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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 - 세계일주 단독 항해기
알랭 제르보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1년 7월
평점 :

자기만의 배를 갖고 혼자 세계 일주하는 기분은 어떤 걸까. 망망대해에서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벅찬 기분이 드는 동시에 겪게 될 온갖 위험과 고난에 겁이 나기도 하겠다. 그럼에도 낯선 사람과 낯선 도시에서 마주하게 될 경험은 얼마나 새로울까. 물론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하기에 불안하다. 지금도 자신의 배를 이용해 혼자 세계 일주하는 건 참으로 이루기 어려운 도전과제인데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에 이 과업을 달성한 사람이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프랑스인 알랭 제르보가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단독 항해 세계일주를 이뤄낸 주인공이다. 오래된 경주용 요트인 ‘피레크레’를 중고로 구입해 대서양을 항해하고 각종 메달과 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내친 김에 타히티, 피치 등 폴리네시아 지역이 속한 태평양을 건너 희망봉을 돌아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다. 테니스 대회 우승자이자 1차 세계대전 참전 조종사이기도 한 그가 세계 일주를 하며 남긴 항해기는 여러 부분으로 나뉘는데 이 책의 원제는 ‘귀로에서’이며 그의 세계일주 일정 중 대서양, 파나마 파트를 제외하고 태평양의 폴리네시아에서부터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다른 경로의 이야기를 담은 ‘태양을 좇아서’ 등 다른 이야기들도 번역이 된다면 함께 읽어보고 싶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항해를 하며 그가 보고 느꼈던 일지를 담아낸 것으로 알랭 제르보가 직접 남긴 기록이기에 그가 사랑한 배 ‘피레크레’의 입면도, 평면도에서부터 그가 지나온 항로, 그를 환영해준 태평양의 사람들의 인물이나 생활모습의 흑백사진들과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자필 편지까지 다양한 자료를 함께 보며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자신을 환대한 원주민들에 대한 애정과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에 대한 예찬, 식민통치를 하고 있는 그들의 위선과 독선에 대한 염증을 느끼면서도 단독 항해를 하며 겪게 된 어려움에 마주했을 때 그를 도와줬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느낄 수 있다.
(86p) 제국주의 시대 서구 열강들이 침략한 곳은 남태평양의 수많은 섬나라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저자는 원주민들을 지배하며 정착하게 된 서구인의 모습을 비추며 자연적인 생활을 거부하고 침략자로서 권위를 찾으려는 모습을 비판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저자 역시 서구 열강 중 하나인 프랑스인으로 지금과 전혀 달랐던 당시 인식 속에서도 기존의 자연에 적응하는 원주민의 삶을 존중하고 서구 문명을 비판하는 모습에서 시대를 굉장히 앞서 나간 인식이 놀랍다. 항로를 정하고 배를 수리하거나 섬에 들러 총독들의 환대를 받는 등 물론 저자가 서구 열강에 속한 인물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을 여정이긴 했지만 자신의 문화를 최고로 여기지 않고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하는 모습은 현재가 아닌 당시의 시선으로는 꽤나 선구적이다.
(109p) 백인 문명에 의해 수많은 문명이 사라진 것에 대해 서구 문명의 수탈과 착취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삶의 즐거움을 강탈당한 점을 예로 들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과 저자의 실제 삶에서도 프랑스가 아닌 남태평양에 정착해 자연 속에서 원주민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꾼 말과 행동에서 일관된 삶을 실천해 더 진정성 있게 와닿는 것 아닐까.
(157p) 문명이 물질적으로 발전되었으나 우리 인류의 의식에서 과연 자연 상태에 비해 우리가 발전한 게 맞을까. 우리가 맛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예전에 비해 좋아진걸까라는 의문을 생각해보게 하는 말.
(245) 사회진화론에 입각해 적자생존의 법칙을 인류 사회에도 적용해 타 문명에 대한 열강의 정복을 정당화하던 시대에 문화상대주의에 입각해 원주민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열등하다는 편견을 배제한 채 다른 문명의 사람들을 동등하게 바라보았다는 점은 현재에도 유효한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