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 - 세계일주 단독 항해기
알랭 제르보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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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

  자기만의 배를 갖고 혼자 세계 일주하는 기분은 어떤 걸까. 망망대해에서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벅찬 기분이 드는 동시에 겪게 될 온갖 위험과 고난에 겁이 나기도 하겠다. 그럼에도 낯선 사람과 낯선 도시에서 마주하게 될 경험은 얼마나 새로울까. 물론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하기에 불안하다. 지금도 자신의 배를 이용해 혼자 세계 일주하는 건 참으로 이루기 어려운 도전과제인데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에 이 과업을 달성한 사람이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프랑스인 알랭 제르보가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단독 항해 세계일주를 이뤄낸 주인공이다. 오래된 경주용 요트인 피레크레를 중고로 구입해 대서양을 항해하고 각종 메달과 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내친 김에 타히티, 피치 등 폴리네시아 지역이 속한 태평양을 건너 희망봉을 돌아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다. 테니스 대회 우승자이자 1차 세계대전 참전 조종사이기도 한 그가 세계 일주를 하며 남긴 항해기는 여러 부분으로 나뉘는데 이 책의 원제는 귀로에서이며 그의 세계일주 일정 중 대서양, 파나마 파트를 제외하고 태평양의 폴리네시아에서부터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다른 경로의 이야기를 담은 태양을 좇아서등 다른 이야기들도 번역이 된다면 함께 읽어보고 싶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항해를 하며 그가 보고 느꼈던 일지를 담아낸 것으로 알랭 제르보가 직접 남긴 기록이기에 그가 사랑한 배 피레크레의 입면도, 평면도에서부터 그가 지나온 항로, 그를 환영해준 태평양의 사람들의 인물이나 생활모습의 흑백사진들과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자필 편지까지 다양한 자료를 함께 보며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자신을 환대한 원주민들에 대한 애정과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에 대한 예찬, 식민통치를 하고 있는 그들의 위선과 독선에 대한 염증을 느끼면서도 단독 항해를 하며 겪게 된 어려움에 마주했을 때 그를 도와줬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느낄 수 있다.

 

(86p) 제국주의 시대 서구 열강들이 침략한 곳은 남태평양의 수많은 섬나라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저자는 원주민들을 지배하며 정착하게 된 서구인의 모습을 비추며 자연적인 생활을 거부하고 침략자로서 권위를 찾으려는 모습을 비판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저자 역시 서구 열강 중 하나인 프랑스인으로 지금과 전혀 달랐던 당시 인식 속에서도 기존의 자연에 적응하는 원주민의 삶을 존중하고 서구 문명을 비판하는 모습에서 시대를 굉장히 앞서 나간 인식이 놀랍다. 항로를 정하고 배를 수리하거나 섬에 들러 총독들의 환대를 받는 등 물론 저자가 서구 열강에 속한 인물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을 여정이긴 했지만 자신의 문화를 최고로 여기지 않고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하는 모습은 현재가 아닌 당시의 시선으로는 꽤나 선구적이다.

 

(109p) 백인 문명에 의해 수많은 문명이 사라진 것에 대해 서구 문명의 수탈과 착취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삶의 즐거움을 강탈당한 점을 예로 들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과 저자의 실제 삶에서도 프랑스가 아닌 남태평양에 정착해 자연 속에서 원주민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꾼 말과 행동에서 일관된 삶을 실천해 더 진정성 있게 와닿는 것 아닐까.

 

(157p) 문명이 물질적으로 발전되었으나 우리 인류의 의식에서 과연 자연 상태에 비해 우리가 발전한 게 맞을까. 우리가 맛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예전에 비해 좋아진걸까라는 의문을 생각해보게 하는 말.

 

