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유영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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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일본이 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세계 3위권의 경제 대국임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본이 여전히 선진국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는 다소 물음표가 생긴다.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들에는 경제적 요인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앞서나가고 배울 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정치적 자유, 민주주의 시스템, 국민들의 인권 보장, 문화적 다양성 및 신뢰받는 사법 체계와 효율적인 행정시스템이 뒷받침되는 국가 운영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최근 뉴스 등의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된 일본의 모습들을 살펴보면 과연 일본이 선진국인가라는 의문이 들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의 시선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일본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분석한 저자의 견해를 통해 현재의 일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어쩌면 많은 문제에 직면한 일본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은 무엇일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저자가 단순히 일본을 깎아내리거나 지금 일본에서 보이는 현상을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사법,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현재의 일본이 처한 상황을 다양하면서도 최근 발생한 구체적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 이를 일본의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 구조를 분석하며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심층적으로 설명한다. 현재의 일본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큰 흐름을 함께 짚어나가고 여러 분야에서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본의 국가 운영 시스템과 의식의 차이를 살펴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일본이 처한 대부분의 문제의 뿌리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서구열강의 외양만을 모방한 채 위로부터의 근대화, 밖으로부터의 민주화라는 한계 탓에 장기불황과 신자유주의라는 위기에 부딪쳐 억눌려있던 문제가 쏟아져나온 것으로 본다. 이러한 문제점은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일본을 통해 우리가 당면한 문제점들의 뿌리를 바로 보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1장 일본의 법치 파트와 2장 개인보다 사회에 방점을 두는 일본 사회의 특징에 대해 서술한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사법 체계에 대해선 새로이 알게 된 점이 많았고 2장에서는 우리가 흔히 일본 사회가 개인주의라 생각했던 인식을 보다 다르게 정의할 수 있는 설명을 접할 수 있어서이다. ‘일본은 겉으로는 개인주의적 사회로 보이지만, 결코 아니라고 단언한다. 개인주의의 핵심은 사회 비판과 저항의 용인인데, 일본은 이를 수용하는 문화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집단의 안정을 위협하지 않는 개인의 일탈 뿐이다. 개인은 파편처럼 흩어져 있을 뿐이다.’ ‘고립과 무관심이란 키워드로 접근해 서구의 프라이버시 존중과 다르게 일본은 특유의 민폐 문화로 독립보다는 고립의 색깔이 짙다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인질 사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피의자 대부분을 구속 수사하는 데다 구속 기간도 무한정 늘릴 수가 있어 자백을 받아내는 형태로 검찰의 수사가 이루어진다. 구속 영장을 기각하는 비율도 5퍼센트에 불과하고 첫 48시간은 심지어 변호인의 입회도 금지되는데 이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다. 형사사건에서 유죄율도 한때 99.9%를 기록할 때가 있을 만큼 기소되면 거의 유죄라는 말이다. 또한 형사법의 기본인 무죄추정의 원칙도 사회 전반적으로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으며 책에서 나온 표현처럼 피의자의 인권에 무심하고 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혹독하게 처벌하는 엄벌주의가 지나쳐 아직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가혹하다는 것이다. ‘사회 방위에 중점을 두고 피고인의 인권에 무관심해 억울한 죄를 낳기 쉬운 구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언제든 그 무고한 피고인이 내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들게 할 것이다. ‘용의자=범죄자라는 공식이 통용되는 점은 사회 질서를 확립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개인보다는 국가를 우선하고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선진 모델이라 삼기 어렵지 않을까.

 

  일본이 메이지 정부 들어 근대화된 사법 체계를 도입하며 근대법의 핵심 가치인 인권, 입헌주의 등에 대한 고민 없이 기존 일본의 봉건적 가치관은 그대로 둔 채 서구의 법체계만 따왔다는 저자의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지금까지도 일본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비단 사법 체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의 일부 세력은 자신들이 부흥기로 생각하는 메이지 시대의 영광을 근간으로 하는 듯하다. 문제는 이들이 여전히 일본의 주류 정치세력이며 경제, 사회 전반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책을 편다는 점이다. 사법권은 입법, 행정부의 세력을 견제하지 못하며 관료주의적 시스템으로 진정한 의미의 삼권분립이라 보기 힘들며 가부장적 사회를 모범으로 생각해 여성 인권에 대한 전근대적 인식은 여전히 남아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연합국의 통치 편의를 위해 일본의 전후 국가 운영의 인적 단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많은 것이 연속되는 결과를 낳았고 이어진 냉전 체제와 한국 전쟁을 거치며 일본의 진정한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이는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 도입해보면 우리 역시 인적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수많은 근대화의 시스템의 영향으로 우리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현재의 일본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처한 문제점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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