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떤 어른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4년 11월
평점 :

저자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3년 전 쯤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을 ‘어린이라는 세계’였다. 개인적으로도 ‘어린이’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어 어린이를 일상에서 접하는 시간이 꽤 오래지만 ‘어린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책을 읽으며 진한 여운을 느꼈었다. 무엇보다 어린이이라는 존재 자체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존중하는 마음이 너무 기억에 남아 대부분의 내용을 잊어버린 지금에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어린이에게 존댓말로 인사를 건네는 습관이 남아있을 정도로 어린이라는 존재를 대할 때 이따금씩 스스로를 많이 되돌아보게 되는 순간을 떠올릴 정도로 인상적인 글이었다.
저자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주저 없이 책을 골라 산 뒤 한참을 읽지 못했다. 전과 달리, 개인적으로도 가정에서 어린이라는 존재가 태어났기 때문에. 한 책을 집중해서 오랫동안 읽는 시간이 전적으로 부족해 이 책을 사고 나서 페이지를 편 것은 가족여행으로 파주 출판단지에서 북스테이를 할 때, 아이들이 잠든 틈을 타 카페에서 책을 잠시 읽었을 때뿐이었다. (책을 읽고 보니 그곳에서 책을 읽은 것도 작은 우연일 지도 모르겠다) 그 후 다시 이 책을 읽게 된 순간은 어린이라는 존재를 다시 따뜻하게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필요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책을 다 읽고 나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따뜻하게 변해야겠다고 달라졌던 그 때의 느낌을 받고 싶어서였을지 모르겠다.
이 책은 크게 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는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전작처럼 어린이라는 존재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어른인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또는 어른이 쉽게 알지 못했던 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어린이라는 세계로 안내받아 잠시 어린이의 시선으로 어른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어 기대한 것처럼 작가만의 따뜻한 시선을 다시금 느낄 수 있어 감사했다. 가령 어른스럽다고 칭찬받는 어린이들도 사실은 어린이라는 것. 책을 읽어주면 좋아하고, 칭찬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어린이가 잠잠하게 듣고 있으니까 어려운 말을 하기도 하고 양보를 부탁하기도 하는데 나 또한 그럴 때가 많아 뜨끔했다. 또한 어린이들에게 박물관이나 문화예술 등과 같은 예시로 과거에 비해 좋은 것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데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도록 나아가야하고 그것이 사적인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공성을 통해 모두에게 이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는 말씀이 특히 좋았다. “서툴다는 것도 어른들 생각이지, 어린이 입장에서는 연습을 거듭한 ’지금‘이 가장 잘하는 때다. 설령 어린이에게 미숙한 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어린이의 인격이 미숙하다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어린에게도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덧붙여 챕터 마지막에는 작가의 세바시 강연 원고도 있는데 읽는 내내 울림이 있었다. “만일 공공장소에서 악을 쓰고 있는 어린이가 있다면, 그곳에서 제일 힘든 사람이 바로 그 어린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자기도 답답하겠지요. 당연히 공공장소에서 지켜야할 예절이나 질서는 어린이도 배워야할 것이다. 가르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어린이 입장에서 어떨까를 먼저 생각해본 어른이 그렇지 않은 어른보다 더 많을까. 사실 나조차도 그럴 때마다 어린이를 조용히 시키거나 데려가 그 장소를 벗어날 생각부터 할터였다.
두 번째 챕터는 열일곱 살이면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데, 어린이라는 보통의 관념에서 벗어난 숫자라 다소 의아했는데 챕터를 읽으며 작가의 생각은 보다 전작보다 확장되었고 초등학생만이 아니라 나아가 고등학생에까지 어쩌면 어린이라는 건 우리 모든 어른에게도 갖고 있는 모습이라 존중받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할 대상을 훨씬 넓힌 느낌이었다. 그래서 읽는 동안 두 번째 챕터를 읽는 것이 가장 책에서 새로웠고 어린이라는 관념을 보다 넓힌 느낌이었다. 어린이들이 가족을 제외하고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살아가는 학교라는 세계와 선생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제 역할을 해내기 힘든 환경으로 변해가는 현 위기 상황 속에서 어린이에게 외부로부터의 위험을 막아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믿어줘야한다는 말에 어찌보면 당연한 말임에도 너무 감사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어린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또한 사춘기라는 말로 많은 것을 뭉뚱그리고 있다는 작가의 표현에도 적극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어른이 하면 어엿한 한 명의 의견과 감정으로 인정받을 내용도 사춘기라는 틀로 뭉뚱그려 바라본다는 점이 뜨끔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작가의 표현처럼 어른이 되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일에 매달리는 게 답답하게 보이지만 나도 그 때 그랫듯 당사자는 하루하루 오늘을 살아가며 어른이 된 뒤보다 내일이 더 걱정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챕터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할까에 관한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내용이다. 어린이에게서 좋은 모습만 보고 싶어서 그런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볼 때면 쉽게 비난하고 탓했던 것 같다. 동심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 어린이의 마음은 착하기만 한 게 아닌데. 평소 착하게 말하고 잘 웃는 사람이 모든 일상의 순간에서 항상 친절하고 웃기만 해야하는 건 아닌데 그렇지 않은 날엔 뒤에서 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어린이에게 순수한 존재로 상상하고 천진난만한 모습만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지 모르겠어서 뜨끔했다. 어린이가 미워지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어른스럽게 대처하겠다고 마음먹은 작가처럼 나도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어른이니까 어린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좋은 어른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나는 어린이를 아주아주 많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니까.
‘나에게 없는 것을 어린이에게 줄 수 없으니 나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는 어린이와 관련된 많은 담론이 있었고 저자의 마음과는 달리 ‘노 키즌 존’은 여전히 곳곳에 많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노 키즈 존’에 대한 생각은 사람들 속에서 예전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막연히 생각했을 때 불편하겠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내가 아이들이 생겨 ‘노 키즈 존’에 해당하는 경우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이 표현이 더 차별적이고 기회조차 앗아간다는 마음에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절실히 알 수 있었다. 물론 아이들이 위험할 수 있는 환경이거나 의도하지 않더라도 아이들로 인해 소란스럽거나 물건을 파손하는 등 가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어 사장님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책에서의 표현처럼 복잡해야 하는 건 복잡하게 설명을 해주셨으면 한다. 단순하게 ‘노 키즌 존’이라는 단어만 붙이지 말고 왜 그래야하는지 굳이 설명해주시고 적어주시면 좋겠다. 그럼 이해할 수 있고 무시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공감되었다. 물론 예스 키즈 존, 케어 키즈 존 등 표시가 되어 있는 가게를 들어가면 괜히 고맙고 또 그만큼 신경쓰고 싶으며 존중해주어 고맙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괜히 사장님에게도 어필해보려는 마음도 든다. 작가님 덕분에 또 마음을 다잡고 내일 그리고 또 모레 앞으로도 한동안 어린이를 만나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