(245) 사회진화론에 입각해 적자생존의 법칙을 인류 사회에도 적용해 타 문명에 대한 열강의 정복을 정당화하던 시대에 문화상대주의에 입각해 원주민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열등하다는 편견을 배제한 채 다른 문명의 사람들을 동등하게 바라보았다는 점은 현재에도 유효한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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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유영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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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일본이 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세계 3위권의 경제 대국임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본이 여전히 선진국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는 다소 물음표가 생긴다.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들에는 경제적 요인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앞서나가고 배울 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정치적 자유, 민주주의 시스템, 국민들의 인권 보장, 문화적 다양성 및 신뢰받는 사법 체계와 효율적인 행정시스템이 뒷받침되는 국가 운영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최근 뉴스 등의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된 일본의 모습들을 살펴보면 과연 일본이 선진국인가라는 의문이 들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의 시선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일본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분석한 저자의 견해를 통해 현재의 일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어쩌면 많은 문제에 직면한 일본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은 무엇일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저자가 단순히 일본을 깎아내리거나 지금 일본에서 보이는 현상을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사법,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현재의 일본이 처한 상황을 다양하면서도 최근 발생한 구체적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 이를 일본의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 구조를 분석하며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심층적으로 설명한다. 현재의 일본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큰 흐름을 함께 짚어나가고 여러 분야에서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본의 국가 운영 시스템과 의식의 차이를 살펴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일본이 처한 대부분의 문제의 뿌리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서구열강의 외양만을 모방한 채 위로부터의 근대화, 밖으로부터의 민주화라는 한계 탓에 장기불황과 신자유주의라는 위기에 부딪쳐 억눌려있던 문제가 쏟아져나온 것으로 본다. 이러한 문제점은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일본을 통해 우리가 당면한 문제점들의 뿌리를 바로 보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1장 일본의 법치 파트와 2장 개인보다 사회에 방점을 두는 일본 사회의 특징에 대해 서술한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사법 체계에 대해선 새로이 알게 된 점이 많았고 2장에서는 우리가 흔히 일본 사회가 개인주의라 생각했던 인식을 보다 다르게 정의할 수 있는 설명을 접할 수 있어서이다. ‘일본은 겉으로는 개인주의적 사회로 보이지만, 결코 아니라고 단언한다. 개인주의의 핵심은 사회 비판과 저항의 용인인데, 일본은 이를 수용하는 문화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집단의 안정을 위협하지 않는 개인의 일탈 뿐이다. 개인은 파편처럼 흩어져 있을 뿐이다.’ ‘고립과 무관심이란 키워드로 접근해 서구의 프라이버시 존중과 다르게 일본은 특유의 민폐 문화로 독립보다는 고립의 색깔이 짙다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인질 사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피의자 대부분을 구속 수사하는 데다 구속 기간도 무한정 늘릴 수가 있어 자백을 받아내는 형태로 검찰의 수사가 이루어진다. 구속 영장을 기각하는 비율도 5퍼센트에 불과하고 첫 48시간은 심지어 변호인의 입회도 금지되는데 이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다. 형사사건에서 유죄율도 한때 99.9%를 기록할 때가 있을 만큼 기소되면 거의 유죄라는 말이다. 또한 형사법의 기본인 무죄추정의 원칙도 사회 전반적으로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으며 책에서 나온 표현처럼 피의자의 인권에 무심하고 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혹독하게 처벌하는 엄벌주의가 지나쳐 아직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가혹하다는 것이다. ‘사회 방위에 중점을 두고 피고인의 인권에 무관심해 억울한 죄를 낳기 쉬운 구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언제든 그 무고한 피고인이 내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들게 할 것이다. ‘용의자=범죄자라는 공식이 통용되는 점은 사회 질서를 확립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개인보다는 국가를 우선하고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선진 모델이라 삼기 어렵지 않을까.

 

