자 바늘로 왼쪽 눈동자를 찔러 본 것이었다. 제대로 눈동자를 찌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흰자위는 딱딱해서 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았지만 검은 눈동자는 부드러워서 두세 번 찌르자 손쉽게 들어갔다. 몇 밀리미터 정도 들어갔다고 느낀 순간, 안구 한쪽이 뿌옇게 흐려지며 시력이 사라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맹인인 사스케는 현실의 눈을 감아 버리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관념의 세계로 넘어갔던 것이다. 그의 시야에는 과거로 기억되는 세계만이 존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