  일본이 메이지 정부 들어 근대화된 사법 체계를 도입하며 근대법의 핵심 가치인 인권, 입헌주의 등에 대한 고민 없이 기존 일본의 봉건적 가치관은 그대로 둔 채 서구의 법체계만 따왔다는 저자의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지금까지도 일본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비단 사법 체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의 일부 세력은 자신들이 부흥기로 생각하는 메이지 시대의 영광을 근간으로 하는 듯하다. 문제는 이들이 여전히 일본의 주류 정치세력이며 경제, 사회 전반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책을 편다는 점이다. 사법권은 입법, 행정부의 세력을 견제하지 못하며 관료주의적 시스템으로 진정한 의미의 삼권분립이라 보기 힘들며 가부장적 사회를 모범으로 생각해 여성 인권에 대한 전근대적 인식은 여전히 남아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연합국의 통치 편의를 위해 일본의 전후 국가 운영의 인적 단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많은 것이 연속되는 결과를 낳았고 이어진 냉전 체제와 한국 전쟁을 거치며 일본의 진정한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이는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 도입해보면 우리 역시 인적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수많은 근대화의 시스템의 영향으로 우리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현재의 일본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처한 문제점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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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판결문 - 이유 없고,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판결을 향한 일침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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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의 권력을 나누어놓은 삼권분립에 따라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은 입법, 행정, 사법기관 중 법원은 어쩌면 국민과 가장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기관이 아닐까.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이 법을 제정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국회의원이나 우리 생활과 밀접한 정보를 먼저 알게 되고 이와 관련된 정책을 집행하는 고위공직자들의 권력도 대단하지만 국민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칠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뉴스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공개되기도 하고 각 기관에 의견을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비교적 열려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한 각 기관에 속한 개인이 잘못을 했을 때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도 국민에게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경우, 4년마다 있는 선거를 통해 직접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정부의 경우에도 일반 국민들이 각 부서별로 민원을 제기하기가 예전에 비해 보다 용이해지도록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잘못에 대한 책임은 사법부로 이관되어 재판 과정을 통해 합당한 처벌이 이뤄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원이 잘못했을 때, 과연 그에 대한 잘못을 법원 스스로가 책임을 잘 묻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확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국민에게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국민들에게 법원은 아직 멀고 높게만 느껴지지 않을까. 물론 법원의 판결은 매우 전문적인 역량을 요구하는 일이고 개인의 일생을 결정지을 수 있는 큰 힘을 가졌기에 다양한 과정을 통해 어렵게 선발된 전문가들이 그 과정에 참여해야 함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 때문에 사법의 힘이 국민의 영향력 밖으로 빠져 나가선 안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법정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특히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욱 그럴 것이다. 판례를 참고해 판결을 내리고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법원이 지닌 특유의 보수성으로 인해 국민들의 법 정서와 다른 판결이 내려지거나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해 현실과 맞지 않는 결과를 얻게 되거나 할 때 우리는 사법기관에 실망하지만 구체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공고한 법원의 위상에 끊임없이 돌을 던지며 문제를 제기하고 조금씩 변화를 이끌어내려 노력하는 변호사가 있어가슴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때때로 우리에게 법에게 필요한 건 법적 안정성 뿐만 아니라 구체적 타당성일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바뀌기 쉽지 않지만 추천사 중 하나의 문구에서처럼 변화란 결국 쉬운 해답을 추구하기보다는 의미 있는 질문의 수를 늘려가는 것이고 이기든 지든 필요한 싸움을 찾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이루어진다라는 말처럼 현재 우리 법 체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부조리에 맞서 앞선 판례를 확인하며 모두 손쉽게 눈을 감는 선택을 할 때 이와는 반대로 맞서 싸우는 선택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어 감사하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사례로 소개된 이야기들을 보며 우리가 어쩌면 너무도 법원에서 벌어지는 잘못에는 관대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당사자로 법정에 서게 되면 불이익을 받을까 그런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렇지 않고서도 재판 기일을 일방적으로 바꾸거나 늘어지기만 하는 재판부의 모습이나 불편한 법률 서비스, 판결에 대한 이유가 적혀 있지 않아 자신이 왜 그 판결을 받았는지 이유조차 알 수 없는 판결문은 당사자로서 당연히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물론 사법부의 업무 과중으로 이해할 수 있는 요소도 분명히 있을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재판을 청구해 받을 수 있는 국민으로서 권리가 무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선 안될 것이다. 더불어 책에서 주요 내용으로 나오는 법관의 잘못된 재판 결과로 인해 국민이 받은 피해를 국가가 배상하고 책임을 묻도록 하는 싸움은 쉽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함께 의논해 결론을 내야할 영역이라 생각한다. ‘법원에 대한 비판은 자칫 사법부의 독립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저하게 된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권은 국민을 위한 것이지 법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다. 또 우리가 존중해야 할 건 사법부가 선고하는 판결이지 불편부당한 서비스가 아닐 것이다.’ 라는 말에 크게 공감이 된다. 이 밖에도 국가배상 사건의 위자료가 재판부마다 들쭉날쭉 달라 피해자에게 위로는커녕 고통을 주는 결과나 공익 신고자를 현실적으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법, 성범죄 양형과 심신미약 규정의 잘못된 적용으로 인한 감형,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상속 지위만을 취득한 자들을 막을 수 없는 현실, 공소시효로 인해 증거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 잘못을 물을 수 없는 문제, 3심까지 재판받을 수 있는 국민의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지 못한 채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되는 경우에 생겨날 수 있는 기회의 불균등 등 국민 대다수의 법 정서와 달라 매번 분노하면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었던 법 체계 속 많은 부조리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면서 동시에 국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법 체계가 구축될 수 있도록 모두가 논의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관 선발이나 법관 평가 결과 등을 통해 국민의 의견이 사법부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명백한 잘못이 있을 때 법관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잘못된 판결이 되도록 나오지 않도록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생겨나길 간절히 소원한다.

 

  ‘좋은 법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저자가 소개한 법철학자의 표현처럼 작은 변화로 시작해 우리 사회가 보다 공정하고 모두가 소외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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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의 시간 - 결국 현명한 자는 누구였을까
안석호 지음 / CRETA(크레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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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의 시간


  

  장벽이라 함은 사전적으로 가리어 막은 벽, 둘 사이의 관계를 순조롭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등을 뜻하는데, 이 책에서는 체제, 민족, 국가, 경제력 등의 다름을 이유로 서로를 나누고 교류를 할 수 없도록 세운 유무형의 장애물을 뜻한다. 상대방과의 연결보다는 단절, 소통보다는 억압, 융합보다는 분리를 위한 목적으로 세운 장벽이기에 그 안에 속하느냐와 밖에 남겨지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운명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인류사에 수없이 많은 장벽들이 있었겠으나

저자는 20세기에 생겨난 장벽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펼쳐가기에 오래 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건이며 대부분의 장벽은 지금도 사람들을 분리하고 단절시키며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중이다. 유일하게 무너진 사례인 독일의 베를린 장벽을 필두로 중동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미국과 멕시코 국경 문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비무장지대 그리고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무역 장벽까지. 어쩌면 많은 사람에게 지구촌 곳곳의 갈등 사례 중 하나로 이미 익숙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장벽이 생겨나게 된 배경에서부터 어떠한 목적으로 세워졌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쳤고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을 읽다보면 어느 새 그 장벽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는 동시에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 책의 장점은 첫 번째로 장벽이 생겨난 원인과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근본적인 시작점에서부터 풍부하게 서술해 왜 두 집단 사이의 갈등이 생겨나게 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동독이 왜 베를린장벽을 세우게 되었는지, 이스라엘이 서안 지구 곳곳에 정착촌을 지정하며 그 사이사이로 장벽을 세우게 되었는지, 느슨하던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왜 거대한 높이와 엄청난 길이를 자랑하는 장벽이 세워지게 되었는지 다각도로 문제를 접근해 자세하게 갈등이 생겨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어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장벽을 세우는 전개과정과 장벽이 생겨남으로써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는지 중립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잘 서술되어 있으며 최근 발행한 책답게 그 장벽들에 대한 최신 이야기까지 알 수 있어 좋았다.

 

  두 번째로 장벽그 자체에 대해서만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벽 속을 넘나드는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덧붙여 담아내고 있기에 더욱 글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가령 예를 들면, 체제를 이유로 베를린을 동서로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뒤 이를 넘어간 많은 사례를 들자면 장벽을 지키던 동독의 경비병 슈만이 철조망을 넘어 서독으로 간 장면이나 자신이 몰던 기관차를 몰고 바리케이드를 부수며 서독으로 향했던 기관사 해리의 이야기 등은 내가 역사 속에서 생각했던 베를린장벽에 대한 서술보다 훨씬 인상적이었으며 장벽으로 인해 분리된 사람들의 절박한 심경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미국으로 불법으로 이민을 하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지대로 향하는 화물 열차 속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이고 냉혹한 현실과 함께 이들과 거래하며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브로커 코요태와 국경지대를 향해 걸어가는 캐러반 행렬 등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며 탈출을 감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장벽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강이나 바다, 산맥과 평원과 같은 자연적인 지형에서 인간은 오랜 기간 동안 함께 적응하며 융합과 분리를 자연스럽게 겪어왔다면 이와 달리 장벽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세운 장애물이며 그러하기에 건설하는 시간도 급작스러워 사람들도 쉽게 적응하기 어렵다. 또한 장벽을 세우는 특정 집단의 목적이 더해졌기에 이에 반발하는 다른 집단의 저항도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장벽을 지키기 위해 특정 국가가 쓰는 병력, 장비, 시간 등은 실로 막대하다. 그럼에도 장벽을 세워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를 아끼지 않으며 더욱더 높고 단단하게, 빈틈없이 세워 다른 집단을 막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 한다. 그 결정은 훗날 돌이켜보았을 때 역사 속에서 과연 현명했던 판단이었을까. 책의 부제로 함께 달린 결국 현명한 자는 누구였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르며 우리는 이미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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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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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이 책의 표지 속에는 인류가 발전시켜온 도시들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들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소규모의 공동체 속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며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렵채집사회를 지나 농경사회가 탄생한 이래로 인류는 집단을 이루며 정착하면서 자신이 머무를 수 있는 세계를 끊임없이 확장해왔다. 씨족사회에서 부족사회 중심의 마을 단위에서 국가를 수립한 뒤 생겨난 도시들은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혀오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일자리를 찾아 세차게 밀려들어온 노동자로 인해 도시에는 엄청난 인구가 밀집해서 살아가게 되는 거대 도시가 탄생하였고 인류의 문명은 집적 효과에 따라 보다 고도화되고 새로운 사회와 문화 양식을 창조해냈다. 도시의 범위와 규모는 점차 늘어났고 교통수단과 네트워크의 발달로 생활권은 거대해져 말그대로 메트로폴리스가 탄생한 것이었다. 도시는 인류가 그동안 연구해낸 수많은 기술과 인류가 창조해낸 수많은 작품들이 모여 있는 최고의 종합 발명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역사에서 우리는 도시 자체보다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인물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았던 것 같다. 최초의 도시로 부를 수 있는 우르크에서 시작해 역사 속 인류의 문명을 꽃피워간 도시들을 살펴보며 현재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많은 메트폴리스까지 도시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와 모습들을 한 번에 살펴볼 수 있으리란 기대와 함께 책을 읽게 되었다.

 

  서문에서 저자는 세계 도시 인구는 점차 늘어날 것이며 인류의 과거와 미래는 도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하면서 점차 도시는 수직형 세월에 대한 동경과 함께 위로 솟구치고 동시에 영역 또한 넓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더 이상 도심과 교외 지역이 분리되지 않고 지역 전체를 아우르며 연결된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집적 효과를 누리며 고도로 발달한 도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격차는 비단 국가 내에서만의 도농격차가 아닌 세계 전체에서 바라보았을 때도 경제적 격차와 기회의 차이를 가지는 문제점을 드러낸다. 또한 메트로폴리스 는 자체적으로 환경 오염과 인간성 파괴 등 과밀환된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문제점을 가지면서도 도시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겨내며 앞으로도 인류는 도시에서 변영을 누리며 살 것이다. 이 점이 책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메트로폴리스에서는 도시를 인류와 분리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도시의 건축 양식이나 배경으로만 생각해 변화 과정을 나타내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 않다.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터전으로서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도시 생활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하고 이를 극복했는지에 초점을 두고 도시와 인간 간의 상호 작용을 핵심으로 저자는 책을 서술하고 있다. 별도로 덧붙인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서울이라는 거대한 메트로폴리스를 만들어온 한국에 대해 새로이 건설한 도시인 송도에 대한 언급을 하며 설령 잘 설계된 도시로서 송도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송도에 거주할 사람들이 새로이 써내려갈 이야기와 이로 인해 변하게 될 도시에 더 호기심이 있다.

 

  잘 알지 못했던 중동의 바그다드, 동남아시아의 믈라카, 중앙아메리카의 테노치티틀란의 도시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와 이미 잘 알려진 런던, 파리, 뉴욕 등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있고 어떤 이야기들로 도시가 채워졌는지 살펴볼 수 있어 너무나 즐거웠다. 켜켜이 쌓인 도시들의 지층을 살펴보며 우리 나름의 이야기를 쌓아올린 한국의 도시들이 떠오르고 우리와 비슷한 모습도 있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은 도시들도 발견해가며 읽는 즐거움이 있고 또한 나이지리아의 라고스를 통해 미래 도시의 모습을 엿보며 우리 나라의 다음 시대의 서울 또는 다른 도시의 발전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되기도 했다.

 

  책에서 소개된 20여개의 도시들을 시대별로 발전해온 도시들을 따라 여행하며 발견한 점은 일전에 저자가 밝히듯 각 도시들이 가진 저마다의 독특함이 흥미롭게 다가오고 다채로운 매력의 순간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동시에 인간은 도시를 만들어낸 존재이면서 그 속에서 환경의 영향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들은 어쩌면 어느 도시에나 비슷하고 현대의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와도 여전히 유사한 보편성을 지닌 모습들도 발견할 수 있어 현재에도 유효하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분명 있었다. 다소 방대한 양이지만 차근차근 한 도시씩 품은 이야기를 살펴나가면서 책을 읽는 내내 과거의 수많은 시대와 빛나던 도시를 돌아보며 내가 현재 속해있는 시대와 도시를 비교해보고 나아가 도시가 미래에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고민해볼 수 있는 지적 즐거움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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